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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 기득권에 복종하는 바보 되기?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의 '나라 밖 이야기')
가장자리 조합… / 2016-08-05 / 조회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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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 기득권에 복종하는 바보 되기?

[나라 밖 이야기] "개돼지" 발언보다 충격적인 것은…
1. 프랑스 바칼로레아의 철학시험

"노동을 덜 하는 게, 더 잘 사는 것인가?"

지난 6월 15일에 시행된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바칼로레아)' 철학시험에서 과학계열 수험생에게 제출된 논제 중의 하나다.

"우리는 다만 일하고 싶을 뿐이다. 일을 덜 하자는 게 아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18세의 에웬은 소감을 물은 르몽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험생들은 계열별로 주어진 세 개의 논제 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주제에 관해 네 시간 동안 논술하거나 설명해야 한다.

"저는 논술의 한 부분을 직업 생활과 사생활 사이의 균형에 관해 썼어요. 그것이 행복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봤거든요."

에웬은 이렇게 덧붙였다. 에웬과 마찬가지로 이 논제를 선택한 17살의 마리안느는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헤겔, 한나 아렌트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면서 8페이지를 썼다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노동법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에 열심히 참여해 왔다는 그녀는 6월 14일에만 참여하지 않았는데, 시험 바로 전날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에 관한 논제는 지난 몇 해 동안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에 출제되지 않았다. 올해 이 문제가 나온 것은 프랑스의 사회 현안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추측을 낳게 했다. 실제로 수험생들은 '노동'에 관한 논제보다는 '자유', '진리', '정의'에 관한 논제들을 더 필수적인 것으로 알고 있고 그만큼 준비도 충실히 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립학교의 철학교사 협회 대표는 "이번에 출제된 논제들은 현재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연관시켜서 생각된 게 아닙니다"라면서 그런 추측을 부인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철학 논제가 사회생활에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고, <르몽드> 기자는 쓰고 있다. 설령 그것이 본디의 목적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1970년대에는 당시의 사회 의제와 관련된 '노동 없는 사회', 그리고 80년대에는 '자유로운 시간, 자유의 시간'이 철학시험 논제로 출제되었다고 한다.

< 르몽드> 기자는 흥미로운 질문을 덧붙였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 현안과 직접 연관되는 철학 논제는 수험생들에게 함정이 될까, 아니면 '백지 제출'의 근심을 피하게 해 줄까? 파리의 한 철학 교사는 수험생들에게 함정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 교사는 "철학한다는 것은 지금과는 거리 두기를 필요로 한다. 현재가 성찰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으나 학생들은 개념화의 노력을 통해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에서 계열별로 주어진 철학 논제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과학 부문
제1주제 : 적게 일하는 게, 더 잘 사는 것인가?
제2주제 : 알기 위해서는 증명해야 하는가?
제3주제 : 마키아벨리의 글(여기서는 생략)을 읽고 설명하기

■ 경제사회 부문
제1주제 : 우리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항상 알 수 있는가?
제2주제 :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왜인가?
제3주제 : 데카르트의 글(생략)을 읽고 설명하기

■ 인문 부문
제1주제 : 우리들의 도덕적 확신은 경험에 기초하고 있는가?
제2주제 : 욕망은 본디 무한정인가?
제3주제 : 한나 아렌트의 글(생략)을 읽고 설명하기

■ 기술 부문 제1주제 : 정당하기 위해서는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제2주제 :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언제나 정당화할 수 있는가?
제3주제 : 메를로 퐁티의 글(생략)을 읽고 설명하기

2.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교육

다른 글에서도 술회했지만, 나이를 많이 먹은 탓이겠다, 한국 사회에서의 견딤은 내게 "분노보다는 슬픔을, 슬픔보다는 쓸쓸함"을 요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쓸쓸함을 안겨 주는 것은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어떻게 우리는 청소년들을 이렇게까지 학대할 수 있는가? 도대체 그것으로 노동자와 서민의 자식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내게 남아 있는 분노는 "노동자와 서민의 자식에게 한국의 교육은 그 황금 같은 시간을 온통 저당 잡힌 채, 없는 돈 들여가며 고생하지만 결국 기득권 세력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바보 되기"라고 말한다.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자식들이 중3 사회 교과 시간에 '모의 노사협의'를 하고(그때 학생들은 거의 모두 노조 대표 역할을 자원했다) 고2 때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을 때의 충격이 내게 던진 질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과 교육은 어떤 내용이 주를 이루어야 하는가?"였다. 그리고 금세 알아차렸다. 역사, 지리, 사회, 정치, 경제 등 사회 교과목이 사회를 알기 위한 공부라면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당연하게도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이 주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위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철학 과목에서도 노동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교 3년생이면서 프랑스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모든 시위에 참여한 17살의 마리안느가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헤겔, 한나 아렌트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면서 8페이지를 썼다는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 논제에 무엇을 쓸 수 있겠는지 스스로 돌아보면 좋겠다.

설령 토론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에게 '거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문 사회적 소양에서 다른 층위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이 문제에 관해 상세히 다룰 수는 없겠는데, 다만 초중고 시절 인문 사회 교과목에서 글쓰기와 토론(글쓰기와 토론은 학생 각자가 주체가 된다)을 줄기차게 함으로써 학생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계급성에 기반을 둔 사유 세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교육과 객관적 사실에 대한 주입식 암기(모든 학생이 똑같은 내용을 경쟁적으로 숙지한다. 학생 각자의 정체성·계급성에 기반을 둔 사유 세계 대신, 객관적 진실이라고 포장된 지배 세력의 관점과 이념을 자기 것으로 형성한다)를 주로 하는 전체주의 방식의 교육이 그런 차이를 낳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한국 대학생들의 사회 문화적 인식의 수준은 스웨덴의 중학생 수준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스웨덴에 입양된 청년이 던진 말이다. 대학생 때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경험에서 나온 그의 말이 내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 평가에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 한국의 교육계 인사들이 지극히 충격적일 뿐.

3. 맺음말

"그렇게 인문사회적 소양의 층위가 우리와 다른 프랑스나 유럽에서 극우 정치 세력이 준동하는 것은 왜인가요?"

내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내 답변은 다음과 같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나라들에서는 극우 정치 세력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2017년 5월에 치러질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는 극우파 후보가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에서 극우 세력이 급성장하는 배경으로는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복지 축소, 이민자의 급증, 좌파 정당들의 우경화에 의해 버림받은 중하층 노동자와 서민층에 대한 극우 정치 세력의 선동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교육을 하는 덕분에 극우 정치 세력이 장기 집권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지도 않을 거고요."

최근 교육부의 정책기획관이라는 인물이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각자는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그만큼 자아가 정립된다. 그래서 다시금 말하건대, 한국의 교육 정책을 총괄한다는 그의 발언이 내겐 별로 충격적이지 않고 그의 말에 별로 개의치 않는 교육계 인사들의 반응이 충격적이다. 참으로 쓸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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