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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in소리] 주체로서 목소리 내기 +6
소리 / 2016-08-06 / 조회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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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 여성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8월 6일, 오늘 본 기사는 27세의 여성을 24세의 남성이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강간한 뒤, 격투기 기술인 초크를 사용해 죽였다고 한다. 매일 올라오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행과 살인 기사. 일상적인 살해와 강간에 대한 공포. 그러나 그 공포에 대해 말하는 화자는 언제나 그 공포를 증명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나는 같은 내용의 발화를 남성이 했을 때, 더 우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동시에 더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취급된다는 것도 안다. 여성 대상의 살해 위협에 대한 공포에 대해 말 할 때도, 여성혐오에 침묵으로써 동조한 남성들에 대해서 말 할 때도, 각종 강제 추행과 성희롱 사건에 대해 말 할 때에도 그랬다. 나의 삶과, 나의 육체로 경험한 것들을 말 할 때조차도, 나의 발화는 물건처럼 전시되었다. 그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물건처럼 말이다. 나의 경험을 말하는 순간에도 나는 주체가 될 수 없었다. 경험자의 발화에서 오는 자체의 힘은 사라진다. 상처 안에 있는 더 자극적인 사건들을 끊임없이 보여주어야만 간신히 내 발화는 인정된다. ‘예민한 사람’, ‘피곤한 사람’ 등의 딱지와 함께 말이다. 때로는 이런 말도 듣는다. “근데 좀 더 좋게 좋게 웃으면서 말해줄 수 없어?”

  내 경험이 인정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웃으며 나긋한 말씨로 말하지 않음을 지적받아야 한다. 흥분하며 얘기하지도 않았고, 인상조차 쓰지 않고 말했던 것 같은데 나는 저런 말을 들었다. 내 주장과 경험에 대한 얘기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도, 나의 표정과 말투가 지적의 대상이 된다. 이런 경험은 20대 여성인 나로서는 매우 일상적이다.

 

 

 최근 넥슨 사태로 빚어진 일 중에 ‘예스컷 운동’이 있다. 이 것은 오유에서 시작된 웹툰 검열 찬성운동으로,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작가들의 웹툰을 보이콧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작가들은 트윗터 유저들에게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원색적인 비난부터 차분히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들 등등 다양했다. 다만 그 비난의 양상이 여성작가와 남성작가에게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 주목할 부분이다.

 

먼저 초 작가라는 여성작가에게 간 트윗 멘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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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은 문택수 작가라는 남성작가에게 보낸 트윗 멘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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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작가와 문택수 작가 둘 다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론들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초 작가의 김자연 성우지지 트윗에는 그 어떤 논리적 설명과 반박의 내용 없이, 조롱과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문택수 작가에 대한 멘션은 자신들의 논리에 대해 상대를 설득하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같은 내용의 지지 발언에 대한 비판인데 그 양상은 너무도 선명하게 달랐다. 모두가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을 교류하는 것이 ‘대화’이고 ‘토론’이다. 남성작가에게 말하는 방식은 모두 대화와 토론의 형식이었지만 여성작가에게 말하는 방식은 비난과 조롱뿐이었다.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을 알아 볼 수 있다. 동등한 인격체로서 함께 대화하고 토론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남성은 설득의 대상이지만, 여성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추가적으로 이들은 여성의 말하기 방식에 대해서도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즉, “좋게 좋게 웃으며” 친절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배우 하연수 씨의 일이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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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논란이 되어 과거의 "싸가지 없는" 글들도 함께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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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들은 배우 하연수씨의 인스타그램에서 이번 사건에 논란이 된 글과 댓글 내용 모두를 첨부한 것이다. 이것이 논란이 되어 그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녀에게 가해진 비판을 요약하면, “싸가지가 없고”, “불친절 하”며, “지가 뭐라도 되는냥 돈 많다고 자랑”하며 “똑똑한 척 진지충”의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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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들은 오유에서 하연수의 말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식의 비난이 끊이지 않고 싸가지 말투 논란이 점점 커지자 그녀는 자필로 사과문을 써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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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일면식도 없는 배우 하연수 씨가 겪은 일이지만, 내가 겪은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일을 두고, 평소 친절한 말투와는 거리가 먼 “너나 나나 키보드 워리어”라는 글을 올린 배우 유아인 씨가 같은 내용을 말했어도 그랬을까? 혹은 중년남성의 마동석 같은 배우가 같은 말투로 말했어도 같은 반응이었을까?

그들의 말에 따르면, 배우 하연수 씨처럼 “싸가지 없”고, “불친절”하며, “진지충”인 말투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그녀의 말투에서 문제시 될 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한 참을 찾아보다가, 첫 번째 사진의 빨간줄이 쳐진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의, 그것도 젊은 여성의 발화는 감정노동을 수반한 귀여운 언어야만 했던 것이다(!). “뿌잉뿌잉”같은 단어를 섞어가면서 친절하고 애교 있게! 그것이 여성에게, 젊은 여성에게 허락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여성의 언어(라고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 글 쓰고 있습니다.’가 아니라, ‘우힝 여러부운~저는 지금 글 뜨고 있떠용~뿌잉뿌잉’이어야 하는 것이다.

친절하든 친절하지 않건, 귀엽든 귀엽지 않건 간에 모두 한 사람의 특징적인 언어 습관으로 먼저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이 동일한 물음은 비단 여성에 한에서 문제시 되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언어 검열과 감정노동의 강요는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문제이다. 문제는 그것에 대한 자각이 조금도 없다는 점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정확히는 젠더권력이 언어의 범주에서 작동하는 방식의 예들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발화자가 여성일 때 받는 무차별적 비난들이 그러하고, 여성으로서 여성의 말투를 쓰지 않는 이에 대한 비난이 그러하다.

다양한 언어는 인간의 표준인 남성에게 허락된다. 물론 남성도 ‘뿌잉뿌잉’하는 말투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언어 텍스트를 접할 때의 이미지는 ‘여성적’인 모습의 인간일 것이다. ‘진지충’의 말투의 텍스트를 접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남성적’인 모습의 인간일 것이다. 여기서 여성적인 말투를 쓴 이가 남성임이 밝혀졌을 때 가해지는 비난은 ‘여성적이다’라는 것이다. 여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보다 낮은 가치를 지닌 것이다. 남성이 이러한 여성의 언어를 사용할 때는 진정한 남성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을 받는다. ‘사내새끼가 왜 그딴 말투를’이라며 말이다. 반대로 여성이 ‘여성적인’ 언어 범주를 벗어났을 때의 비난도 가능하다. 하연수 씨의 경우처럼 말이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나는 말이 없었다. 말 많고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못했다. 경험적으로 터득한 비난들을 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 틀렸을지 몰라, 나의 말투가 문제될지 몰라 하는 내재화된 목소리들. 그리고 나이도 어린 여자가 뭘 아냐는 식의 고상한 충고부터, 암탉이 울면 망한다는 식의 원색적 비난까지 말이다. 그것들에 치여 가다 보니 나는 내 목소리를 내는 법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었다. 틀릴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이래서 여자들은”이란 식의 말을 들을게 훨씬 더 두려웠었다. 나 하나 때문에 여자 전체가 욕 먹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 나도 틀린 발언도 ‘말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한 사실인데, 이것을 받아들이고 행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었다. 내 발언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 틀린 것은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여전히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지만, 그것을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굳이 친절하게, 일일이 ‘말 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의 생각과 경험들을 파헤쳐 전시하게 하고, 대화를 통해 생각을 교류할 생각이 없는 상대에게서 듣는 정신을 갉아 먹는 질문들에 대답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해는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우와. 내 얘기같은 글이네요!
나의 의사를 비로소 표현하기 시작한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세미나라는 공부이야기 방식에 적응하기까지 몇 년 간의 시행착오와 마음고생들을 이 글에서 다시 발견합니다.
친절과 예의를 강요하던 '선배님'들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결국 그 '선배님'들과는 친구도, 동료도 되지 못했습니다.
소리님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나도 30대가 되었고, 선배의 입장에 서기도 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동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의 댓글

때때로 삼월샘의 코멘트를 들으면, 예상치 못한 핵심을 찌르는 답변이 있어 놀랍니다. ㅎㄷㄷ 그리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료. 어렵지만 참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 그리고 제겐 더 많이 고민해봐야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어렵...

유택님의 댓글

유택

또 언제 이런 글을 썼나요? 잘 읽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그냥 알아도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 온몸으로 글 쓰다 몸살날라 소리~~! ㅋ 날도 더운데~ 여튼 요즘 벌어지는 일들과 연결해서 펼쳐지는 소리님표 글을 볼 수 있어 제게 많은 도움이 되고 감사해요~  착한 여자는 천당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고 하던데, 한 술 더 떠  정희진샘 몇주전 한겨레 칼럼에선 그것조차 아니라고 하대요. 여자는 그냥 갈.데.가 없다고. ^^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의 댓글

몸살 대신 열사병이...ㅋㅋ글 재밌게 읽어주시고 코멘트 달아주셔서 힘이 납니다!!
여자는 걍 갈데가 없다는 말 공감..끊임 없이 외부에서 외부를 부유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거든요. 그래도 나쁜 여자가 조금 더 자존감은 챙길 수 있는 것 같지만ㅋㅋㅋ도진개진ㅋㅋㅋ

선우님의 댓글

선우

소리님, 저는 소리님이 글뿐만 아니라 말의 전달력도 좋아서 참 좋아요^^
자기가 아는 내용,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방이 알아듣게 조곤조곤 얘기한다는 것 참 좋은 재능이예요.
글구 귀여운 척 할 필요 하나도 없어요. 있잖아요 소리님 충분히 귀여워요 ㅎㅎ
프로이트 시간 정수샘과 소리님의 빵빵 질러대는 얘기에 제가 속이 다 시원해서(저는 말로 그런 얘기 잘 못하잖아요^^)
웃느라 정신 없잖아요. 함께 공부해서 참 좋아요~^^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의 댓글

저도 선우샘과 함께 공부해서 참 좋아요! 미소가 참 멋진 선우샘!
실험실에서 역 검열로 인해, 도리어 귀여운 척은 커녕 과도한 진지열매 먹은 진지충으로 활동중이라 이것이 또 다른 예의차리기의 일종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걱정인 요즘입니다. ㅋㅋㅋ 나란 사람 중간 없는 사람...ㅠ
그래도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선우샘 몫까지 빵빵? 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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