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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in소리] 나는 자궁인가 사람인가 +9
소리 / 2016-08-18 / 조회 3,305 

본문

나는 자궁인가? 사람인가?

 

 “여자가 더럽고 차가운데 앉으면 안돼.”하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이 말을 하는 발화자의 나에 대한 배려는 참 고맙다. 그러나 동시에 불편하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발화자의 의도와는 달리 나를 자궁으로 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찬 데 앉으면 치질 걸린다’란  말이 더 고마울 것 같다. 그 이유는 대개 찬 곳은 여자 몸에 즉, 자궁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가 아니어도, 더럽고 찬 곳에 앉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여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해.”, “여자 몸은 아이를 낳을 몸인데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 “술은 여자 몸에 해로워. 아이 낳기 전에 미리미리 관리해야지.” 모두 같은 말이다. 남자의 경우로 바꿔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 갈 것이다. “남자는 몸을 따뜻(혹은 차게)하게 해야 된대.”, “남자 몸은 아기씨가 있는 몸인데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 “술은 남자 몸에 해로워. 아이 낳기 전에 미리미리 관리해야지.” 이 말들은 주로 아기 계획이 있는 기혼의 남성들에게나 해주는 말이다. 그러나 여성은 저런 말들을 미혼일 때도, 심지어는 생리를 하기도 전부터 듣는다. 왜 여성의 자궁은 전국민적으로 보호/관리가 필요한 공공재적 특성을 지니는가?

 

 아이를 낳게 될지 안 낳게 될지는 자궁을 가진 나도, 말하는 상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자궁을 가진 나는 예비 임산부로서 취급된다. 마치 성대를 가지고 있으니, 으레 ‘가수를 하겠거니, 앨범을 내겠거니’ 하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린다. 모든 사람들은 성대를 가지고 있고, 성대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가수가 되어 앨범을 내지는 않는다. 단순히 성대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수가 되어 앨범을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며, 가수가 되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유독 여성이 가진 자궁에 대해서는 그 본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미혼 여성에게는 물론, 기혼 여성에게도 이 시선은 지속된다. 결혼을 한 기혼자들에게는 으레 당연히 아이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2세의 안부와 계획을 인사말처럼 묻는다. 아이를 임신해 낳는 것은 오롯이 여체로 겪어 내야하는 육체노동이며, 많은 리스크(건강, 시간, 외모, 돈 등등)를 안는 일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위한 열악한 사회기반 시설, ‘어머니’와 ‘여성 아님’의 특징을 부여받아 끊임없이 분류되는 “아줌마”화, 경력단절 등의 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러나 모든 여성은 잠재적 어머니로서 취급받는다. 임신과 출산, 육아 어느 것 하나 타인이나 사회가 함께 그 짐을 지려는 태도는 없지만, 인사말이라는 이름 뒤에서 사람들은 아이에 대한 끊임없는 안부를 묻는다. 그 말들 속에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거나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된다. 부부와 아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에 벗어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이 관심처럼 붙고, 아이 없음에 대해 해명 해야만 한다.

 

 ‘왜 자궁을 사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비혼 여성, 무자녀 계획의 기혼여성, 불임의 기혼 여성 등등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대답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단순한 호기심과 궁금증에서부터 압박을 주는 질문들까지 그 범위와 범주는 다양하다. 자궁을 지닌 여성은 자신의 자궁에 대한 용도와 계획에 대해 끊임없이 항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은 자신의 자궁에서 소외된다. 자궁이란 단어는 아들 자 “子”와 집 궁 “宮”으로 이뤄진 단어이다. 여성의 생식기관은 아들이 머무는 공간, 아들의 집이란 뜻을 가졌다. 수정란인 세포가 자라는 곳이니 세포 포자를 따서 포(胞)궁이어도 될 것이고, 아이 밸 태를 써서 태(胎)궁이라고 지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생식기관의 이름은 자궁(子宮)이다. 여성의 신체기관을 일컫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 속에 여성은 사라진다. 남성을 재생산하기 위한 목표만을 지닌 공간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여성은 자궁으로 먼저 인식되지만 자궁에 대한 결정권은 없다. 임신중단을 할 약은 한국에서 판매되지 않는다. 또한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 15조 1,2항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가능하며(제 1항),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한다.”(제 2항)로 이 외의 낙태는 불법이다. 사실상 임신에 대해서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없는 것이다.

 이름에서부터 여성의 존재가 사라진 것이 “자궁”이다. 그러한 자궁을 가진 여성은 언젠가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는 존재로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술과 담배를 조심해야 하는 ‘자궁’이다. 인격체로서의 정체성보다 ‘자궁’으로서의 정체성이 앞서는 것이다. 그런데 자궁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성대가 있으니 당연히 가수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은 인간으로 먼저 인식되지 않고, 잘게 분해된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섹스 가능한 여성기, 그리고 아기를 생산 할 수 있는 자궁으로 말이다. 그렇다. 여성은 두 가지의 여성만이 존재할 수 있다. 창녀와 어머니, 보지와 자궁. 더 잘게는 집안일을 하는 팔다리, 웃음 짓는 얼굴, 섹스 어필을 하는 곡선들(가슴, 엉덩이, 배, 등, 목선 등등)로 말이다. 기괴하게 조각난 신체는 타인의 환상과 기능만을 나타낼 뿐이다.
 마치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이처럼, 여성은 분해된다. 육질이 연하고 지방이 많아 국거리로 사용하는 양지, 지방이 적어 질겨 탕과 찜에 주로 이용하는 사태, 살이 연하고 지방이 살코기 사이에 있어 스테이크로 제격인 안심. 지방으로 되어있어 부드러워 섹스어필 하는 혹은 아이에게 젖을 줄 수 있는 유방, 근육으로 되어있어 수축 이완이 자유로워 음경을 받아낼 수 있는(삽입섹스 가능한) 질, 아이를 임신해 10달간 기를 수 있는 자궁. 사용하는 사람의 용도에 맞게 서술된 몸에 대한 설명이다. 그 몸의 대상이 앞은 소이고, 뒤는 여성이다.
  A급 한우, B급 한우, 젖소, 식용소. A컵 가슴, B컵 가슴, 가임여성, 폐경여성. 라는 규격화된 이름들도 비슷하다. 또한 둘 다 가능한 맛있고, 보기 좋아야 하며, 건강해 보여야 한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샤 벨스키는 목이 잘린 여성의 신체가 등장하는 영화 및 광고 포스터를 수집하는 SNS 프로젝트 ‘할리우드의 머리 없는 여성들’(headlesswomenofhollywood.com)을 시작했고, 텀블러 계정을 개설한지 한 달여 만에 100여건의 포스터가 수집됐으며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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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장르를 불문한 목 없는 여성의 몸이 부각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여기서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몸의 부위가 필요할 뿐, 인격체로서의 여성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안부와 호의로써 내게 건네진 말들이 불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복합적인 인체의 여러 장기들과 인격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내가 가진 신체 부분의 특징으로 상대가 먼저 나를 대하기 때문이다. 나의 몸 부분의 특징이 아닌 한 사람으로 먼저 대해달라는 말은 참 당연한 말이다. 나를 성대로 먼저 대하지 말라, 나를 위장으로 먼저 대하지 말라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에게는 흔히 지워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들에 지적하면 나는 예민한 사람, 프로불편러가 된다. 그렇다면 기꺼이 프로불편러가 되겠다. 그런 딱지를 얻고 나란 사람이 나의 가슴, 머리칼, 엉덩이, 자궁 등의 부분 장기들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 먼저 대해질 수 있다면 자진해서 예민한 프로불편러가 되겠다. 나를, 여성을 자궁으로 대하지 말아 달라. 기능적으로 분류한 고깃덩이가 아닌 인격체로 먼저 대해 달라.

 

댓글목록

유택님의 댓글

유택

결혼한 사람들에게 애기 있냐고 아무 생각 없이 예의상 물어왔었는데 이제 그만 물어야겠어요. ^^;
잘 읽고 가요~~ 소리님의 똑소리나는 글이 참 좋습니당 *^^*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의 댓글

ㅎㅎ댓글과 응원 늘 감사해요!
상대에 대한 호의적인 질문이 때때로 난감한 지점을 품고 있는 부분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더 좋은 표현이 있을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테죠! ㅎㅎ

희음님의 댓글

희음

'여성은 자신의 자궁에서 소외된다'는 말씀에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자신의 자궁에서조차 소외되는 여성이 그 소외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설명해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로 그것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까, 그것은 너무 먼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의 댓글

그것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까.... 깊이 와닿네요. 자궁은 나에게 뭘까, 나는 무엇을 말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빛과 소금같은 댓글 감사합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살다보면 자신과 비슷한 사회적 조건에 처해있는 사람들만 만나기가 쉬운 것 같아요.
아이 엄마들은 아이 엄마들끼리 육아정보를 공유하고, 비혼여성들은 비혼여성들끼리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말이예요.
그런데 실험실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삶을 사는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고,
또 세미나나 강의를 통해 만나다보니 일상과는 다른 형태의 대화를 하게 되지요.
특히 실험실 매니저 중 여성인 저 삼월과 오라클, 라라, 이 세 사람은 결혼과 아이 문제에서 전혀 다른 조건에 있으면서
같이 활동하다 보니 그 조건의 문제가 삶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여성들은 자궁에서 소외되어 있으면서도, 삶의 형태는 그 자궁에 매달려 있는 거지요.
아이가 있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대개 다른 사람의 삶의 형태에 대해 잘 모르고, 별로 이해라는 호의를 베풀고 싶어하지도 않지요.
다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소중한 '무엇'을 지키고 싶어하는데,
안타까운 점은 여성의 경우에 그 소중한 '무엇'이 자궁과 관련이 있을 때가 많다는 점이예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희음 님과 비슷한 아득함을 느끼면서 ...
늘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글을 올려주어 고마워요!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의 댓글

여성의 삶이 자궁에 매달린 것인가? 비혼 여성의 삶도 자궁에 매달린 삶인가?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자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자궁에 매달린 삶인지 의문입니다.

제게 자궁은 출산과 육아, 그리고 새 생명의 난입 가능성의 곳으로써,
현재의 안락한 삶을 위협하는 공간으로써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위협도 의미라면, 어떤 의미에서 제 삶은 자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테지요.
이 경우에 소중한 것은 "나르시시즘적인(혹은 자족적인) 나의 라이프 스타일"일테고요.
물론 저는 제 삶이 자궁에서 완전히 벗어난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싶긴하지만요.
현재의 제 가치기준 안에서는 자궁을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커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궁혐오? 혹은 내 안의 여성혐오적 태도는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프로이트의 저항이 생각나네요.)

그렇지만, 자궁의 쓸모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삶이 자궁에 매달린 삶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내게 자궁은 뭘까...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여성의 모든 삶이 자궁에 매달려 있다기보다
삶의 형태가 자궁의 사용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여성들을 그렇게 구분하고 있더라고요.
기혼과 비혼, 아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등으로 말이예요.
그 구분이 현실에서는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예요.
그런데 그렇게 구분하면서
저 자신도 '나를 자궁으로만 대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어요. 그래서 섬뜩했던 거지요.
그 사실을 알려줘서 다시 한번 감사해요~

lizom님의 댓글

lizom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9999&thread=04r05 이 기사 읽어봐요. 과음 경고 문구가 바뀌는데. 아주 가관입니다. 임신중 과음은 기형아를 낳게 한다는 문구가 의무적으로 들어가게 됐다는 내용. 여성계 쪽에서 반대운동을 좀 해 줘야 하는데,,,,취재 하면서 여성계 쪽 연락해 봐도. 똑 부러지게 반응하는 사람이 없네...소리가 한번 조직해 보시지...

소리님의 댓글

소리 댓글의 댓글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여자는 아기공장이 아닌데, 왜 자꾸 관리를 하는건지. 난자만으로 애 낳는 것도 아니고.. 공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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