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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 #0 - 들어가는 말
기픈옹달 / 2017-02-24 / 조회 692 

본문

* 절판 된 책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을 다시 정리해 보고 있습니다. ^^

 

 

옛날 어느 서당에 호랑이 훈장이 있었답니다. 이 훈장은 꾸벅꾸벅 조는 학생을 보면 호되게 야단을 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켜놓고 꼬박꼬박 낮잠을 자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느 무더운 여름, 공부에 지친 학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희도 낮잠을 좀 자면 안 될까요?”

“예끼 이놈! 나는 꿈속에서도 공자님을 만나 뵙고 있다. 낮잠 잘 틈에 글공부나 더 열심히 하거라!!”

얼마 뒤 질문을 했던 학생이 잠시 졸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 훈장은 호통을 치며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학생이 억울하다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도 꿈속에서 공자님을 뵙느라 잠시 졸았습니다.”

“요런 당돌한 녀석을 보았나! 그래 공자님께서 뭐라 말씀하시더냐!!”

“예, 공자님께서는 스승님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던데요?”

이 이야기는 <논어>의 내용을 재미있게 꾸며낸 것입니다. <논어>를 보면 공자는 꿈에서 주공周公이라는 성인을 만난다고 말했습다. 또 제자 재아는 낮잠을 자다 공자에게 크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논어>를 읽은 사람은 여기서 훈장이 공자를, 재기 넘치는 학생이 재아를 빗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공자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무턱대고 혼내는 훈장의 모습은 꽉 막힌 답답한 선생을 빗댄 것이지요.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풀이하면 ‘공자가 말했다. 맹자가 말했다’가 될 텐데, 이 말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은 가르침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천은 없이 헛된 이론만을 일삼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네이버 사전)이라 하네요. 위에 소개한 호랑이 훈장의 태도가 딱 그렇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물어보니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말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의 맥락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공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낡고 답답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공자의 책, <논어>에 대한 이미지도 비슷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논어>를 주제로 강의하면 어디나 나이 든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을 내놓은 뒤 도서관 등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논어>를 강의할 기회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보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청소년을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만큼 공자와 <논어>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은 본디 청소년들과 <논어>를 읽는 공부 모임의 이름이었습니다. 약 10년 전, 구로동에 작은 공간을 열고 청소년과 함께 고전을 비롯한 책을 읽는 다양한 모임을 연 적이 있습니다. 비록 학교 교실은 아니지만 교실처럼 배움이 있는 곳, 그러나 즐거운 배움이 넘치는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유쾌한 교실’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유쾌’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는지는 모르나, 저에게는 매우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논어>의 딱딱한 내용이 현실의 생동감 있는 언어로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교실이 따로 멀리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공자는 행단杏亶,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향교를 가 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곤 합니다. 그런가 하면 공자는 십 수년간 방랑 생활을 했기 때문에 따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공자의 교실이 열린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함께 모인 사람들이 중요하겠지요.

‘교실’이라고 하면 여러 부정적인 이미지가 마구 떠오릅니다. 좁은 책상, 빡빡한 시간표, 먼지 나는 칠판까지.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는 좀 다른 모습의 교실을 상상했으면 합니다. 스승과 제자들이 모인 곳, 배움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교실이 아닐지요. 따라서 모든 것을 다 지운, 칠판과 교탁, 출석부와 시간표, 책상과 의자조차 없는 교실을 상상합시다. 그러면 스승 공자와 다양한 제자들이 만나는 여러 사건 자체가 교실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논어>의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 정리한 것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묶은 책입니다. 약 500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주제나 순서도 없이 마구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이를 주제별로 모아 읽는 방법도 있지만 인물별로 모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게 읽어 보면 저마다 고유한 색깔을 가진 인물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늘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논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다 다루지 못한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인물만 뽑았습니다. 그러나 이 인물들만으로도 <논어>를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논어>를 만나는 좋은 디딤돌이 되는 책이기를 바랍니다. 꼭 직접 <논어>를 읽으라는 말씀!

돌아보니 처음 이 책을 펴낸 지 벌써 5년이나 되었습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정 때문에 책이 절판되기도 했습니다. 대강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찬찬히 <논어>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할 예정입니다. 전혀 다른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건 이야기가 끝나 보아야 알겠지요. 

여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로 떠나봅시다. ​

 

http://zziraci.com/8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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