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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수다와 지층 +2
기픈옹달 / 2017-03-08 / 조회 585 

본문

* 전에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매주 수요일 도봉 평생학습관에서 <논어>를 강의합니다. 강의 교재를 만들어야 해서 글을 쓰고 있어요. 아래는 강의 자료 가운데 일부 입니다. 초고라는 점을 감안해 주시기를 ;; 강의를 진행하면서 강의 내용을 보다 정리된 형태로 나눌 예정입니다. ^^ 

 

<논어>라는 책 제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책들을 보면 보통 책의 주인공을 제목으로 내세우기 마련입니다. <맹자>, <장자>, <노자> 따위가 그렇지요. 대체 <논어>는 왜 <공자>가 아니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저는 <논어>의 주인공이 공자만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사상가들이 있었지만 공자처럼 무리지어 다니던 사람은 없었어요. 공자는 늘 제자들과 함께 다녔고 그는 평생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중니제자열전>에 따르면 이름난 제자가 70여 명, 그를 거쳐간 제자는 약 3000명이라 해요.

<논어>는 공자의 저술이 아닙니다. <논어>에는 수 많은 공자의 말이 나오지만 공자가 직접 써서 남긴 글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누가 공자의 말을 정리한 것일까요?

공자는 7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을 기려 3년간 상을 치렀다고 해요. 그 뒤 공자의 제자들은 다양한 흐름으로 갈라집니다. 제자가 제자를 낳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공자의 말이 정리 되었습니다. 많은 공자의 말을 누가 언제 정리했는지는 여전히 질문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논어>를 읽으면서 크게 셋의 서로 다른 인물이 뒤섞여 있다는 점을 염두해두어야 합니다. 첫째는 많은 말을 남긴 공자 본인, 둘째는 이를 전한 여러 제자들, 셋째는 이를 정리한 후대의 누군가. 그렇게 공자의 말은 글이 되어 오늘날 까지 전해집니다. <논어>라는 제목은 그렇게 여러 ‘말’을 엮은 책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지요. 영어로는 Analects라고 하는데 이는 ‘어록집’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논어>를 ‘공자와 제자의 대화’라고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공자의 말을 옮겨 적은 내용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공자와 제자들이 나눈 이야기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공자 사후 공자의 제자들이 그들의 제자나 당대 인물과 나눈 대화도 남아 있어요.
문제는 ‘말’의 형태로 남아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글’과는 좀 다른 모습을 띈다는 점입니다. 별 설명 없이 대화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為知之 不知為不知 是知也 
공자가 말했다. 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알려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요? 곱씹어 읽어보려면 여러 질문이 마구 생깁니다. 대체 공자는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자로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말들 들은 걸까요? 안타깝게도 <논어> 본문은 별 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별 설명 없이 대화만 남아 있는가 하면, 공자의 말과 제자들의 말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주제나 흐름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별로 없이 그저 여러 말을 순서 없이 모아둔 형태입니다. 그래서 그냥 읽으면 머리가 좀 어지럽습니다. 여러 사람이 마구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는 것을 읽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논어> 이외에도 선생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들이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희가 제자들과 나눈 문답을 기록한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주제별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한결 읽기도 편하고 내용을 찾아보기도 좋지요. 한편 왕수인의 제자들은 스승의 말을 엮어 <전습록傳習錄>이라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대화를 나누고 기록한 제자들 별로 나뉘어 있어요. 그런데 <논어>는 주제는 물론, 대화를 나누거나 기록한 제자들 별로 묶여 있지도 않습니다. 일관된 체계를 발견하기 힘들어요.

<논어>를 편집하고 책으로 엮은 편집자들이 성의가 없어서 그랬을까요? 저는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한 사람이 혹은 공통된 생각을 가진 한 집단이 정리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손, 입장이 반영되었기에 그런 형태를 갖게 된 것이지요.
수다스러운 이 책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로 정리되기 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한문은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글이기 때문에 주석이 많이 발달했습니다. <논어>에 가장 오래된 주석으로는 후한後漢 시대의 하안(何晏, 193? ~ 249)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당대의 여러 주석을 합하고 <논어>의 여러 판본을 정리해서 <논어집해論語集解>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이전에는 세 종류의 <논어>가 있었다고 해요. 노나라의 논어, 제나라의 논어, 공자 집에서 나온 옛 논어. 이 셋을 각각 <노론魯論>, <제론齊論>, <고론古論>이라 부릅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이를 정리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총 20편의 <논어>가 되었습니다.

하안의 <논어집해>는 오래도록 <논어>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남송시대에 주희(朱熹, 1130 ~ 1200)가 등장하여 새로운 주석을 붙입니다. 당대의 여러 주를 모았다는 뜻에서 <논어집주論語集註>라 이름 붙였습니다.

오늘날이야 <논어>라는 책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만나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논어>라는 책이 없었습니다. 모두 누군가의 주석이 붙은 <논어OO>과 같은 제목이었지요. 이때의 주석도 오늘 우리가 보는 주석의 형태와 다릅니다. 지금이야 각주나 미주 형태로 본문의 독해를 돕는 역할을 할뿐이지만 옛 주석은 본문을 나누고 그 중간에 끼어들어 가는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옛 책은 본문 1 - 주석 1 - 본문 2 - 주석 2 … 순으로 읽어야 합니다. 시대와 조건이 다른 두 글을 연속으로 읽는 것이지요. 어떤 책은 ‘소疏’라 하여 주석에 대한 주석을 붙여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세 시대의 글이 포개져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논어>에도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의 <논어> 번역서는 본문 - 본문 번역 - 해설 순서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논어>를 읽는 것인지 <논어>를 번역한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어수선함과 복잡함은 <논어>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합니다. 주연인 공자 이외에도 제자를 비롯한 여러 조연들이 등장하는 책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논어>를 통해 공자를 만나기도 하겠지만, 그의 제자들,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 까지 여러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풍성한 책이 어디 있을까요.

공자의 위대한 점 가운데 하나는 제자를 길러냈다는 점입니다. 그의 삶은 그와 비슷한 삶을 따르는 여러 사람들을 낳았지요. 공문孔門, 공자 문하의 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유儒’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공자의 말을 곱씹고 재해석하면서 다양한 흐름을 만들어 내었어요.

<논어>에 담긴 시대를 달리하는 여러 층의 글은 이 흐름과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글 하나를, 더욱 풍성하게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역시 공부에는 이게 중요한 거군요.
이렇게 많은 문장 중에도 유독 이 문장이 들어오는 것은 어떤 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이 말에 절실히 공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 말로 또 오늘 하루의 공부를 시작해보아야겠네요.
동양고전은 저에게 많이 멀지만, 기픈옹달님이 올리는 글에서 좋은 문장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그 문장들을 발견하고 전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새로 시작한 논어 강의도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강의 소식도 종종 게시판을 통해 전하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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