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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展] 사물의 낯가림 혹은 회화의 낯설음 +8
오라클 / 2017-03-09 / 조회 1,655 

본문

사물의 낯가림 혹은 회화의 낯설음 :: 이현우展, 첫 개인전

[미술평론] 아트허브 http://www.arthub.co.kr/sub01/board05_view.htm?No=23813 

 

류 재 숙 (작가, 연구공동체-우리실험자들 회원)

 

『 사물의 낯가림, 회화의 낯설음 - 이현우展 』 전시개요

전시작가 : 이 현 우 (Lee HyunWoo)

초대일시 : 2017. 03. 14(화) 18:00 Opening 

전시일정 : 2017. 03. 14(화) ~ 03. 28(화) *수요일 휴관

관람시간 : Open 12:00 ~ Close 18:00 

전시장소 : 예술공간-서:로  http://blog.naver.com/seoro-art

                 서울 용산구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 1-1419 

 

회화를 낯설게 하기1 :: 일상 속의 오브제로 ‘일상을 발명’하는

 

이현우의 오브제는 특별한 물건이나 특이한 사건이 아니다. 길바닥에 놓여있는 플라스틱통, 공사장의 덮개, 차로를 비추는 반사경, 매달려있는 빨래집개이다. 그는 일상에서 오브제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우리의 ‘일상을 발명’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작업을 ‘표현’이라기보다 ‘발견’이라고 한다. 일상에 널려있는 이것들은 우리의 눈길 바깥에 버려져있지만, 사실 우리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이것들과 함께 생산하고 흐른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버려진 채로 묵묵히 견디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조용하고 차분해서, 감각을 사로잡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다만 일상을 들여다보는 하지만 흥미로운 시선이 있을 뿐이다. 

 

셔터문을 분할하는 그늘과 플라스틱통, 다이소매장을 나오면서 맞닥뜨린 화물차에 실린 박스들, 모텔입구의 가리개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이것들과 마주하고 있는 그의 등이 보인다. 그는 일상의 오브제와 주변환경이 만들어내는 조형성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구성된 그림은 풍경화가 되기도 하고 정물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일상에 대한 회화적 추상이다. 그의 회화를 통해 우리의 일상은 새롭게 발명되고 우리의 삶은 사건화된다. 보이지 않는 일상을 보이게 하고, 흐르는 삶을 잡아두는 그의 시선은 회화를 낯설게 하는 힘이다. 우리의 일상만큼 새로 발명되어야 할 것도 없으며, 우리의 삶이야말로 무엇보다 사건화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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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오브제는 특별한 것들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셔터, 플라스틱통, 그리고 그늘 같은 것들이다.

 그는 일상에서 오브제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우리의 ‘일상을 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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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우리의 눈길 바깥에 버려져있지만, 우리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이것들과 함께 생산하고 흐른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버려진 채로 묵묵히 견디는 그 무엇일 것이다. >

 

회화를 낯설게 하기2 :: 사물의 얼굴을 해체하여 ‘회화의 이야기’를 생성하는

 

이현우는 일상 속의 오브제 가운데서도 특별히 셔터, 벽, 장막 같은 시선을 가리는 것들에 관심이 있다. 셔터, 벽, 장막은 사물을 가리고 있는 ‘가로막음’과 동시에 그 너머에 있는 무엇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낯을 가린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상상력이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 혹은 ‘양이 들어있는 상자’(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그는 셔터, 벽, 장막을 ‘차단’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해석한다. 셔터, 벽, 장막은 무엇을 가리고 있어,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사물의 얼굴이 가려진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얼굴 뒤에 있는 다양한 사물의 이야기를 생성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의 작품은 우리의 자리를 옮겨놓는다. 그림을 보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자리로. 

 

그가 그린 셔터, 간판, 플래카드, 비닐봉투, 쓰레기봉투를 보고 있자면, 흔한 듯 낯설다. 일상 속에서 흔한 것인데도 일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셔터, 간판, 플래카드, 비닐봉투에는 **커피숍, **베이커리, **헤어샵, **마트, 쓰레기봉투 같은 텍스트가 지워져 있다. 애초에 이것들은 어떤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사물들이다. 거리에 나서면 무수한 간판과 플래카드가 시각을 자극하고 쇠꼬챙이처럼 온 몸을 찌른다. 사물을 침묵하게 하는 것. 이렇게 사물의 텍스트를 지우는 것은 사물의 얼굴을 해체하는 동시에 사물의 용도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일상의 ‘새로운’ 발명이다. 

 

더 이상 무엇을 표시하기를 그만둔 사물 앞에서 우리는 낯선 새로움을 본다. 사물의 얼굴과 용도가 해체되면 무엇이 남는가? 광고의 얼굴이기를 그친 간판, 쓸모를 잃어버린 플래카드, 쓰레기봉투이기를 멈춘 비닐에서 뜻밖의 이야기-‘회화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먼저 텍스트가 지워진 사물은 이제 사물 자체로 떠오른다. 단순한 철판, 투명한 천 조각, 명랑한 색채들······. 이것들이야말로 오브제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사물의 질감들이다. 또한 텍스트가 지워진 오브제는 이제 그림 자체로 드러난다. 빠른 붓터치 위로 무심하게 발라진 물감덩어리, 조용하지만 무겁지 않은 툭툭 그려지는 작업과정······. 무엇보다 이것들은 오브제 아래 존재하는 회화의 질감들이다. 회화의 이야기란 사물의 질감, 혹은 회화의 질감이 흘러나오는 그림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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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셔터, 간판, 플래카드, 비닐봉투에는 **커피숍, **베이커리, **헤어샵, 쓰레기봉투 같은 텍스트가 지워져 있다. 

광고이기를 그친 간판, 쓸모를 잃어버린 플래카드, 쓰레기봉투이기를 멈춘 비닐에서 ‘회화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회화를 낯설게 하기3 :: 공간을 해체하여 ‘회화의 평면을’ 꿈꾸는

 

이현우의 셔터, 벽, 간판은 정면에서 그려져서 입체감을 주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다소 평면적인 것 뿐 아니라, 플라스틱통(그늘진 골목), 전구(밤 셔터), 전기줄(노란벽2층), 고깔(빨간벽1층) 같은 입체적인 오브제도 평면처럼 그린다. 건물 앞마당(셔터1층), 주차장 내부(터) 같은 공간이나, 심지어 펄럭이는 현수막이나 달리는 자전거도 그의 그림 속에 들어오면 평면이 된다. 이렇게 그의 그림 속에서 모든 사물은 평면이 된다. 사물의 평면-되기. 입체적인 오브제는 평면이 되고, 움직이는 물체도 평면에서 정지한다. 그의 캔버스는 시간을 정지시키고 공간을 해체한다. 마치 작업에 어떤 의지도 없어 보이는 그의 캔버스는 그래서 심심하고 밋밋하다. 

 

회화가 그려지는 현실과 대비하면 그의 캔버스는 낯설고 공허하기 조차하다. 공간은 더욱 풍성해지고 시간은 한층 역동적이어서, 극사실주의에 이르면 캔버스와 현실은 구별되지 않는다. 이러한 회화의 현실은 화려한 멀티미디어의 감각에 압도된 듯하다. 그의 캔버스는 회화의 현실에 던지는 낮은 중얼거림처럼 생각된다. “회화는 무엇이었나? 회화의 처음 시작은 평평한 면이었지······.” 사실 입체와 공간을 표현하는 기술로 보자면, 회화는 사진이나 멀티미디어의 흉내내기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입체를 만들 때조차 회화는 자기 방식으로 그려내야 한다. 공간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멀티미디어의 영역일 뿐 굳이 회화일 이유가 있을까?

 

회화는 점점 평면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공간을 해체하여 회화에 평면을 되돌려주고 있다. 셔터, 벽, 간판이 공간을 표시할 때, 그것은 셔터와 벽과 간판의 재현일 뿐이다. 플라스틱통, 전구, 전기줄, 고깔이 그것 자체일 때 다른 것을 생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이 공간을 표현하지 않을 때, 그것들은 풍경이 되기도 하고 정물이 되기도 하고 마침내 회화적 방식으로 추상이 된다. 사물이 그것이기를 그칠 때, 사물은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특정한 사물을 해체하여 모든 것들이 생성되는 ‘회화의 평면’, 그의 캔버스는 이 평면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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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그림 속에서 모든 사물은 평면이 된다. 사물의 평면-되기. 

 입체적인 오브제는 평면이 되고, 움직이는 자전거도 평면에서 정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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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가 없는 공간처럼 그의 작업은 입체와 공간을 해체하여 회화에 평면을 되돌려준다.>


결국 회화의 사건화 :: 사물의 낯가림으로 회화를 낯설게 하는 감각

 

이현우는 낯가림이 있는 수줍은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그림에도 정직하게 드러난다. 주목성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오브제로 삼거나, 텍스트를 지워서 사물을 침묵하게 하거나, 사물의 입체와 공간을 평면처럼 취급하는 작업방식. 이런 그의 낯가림이 오늘의 회화를 낯설게 한다. 그의 작업은 내용형식에서 사물의 얼굴을 해체하고, 그로부터 다른 방식으로 회화가 이야기하게 한다. 한편 표현형식에서 그의 작업은 입체와 공간을 해체하여 회화에 평면을 되돌려준다. 

 

회화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대중적인 방식에 비추어보면, 그의 작업은 확실히 회화를 낯설게 하는 감각이다. 작품의 생산에서 보면 주류를 형성하는 스타일에서 비껴나 있을 뿐 아니라, 그림을 소비하는 관람객의 시선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지축을 흔드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회화의 사건화’라고 할 만하다. 사실 사건이 그렇게 격정적일 필요는 없으며, 현실의 속도를 생각하면 그런 류의 사건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소한 사건이 결국 우리의 감각을 다르게 하고 세계를 다르게 생성시키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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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는 일상의 오브제와 주변환경이 만들어내는 조형성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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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구성된 그림은 풍경화가 되기도 하고 정물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일상에 대한 회화적 추상이다.>

 

 

『 사물의 낯가림, 회화의 낯설음 - 이현우展 』 작가소개

 

이 현 우 (LeeHyunWoo)

1990 출생 

2017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입학

2016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졸업

2009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개인전

2017 낯:가림, 예술공간 서:로, 서울

2017 윈도우 갤러리, 성북예술창작터, 서울

 

단체전

2016 트윈픽스, 하이트컬렉션, 서울

2016 구경꾼들, 갤러리 구, 서울

2012 하티스트 제1회 미대생 공모전, 인사아트센터, 서울 

 

레지던시

2017 527창작공간, 가평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류재숙은 저(오라클)의 실명이고, 공적인 글쓰기의 서명입니다.
미술평론은 제가 처음 하는 글쓰기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 평론은 제가 미술평론가로 처음 데뷔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_^
새로운 글쓰기로서 미술평론은 즐겁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지요.!

[예술공간 - 서:로]는 우리연구실의 회원인 아침이 운영하는 예술공동체입니다.
[예술공간 - 서:로]에도 따뜻한 응원을,
처음 개인전을 갖는 이현우작가전에도 많은 관람을 부탁드립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예술이 가장 거부당할 때는, 마네나 뒤샹처럼 일상의 어떤 부분을 예술이라고 우리에게 불쑥 들이밀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 우리는 예술이 아닌 일상 자체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난감함을 겪게 되지요.
오브제의 발견과 일상의 발명을 사유하는 작가를 보는 오라클님의 시선에서,
저는 '발견'으로서의 예술을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평론가로서 오라클님의 활약도 기대해봅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것. 그래서 기존의 스타일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처럼,
우리의 철학도 일상 속에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평론을 쓸 때는 다른 신체성을 느낄 수 있어서 저로서도 새로운 경험이었지요^^

아침님의 댓글

아침

오라클님의 평론은
작가보다 더 작업에 대하여 이해하는것같아요.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술공간 서:로는
이현우 작가의 전시 시작으로
한달에 두작가가 전시할 예정입니다.
시간나는 틈틈히 놀러오세요~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이현우의 작품에 대한 평론을 쓰게 된 것도 참 우연한 일이었지요.
그처럼, 우리 삶은 어느 곳으로 가게 될 지 모르는 낯선 돌발인 것 같아요.
이런 방식의 '돌발흔적'을 많이 만드는 것이, 우리를 다채롭게 하겠지요.
이현우작가와 그리고 아침과 함께 하는 작업은 즐겁고 신선했어요^^

희음님의 댓글

희음

우리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하찮다고 여기는 어떤 것들과 같이 흐르는 존재라는 사실의 발견, 그런 맥락에서 이현우의 작업은 일상의 하찮음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특별한 무엇이라는 오라클 님의 작품 읽기가 무척이나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장막 혹은 베일을 통해 그 뒤의 무언가를, 그리고 그 뒤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는 말에도 공감하고요, 더불어 이현우의 작업은 그 뒤의 특별한 무엇을 상상하게 하기보다는 장막 혹은 베일 자체의 초라함, 그것이 가로놓인 '자리'의 초라함을 통해, 그 뒤의 어떤 것도 특별한 것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푸코가 <문학의 고고학>에서 언급한, 얼굴을 가린 부채와 양껏 날개를 펼친 새는, 그 부채 혹은 날개 자체를 전시하면서 고요한 장막에 불과했던 그것을 더 도드라져 보이는 순간에 이르게 한다는 말처럼요. 물론 저의 이런 덧붙임은 오라클 님의 작품 읽기 속에 그 씨앗이 이미 들어있다고 봅니다.
좋은 작품 소개 감사하고, 특별한 작품 읽기도 만날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더 고맙고 반가운 건 오라클 님의 열심을 통한, 당신의 또 한 특별한 도약에 관한 소식이지만요!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무엇을 가린 장막은 그 뒤의 특별한 무엇을 상상하게 하기보다 장막 혹은 베일 자체의 초라함,
그것이 가로놓인 '자리'의 초라함을 통해, 그 뒤의 어떤 것도 특별한 것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의 평론에 희음의 비평이 즐겁고 고맙습니다. 나의 새로운 시도에에 대한 축하로 읽습니다 ^.^

아침님의 댓글

아침

희음님의 짧지만 강렬한 그림읽기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않고, 속단하지않고, 회의에 빠지지도 않고
가림막을 걷어 보는것.(혹은 가림막으로 가리는것)
그것이 예술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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