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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광인의 우화 #1 - 장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기픈옹달 / 2017-05-17 / 조회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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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상반기 서울사대부고에서 '선농인문학서당'이라는 이름으로 <장자>를 강의합니다. 강의 시간에 마련한 자료를 나누어요. 

장자는 역사적 인물입니다. 상상으로 지어낸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매우 짧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이라는 책에 아주 조금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춘추전국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인물을 기록한 책입니다. 장수, 책략가, 정치가 그리고 장자와 같은 학자들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자의 시대를 알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지요. 그런데 훗날 장자의 명성에 비하면 사마천은 장자를 그리 주목하지 않았나 봅니다. 

 

사마천은 <노자•한비열전>에서 그에 대해 짧게 언급합니다. 여기서 노자는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한비는 <한비자>의 저자로 유명한 한비자를 가리키지요. 워낙 많은 사람을 다루기 때문에 사마천은 종종 여러 사람을 묶어 하나의 글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자•한비열전>이 그렇습니다. 

 

<노자•한비열전​>에서는 총 4명의 인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노자와 장자, 신불해와 한비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4명의 이름을 따서 <노•장•신•한열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노자•한비열전>이에요. 이 글의 주인공이 노자와 한비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노자는 장자와 더불어 중국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여기서 ‘도가’란 ‘도道’에 대해 탐구한 학파를 가리킵니다. 훗날 여기서 출발해 민간신앙의 형식을 갖춘 종교가 나오는데 이를 ‘도교’라고 부르지요. 한편 신불해와 한비자는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한비자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릴 정도로 권력을 쥔 왕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흔히 도가는 자유를 주장했고 법가는 강력한 통제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둘을 함께 묶다니! 실제로 <장자>를 읽어보면 한비자의 생각과는 매우 다른 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자는 ‘법’ 따위에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아마 자신의 이름이 이들과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크게 실망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사마천 시대에 장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중국 사상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노자>가 병법을 다룬 책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그런 해석에 주목하는 입장입니다. 병법이란 군대를 이끄는 방법을 말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군대는 아주 강력한 원칙으로 움직입니다. 법이란 나라를 군대처럼 엄격하게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자와 한비자는 그리 멀지 않지요. 

 

결론만 이야기하면 저는 노자와 장자가 그리 가깝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노자>야 말로 장자를 ‘오독’하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마천 시대에도 그리고 한참 뒤에도 많은 사람들은 노자와 장자가 매우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자와 장자를 함께 묶어 이야기하곤 했지요.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장자라는 인물, 그리고 <장자>라는 책의 고유한 매력입니다. 앞으로 기존의 해석과는 좀 다르게 <장자>를 읽어보려 합니다. 

 

다시 인물의 이야기로 돌아옵시다. 비록 장자가 잘못된 자리에 끼어있지만 그 기록을 전부 버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게다가 <장자>를 제외하면 인간 장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랍니다. 그렇게 중요하니 아래에 기록 전부를 인용합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김원중 선생의 번역입니다. 

 

장자莊子는 몽蒙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그는 일찍이 몽지방의 칠원漆園이라는 곳에서 벼슬아치 노릇을 했고 양혜왕梁惠王, 제선왕齊宣王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는 학문이 넓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 학문의 요체는 노자의 말에서 시작하여 노자의 학설로 돌아간다. 십여 만 자에 이르는 그의 책은 대부분 우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어부漁夫〉, 〈도척盜跖〉, 〈거협胠篋〉편을 지어서 공자 무리를 비판하고 노자의 가르침을 밝혔다. 외루허畏累虛, 항상자亢桑子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 꾸며 낸 이야기이다.

 

장자는 빼어난 문장으로 세상일과 인간의 마음을 살피고 이에 어울리는 비유를 들어 유가와 묵가를 공격했다. 당대의 학문이 무르익은 위대한 학자들도 장주의 공격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의 말은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으므로 왕공王公이나 대인大人들에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초나라 위왕威王은 장주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많은 예물을 주고 재상으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장주는 웃으며 초나라 왕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 금千金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교제(郊祭: 고대 제왕이 해마다 동짓날 도성의 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올린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이것이 전부입니다. 알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래도 이 부분을 꼼꼼하게 함께 정리해보도록 합시다.

 

우선 장자의 이름. 여느 제자백가와 마찬가지로 장자에게도 ‘자子’라는 호칭이 붙었습니다. 영어로는 Master, Philosopher로 풀이하더군요. 우리말로 옮기면 ‘선생님’이라 옮길 수 있어요. 어떤 분야에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춘추전국 시대에는 이렇게 성씨 뒤에 자를 붙여 존경의 의미를 표현하곤 했답니다. 장자莊子, 장씨 선생님의 본명은 장주莊周입니다. 그의 본명을 만날 일은 거의 없지만 상식 차원에서 기억해둡시다.

 

그의 고향은 몽蒙이었다고 합니다. 춘추전국 시대의 여러 나라 가운데 송나라에 속한 지역이었어요. 송나라는 이웃한 강대국 틈에 끼어 전란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한편 그는 양혜왕, 제선왕과 동시대 사람이었다고 해요. 이 둘은 전쟁을 매우 좋아했던 인물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에 장자가 살았다는 점을 기억해 둡시다. 

 

양혜왕, 제선왕과 동시대 사람이라는 점은 또 다른 빼어난 인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맹자이지요. 맹자를 펼치면 양혜왕과 논쟁을 벌이는 맹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선왕도 맹자의 중요한 논쟁 상대였습니다. <맹자>를 보면 그 시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거리에 마구 시체가 뒹구는 사람을 잡아먹는 시대! 이런 참혹한 시대에 맹자는 제후왕들을 만나 왕도王道정치라는 이상을 이야기합니다. 인정이 넘치는 왕이 되어야 한다고, 그런 왕이 있어야 천하가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장자는 맹자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그도 한때 칠원이라는 곳의 관리였지만 그는 도무지 나랏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어요. 여기서 칠원은 옻나무 동산을 이야기합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제사 도구에 옻칠을 해서 쓰고는 했어요. 아마 그에 관련된 일을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높은 관직은 아니었을 거예요. 하나 덧붙이면 이 때문인지 <장자>에는 나무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답니다. 

 

사마천은 그가 매우 비판적인 인물이었으며 매우 뛰어난 말재주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때문에 당시의 제후들이 그를 들어 쓰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말 많은 아웃사이더였던 것이지요. '아싸' 장자!! 그런데 초나라 위왕은 그를 불러 들일 생각을 품습니다. 사신을 보내어 장자를 모셔 오려 했습니다. 제후가 직접 사람을 보냈으니 제안에 응했다면 장자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장자는 제사에 바쳐지는 소를 비유하며 제안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언이설에 감추어져 있는 권력을 맨 얼굴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지요. 많은 돈과 높은 자리를 제안하며 그를 부르지만 그 자리는 결코 장자 본인을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름진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가 제공되었던 것은 커다란 제사에 바쳐지는 소였기 때문이지요. 화려한 비단을 두르고 끌려가는 날 진흙탕에 뒹구는 돼지를 부러워한들 무슨 소용일까요.

 

그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 자유롭게 노닐겠다고. <장자>를 읽어보면 장자의 이런 단호한 태도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높은 지위나 명예 따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차차 알아보겠지만 장자가 단칼에 제안을 거절한 것은 그 시대가 가진 폭력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삶을 갈아 넣는 시대. 소수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 어지러워진 사회.

 

개인적으로 <장자>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알아두면 좋은, 낡디 낡은 옛 글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전해주는 책이라는 뜻이지요.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장자의 시대에 못지않게 어지럽기 때문입니다. 헬조선, 지옥 같은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에게 장자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귀 기울여 봅시다.

 

마지막으로 <장자>라는 책에 대해 간단히 알아봅시다. 사마천은 약 10여 만 자에 이른다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읽는 <장자>는 그에 훨씬 모자랍니다. 여기서 사마천 시대의 <장자>와 오늘 우리가 읽는 <장자>가 다르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상당 부분이 사라진 <장자>를 읽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크게 아쉬워할 일은 아닙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총 33편의 <장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분하는데 <내편>은 장자 본인의 말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외편>은 좀 거리가 있다는 뜻이구요, <잡편>은 말 그대로 잡다하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장자> 안에는 장자의 말과 그 밖의 다른 말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지요. 아마 사라진 부분은 <잡편>에도 들기 힘든 부분이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장자: 내편>을 함께 읽을 예정입니다. 총 7편으로 구성된 이 부분은 오래도록 <장자> 본인의 사상이 잘 담긴 글이라 여겨졌습니다. 다만 미리 일러둘 것은 개인적으로 <내편> 안에서조차 차이가 있다고 본다는 점입니다. <내편> 모든 부분을 똑같이 읽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마천은 장자가 노자를 계승했으며 공자를 공격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했듯 장자와 노자 사이는 꽤 거리가 멉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생각하는 장자는 공자와 상당히 가깝기도 합니다. 사마천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장자>를 읽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강의를 진행하면서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제 장자를 직접 만날 시간입니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장자>는 ‘교과서적 이해’에서 매우 자유로운 책입니다. 다양한 해석의 방향이 가능한 책이지요. 따라서 여러분도 자신 있게 <장자>를 읽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지 말고 과감하게 해석해보세요. 나아가 역자, 강사의 말을 의심하면서 함께 공부하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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