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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옹달 #8 - 취푸편 丙 : 공자, 어제와 오늘
기픈옹달 / 2018-11-26 /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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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읽기를 권합니다. 

https://brunch.co.kr/@zziraci/183


Tip 1. 삼공문표三孔门票

취푸에는 삼공三孔이라 하여 공묘孔庙, 공부孔府, 공림孔林이 있다. 순서는 공묘 - 공부 - 공림으로 돌아보는 것이 좋다. 세 곳의 입장권을 합쳐 140위안이다. 만약 어린이 거나 노인인 경우, 혹은 학생이라면 할인이 가능하니 알아보도록 하자. 시간 여유가 있다면 공자육예성을 먼저 방문하는 것도 좋다. 작은 박물관과 미니어처로 고대 성을 재현해 놓은 곳도 있다.

 

Tip 2. 삼륜차 혹은 도보

취푸에는 택시를 보기 힘들다. 대신 거리마다 빼곡하게 들어선 삼륜차를 볼 수 있다. 먼 길을 이동한다면 삼륜차를 타는 것도 방법이다. 버스가 운행하기는 하는데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다. 도시 전체가 관광지이다 보니 역설적으로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의 태반이 공씨孔氏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튼튼한 다리를 가졌다면 걸어 다니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많은 곳이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지도를 숙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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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혁명정신을 배워 비림비공 혁명의 선봉이 되자] 루쉰의 혁명정신이란 곧 공자를 배격하는 것이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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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혁명 당시 취푸는 적잖은 상흔을 입었다. 공자를 의미하는 '만세사표'라는 편액을 불태우고 있다. 

 

 

어찌 보면 매우 모순적인 여행이다. 루쉰의 글을 읽은 다음 날, 바로 공묘를 방문하다니. 루쉰이 말했던 '철의 방'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공자로 대표되는 전통일 것이다. 루쉰은 일찍이 <광인일기>에서 식인(吃人)이라는 표현으로 전통의 폭력성을 고발했다. 이후 루쉰은 마오에 의해 혁명의 성인으로 추앙되어 전통 사회의 성인이었던 공자의 자리를 대신했다.  

 

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루쉰의 후예를 자처하는 홍위병은 공자의 무덤을 파해쳤다. 취푸의 공묘도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채 50년도 지나지 않아 공자가 다시 복권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011년 천안문 광장에 공자의 동상이 세워졌다. 마오의 초상화를 마주하고 세워진 공자상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천안문 광장에 공자라니! 논란 끝에 약 100일 뒤 철거되기는 했으나 공자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아직까지 이 모순을 유려하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공산당이 그저 공자를 부려먹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다시 공자가 부활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질문을 가지고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루쉰과 공자를 연이어 만나는 것은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을 이해하려면 이 모순을 응시할 ‘겹눈’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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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가 주석과 공자가 함께 있는 모습. 홍위병은 이를 상상할 수나 있었을까?

 

공묘 앞에는 다오요(导游)가 많다. 그러나 외국인을 위한 안내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앞으로도 한국어 안내는 쉬이 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여행단에는 숙련된 가이드(흠흠!!)가 있으니 다행이다. 태화원기太和元氣, 지성묘至聖廟라 쓰인 문을 지나, 공묘에 들어왔다. 잠시 앉아 공자와 관련된 글을 읽기로 한다. 오늘 읽을 글은 주희의 <논어서설>.

 

역시 텍스트는 힘이 있다. 가이드의 말이 아무리 좋아도 추임새에 불과하다. 짧은 시간을 내어 읽는 글은 여행에 새로운 경험을 새겨준다. 주희의 <논어서설>을 선택한 이유는 공자의 생애를 간결하게 압축한 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논어>라는 책이 갖는 위상까지 알 수 있다. 다 읽은 뒤 친절한 가이드는 질문을 기다렸다. 혹시 읽으면서 궁금한 것이 있나요? 질문은 무슨... 어서 가자고 재촉이다. 볕도 좋으니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자. 암, 글은 글대로 제 역할을 다했으니 다시 길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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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묘孔庙에서도 학습!! '현장'에서 읽는 글은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준다.

 

공자가 있는 대성전大成殿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문도 여러 개 넘어야 하고. 겹겹이 문을 만들어 놓은 것은 그만큼 쉬이 만날 수 없는 대상이라는 뜻일 테다. 공묘에 들어오면 커다란 비석을 수 없이 만날 수 있는데 저마다 역대 황제들이 세워놓은 비석이다. 저렇게 큰 돌을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비석의 크기는 공자에 대한 존숭과 그에 비례하여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황제의 욕망을 대변한다. 밖에 있는 것일수록 후대의 것이며, 크기가 더 크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참을 걸어가면 행단杏壇이 보인다.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단다. 그래서 행단은 후대에 학교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저 글귀가 적힌 저 자리에 공자와 제자들이 모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고증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야기는 역사가 되고, 유물이 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낳을 뿐이다. 행단을 지나면 대성전이 있고 좌우로 역대 유학자들의 위패를 보관한 곳이 있다. 아는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책에서 보던 이름을 위패로 만나는 느낌이란. 시끌벅적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무리가 지나지만 공자의 위패만 관심 있지 좌우로 늘어선 유학자들의 위패에는 영 관심이 없나 보다. 사람이 오가지 않는지 먼지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공자 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만, 정작 공자의 이름이 널리 떨친 것은 그 뒤를 이은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Confucianism이라는 표현보다는 유가儒家라는 말이 더 적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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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공자를 '성인'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제자와 그 후예들 때문이었다.

 

공묘를 나서면 공자의 후예들이 모여 살았다는 공부孔府를 방문할 수 있다. 하나씩 꼽아 보면 재미있겠지만 한참을 걸어 지쳐버렸다. 훌훌 둘러 보았는데도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다. 어제에 이어 이틀 연속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원성이 자자하다. 걷고 쉬고, 걷고 쉬고, 잠깐 벤치에서 눈을 붙였지만(!) 피로가 쉬이 가시지 않는다. 

 

본디 삼공三孔이라 하여 공묘孔庙와 공부孔府 여기에 공자의 묘가 있는 공림孔林을 돌아보는 것이 기본적인 코스이다. 허나 너무 지친 나머지 공림은 돌아보지 못했다. 재촉해서 일정을 소화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무리할 것이 무엇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지난 4월에는 기차 시간 때문에 바람처럼 재빠르게 공림을 둘러보고 나왔다. 공자의 무덤을 두 눈으로 보았다는 게 작은 성과라면 성과인데 이번 여행은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고자 한다. 일행의 마음도 같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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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聖殿이 아니라 大成殿이다. 이는 맹자가 공자를 두고 '집대성集大成'이라 평했기 때문이다. 왼쪽 사진에서 공자 왼편에도 '집대성'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공부에서 나오니 해가 많이 기울었다. 차를 마시며 지친 다리를 쉴 곳을 찾아보는데 다행히 상점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 들어가 물어보니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단다. 차도 맛있고 상점도 깨끗하다. 좀 여유가 생겼을까. 일행은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에 관심이 많다. 찻잎에서 찻잎을 넣어두는 작은 통, 공부가주孔府家酒 등등

 

출발하기 전, 일행은 얼마나 환전을 해야 할까 물어보았다. 일단 기본 여행 경비는 다 지불한 것이니 주류 비용이나 선물 구입 비용 정도만 있으면 될 거라 했다. 중국돈으로 약 500위안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웬걸 막상 중국에 오니 선물이 아니더라도 살 것이 어찌나 많은지. 저마다 한 아름씩 물건을 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지만 다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사온 공부가주를 아직도 마시지 못했다. 병도 참 예뻤는데...

 

숙소로 가는 길에 지름길 같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좀 낡은 티가 나는 골목을 지나니 하교하는 학생들이 많다. 동글동글한 학생에게 물어보니 근처에 학교가 있단다. 학교 옆에는 집을 개조해서 일종의 공부방처럼 운영하는 곳이 많다. 이야기를 나누던 한 아이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눈이 동그랗게 되며 정말이냐고 묻는다. 한국말을 해보라며 시키는데 낯선 외국말이라 들어도 외국말인지 분간도 못한다. 

 

웅성거리며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니 너무 정겹다. 소도시의 정취가 남아 있는 것이 갑자기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친구를 사귀어볼 수 있었을 텐데. 어른들만 있는 것이, 바로 내일 아침 취푸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학교 앞의 정겨운 가게들, 작은 빵집, 문구사, 서점 등을 지나 지친 발을 이끌고 숙소에 돌아왔다. 고작 이틀이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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