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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옹달 #4 - 칭다오편 乙 : 루쉰, 만나러 갑니다 +2
기픈옹달 / 2018-11-04 /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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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보는 것이 보기 더 좋을 거예요​. 

https://brunch.co.kr/@zziraci/159



Tip 1. 스마트폰 어플

이제는 여행에서도 스마트폰이 필수. 몇 가지 어플을 잘 이용하면 중국 여행이 편하다. 
바이두 맵(百度地图): 지도 대용으로 충분하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경로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바이두 번역(百度翻译): 모르는 글자를 찾아보는데 유용하다. 병음을 입력하지 않고, 카메라를 이용하여 글자를 입력하는 것도 가능하다. 
취날(去哪儿网): 갖가지 여행 정보가 많다. 중국 현지인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앱.

 

Tip 2. VPN

중국 통신망을 이용하는 경우 이용하지 못하는 사이트가 있다. 대표적으로 구글, 페이스북 등. 이 경우 VPN이라는 우회용 어플을 이용하면 된다. 여러 종류가 있으니 찾아보고 입맛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어플을 구동시켜야 한다는 점이 불편하기는 하나, 생각보다 느리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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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전화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통신의 발달은 우리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동네에 공중전화가 하나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을 보면 좀 신기하다. 거의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한 까닭이다. 과거 중국에는 거리의 노점에서 전화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일단 전화를 이용하고 돈을 지불하는 식이었다. 아예 전화기만 여러 대 갖춰놓은 가게도 있었다. 일종의 전화방이라고 할까? 한국으로 전화를 걸려면 선불카드를 이용하는 게 이득이었다. 표기된 금액보다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10년 만에 중국을 찾으니 공중전화는 물론, 선불카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모두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고 있더라.

한 해동안 중국에 머물면서는 핸드폰을 마련했다. 우리식으로 하면 일종의 선불폰이었다. 미리 지불한 금액이 다 떨어질 때까지 쓰는 식이었다. 헌데 전화를 걸 때뿐만 아니라 전화를 받아도 돈이 나가는 터라 통화가 많으면 그만큼 돈이 쑥쑥 빠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통화료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통신비 가운데 통화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중국도 비슷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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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서방] 제법 눈여겨 볼 책도 많다.

일행에게 커피를 권하고는 가까운 중국연통中国联通을 찾았다. 딱 1주일 있을 테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타격이 크다. 여행을 이끄는 입장에서 순간순간 찾아야 하는 정보도 적지 않다. 유심칩을 개통해야지. 신분증을 들고 막무가내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절차는 복잡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2주간 3G 데이터를 이용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언제나 기록이 중요!! ㅠㅠ)

다만 21세기 통제국가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복사하는 수준이라 생각했지만 웬걸, 무슨 앱을 실행시키더니 내 얼굴을 찍는다. 그것도 상하 좌우로 얼굴을 돌리란다. 젠장, 입국 전에는 열 손가락의 지문을 가져가다니 이번에는 얼굴 전체를 스캔하는구나. 나중에 보니 중국 내에서는 얼굴 인증이 이미 널리 확산된듯하다. 호텔에서 숙박할 때도, 기차역에 들어갈 때도 중국인들은 신분증과 함께 얼굴을 스캔당하고 있었다. IT와 중국의 만남은 또 무얼 만들어 내려나.

돌아와 보니 동료들은 수다 삼매경이다. 즐거운 수다가 한창이지만 가이드는 일을 해야 한다.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전, 준비해온 자료를 함께 읽었다. <중국철학사>에서 캉유웨이康有为의 <대동서大同书>를 인용한 부분. 20세기 초 지식인을 소개하려 캉유웨이를 골랐는데 아뿔싸! 그가 꿈꾼 대동의 세계가 IT와 만나 실현을 목전에 두고 있구나. 아마도 이 커다란 나라는 IT 기술을 이용하여 대동의 세계를 구축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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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유웨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중국 지식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칭다오에 그의 고거故居가 있다. 시간이 없어 방문하지는 못했다. 

카페에서 나와 잔교로 향했다. 잔교는 칭다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칭다오 맥주의 로고에 새겨져 있다. 바다로 쭉 뻗은 이곳은 본디 해군이 이용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부두라고 한다. 허나 잘 알려져 있듯 중국의 해군은 청일전쟁으로 일본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저 관광지로 수많은 사람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잔교에서 나와 루쉰 공원으로 향했다. 여느 중국 도시처럼 칭다오에도 공원이 여럿 있다. 중산공원이 좋다고 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루쉰 공원을 선택한 이유는 그곳에 루쉰 상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루쉰공원이라 하면 상하이의 루쉰 공원을 이야기한다. 루쉰의 무덤이 바로 상하이의 그곳에 있다. 그에 비해 칭다오의 루쉰 공원은 루쉰과 별 인연이 없다. 루쉰이 휴가차 칭다오를 방문한 것을 기념해 루쉰공원으로 이름 붙였다는 이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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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 해변] 루쉰 공원에서 바라본 모습. 바로 곁에 바다를 접하고 있다.

그래도 중국 근현대사를 보자고 할 때 루쉰만큼 적절한 인물도 없다. 그는 중국의 근현대를 산 인물 가운데 매우 독특한 행보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전통을 묵수하지도, 서구문물을 대놓고 환영하지도 않았다. 그를 계몽주의자로 분류할 수도 있으나, 그는 민중을 계몽하기보다는 계몽주의자들을 계몽하기 바랐다. 

루쉰 공원에 이르면 루쉰의 상을 볼 수 있다. '鲁迅是中国文化革命的主将,他不但是伟大的文学家,而且是伟大的思想家和伟大的革命家。: 루쉰은 중국 문화혁명의 대장(主将)이다. 그는 위대한 문학가일 뿐 아니라 위대한 사상이자 혁명가이다.' 루쉰 상 뒤에는 마오의 말이 새겨져 있다. 칭다오 공청단共青團(공산주의 청년단)의 이름으로 새겨진 이 비석은 루쉰이 어떻게 읽혀 왔는지를 보여준다. 

루쉰 상 뒤로는 그의 글을 새겨놓은 커다란 장식물이 있다. 책 모양의 이 장식물에는 <외침>의 서문 일부가 실려 있다. 철의 방에 갇혀있는 막막한 상황을 이야기한 그의 글은 역설적이게도 ‘외침’이라는 소설집의 서문이 되었다. 루쉰의 대표작, <광인일기>와 <아Q정전>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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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呐喊] 서문 일부가 새겨져 있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게 되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외침: 서문>, 루쉰전집, 그린비.

드넓은 바다를 마주하고 이 글이 새겨져 있다. 루쉰이 경험한 적막과 외침을 모두 곱씹어 헤아릴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 앉아 루쉰의 <외침> 서문 전문을 다 읽었다. 별다른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분위기에 취했는지, 바닷바람이 좋았는지, 이국땅의 낯선 공기에 들떴는지 그저 글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수십 번 읽은 글이지만, 그의 나라에서, 그를 기념한 공원에서, 그의 글을 새긴 조형물 앞에서 읽는 맛은 새로웠다. 

루쉰은 20세기 초 중국에게서 절망과 희망을 모두 보았다. 오늘날 중국의 모습을, 상전벽해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부족한 이 중국의 변화를 보고 그는 무엇이라 말할까? 절망도 희망도 모두 허망하다 말하겠지만. 부질없는 물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질문이 솟아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법. 그가 경험한 20세기 중국은 마치 철방에 갇힌 것처럼 답답한 세계였다. 낡은 왕조를 무너뜨렸으나 새로운 시대를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은 변발이냐 아니냐를 두고 다투었고, 여전히 전족으로 여성을 속박하고 있었다. 민중을 계몽하겠다는 이들은 또 얼마나 허위에 가득 차 있었는가.

그런 중국이 세계에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다. 대다수 한국인은 중국을 무시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말 그대로 대국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칭다오의 신시가지에 늘어선 빌딩들을 보면 중국의 변화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이를 두고 루쉰은 그나마 자신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사라지지 않은 증거라고 말할까. 아니면 여전히 희망 속에 절망이 그늘 지워진 모습이라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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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1918년 4월 그는 <광인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작품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나는 딱 100년 뒤인, 올해 4월과 9월 두차례 루쉰 공원을 찾았다.

 

댓글목록

라라님의 댓글

라라

그리고 또 딱 100년 뒤 2118년에도 누가 이 공원을 다시 찾고 또 루쉰을 읽겠지요.......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댓글의 댓글

휴... 까마득한 이야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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