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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먼지, 그리고 소리 +5
케테르 / 2016-04-10 / 조회 2,320 

본문

시인은 서재 안의 먼지가 되어야 한다

서재 안에 앉은 돌덩이가 되어

먼지를 덮어쓰고 먼지와 함께 호흡하고 먼지로 밥먹고

책 가루를 요리하고 자신을 부숴 먼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먼지를 흰 종이에 쏟아내고

책방의 먼지처럼 분해되어야 한다

시인이 먼지가 될 때 씨앗이 발아하고 싹을 틔우고

마침내 단아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다

먼지 냄새가 나지 않는 시는

도자기 안에 가둔 씨앗처럼 싹을 트지 못한다

시인은 먼지의 존재이자

시는 먼지의 결정체이다

 

시인은 거리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

광야의 거친 바람을 먹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

사람들의 눈물과 비명을 귀고막에 새겨야 한다

그들의 눈물을 마시고 허기를 먹어야 한다

광장의 지껄임과 웃음과 어깨동무에 동화되어야 한다

함께 노래하고 술마시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줏어담아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 숙성시켜야 한다

골목의 후미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검은 거래와

전쟁터의 폭력과 잔혹함에 치를 떨며 통곡하여야 한다

사랑에 미쳐 울어도 보고 고통의 절정에서 진저리쳐보아야 한다

시장 바닥의 생존의 몸부림과 풍찬노숙의 찬바람을 맛보아야 한다

시인이 먼저 광야의 바람이 되어

삶의 욕망과 절망과 피비린내를 묻어내지 못하면

시는 양분이 없는 관념이 되어 표류한다

 

시어는 은자의 고독과 독수도의 인고를 통해 빛나고

대중의 눈물과 격정과 비명소리을 통해 향을 낸다

그대 시인이여

책방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거리로 뛰쳐나가라

그대의 고상한 제단과 넉넉한 침대로부터

시는 먼지와 고통으로 버무린 푸른 넋의 함성이기 때문이다

그대 시인이여 수도자가 되고 눈물흘리는 무사가 되라

 

댓글목록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제가 2014년 8월 9일에 페북에 막 쓴 글입니다.
제 친구 시인이 선배시인들을 만나 한 잔 했는데 그 때 고형렬 시인인가
그분이 작가는 먼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 한마디에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기본 사상은 제 사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시인은 광장의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저의 고유의 생각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실험실 회원 여러분, 이 봄에 봄빛같은 행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오! 케테르 앙띠세미나 이후로 궁금했는데, 오랜만이예요^^
기본사상이 제 것이 아니라니요~! 세계의 어떤 것에 누구의 것이 있나요?
누구의 것을 말해야 한다면, 자연의 것이지요! 요즘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공부하고 있어서요.

[에티카]를 공부하면서, 세계의 먼지 하나만 사라져도, 우주가 사라질 것이라거나,
하나의 먼지로부터 세계의 생성과 존재의 동등함을 설명하는 방식을 생각 중이었는데,
케테르의 시 주제가 '먼지'여서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실험실을 잊지 않고 안부를 주어서 캄샤!! 다시 함께 공부하게 될 날을 기다리며... ^^*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댓글의 댓글

오오오라클님, 오랜만이네요
제가 인용문을 늘 언급하는 습관이 있어서 ~~~

스피노자가 그케 멋진 말을 하였네요 ~~ 저건 완전히 신비주의적 표현인데 가장 유뮬론적이기도 하군요
인도의 성자 왈,
물방울 하나 속에 바다가 담겨 있고
모래알갱이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다 ~~ 고 했지요.

오라클님, 책 빨리 쓰시고 왕년의 시심을 일구오
빨리 시집을 내세요 내가 50권을 팔아줄테니 ~~~

담에 봐요 ~~~ ^^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오라클, 시가 아님다 ㅋ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글쿤요, 시가 아니군요^^*
시가 아니라고 읽으니 훨씬 좋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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