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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음의 시 '완전쉼표'를 읽고서 +4
케테르 / 2016-03-06 / 조회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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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님의 시 '완전쉼표'를 읽고 감상문을 솔직하게 담아봅니다. 제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저 역시 그런 엉터리 연주자이기 때문입니다. 난해한 시라서 뒤로 접어두었는데, 오늘 저녁 읽다가 저 역시 아직도 돌림노래를 부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회의 변으로 소감문을 올립니다]  

 

시 ‘완전쉼표’는 읽기와 독해를 하는 시가 아니라 듣는 시이다. 노래소리와 두드리는 소리를 들어야 시가 느껴진다. 어머니의 밤새 부르는 노래는 묵음이 되고 그 쉼표의 공백만큼 그친다. 쉼표의 길이만큼 노래는 멈추지만 또 다시 두드리는 소리가 끼어든다.

 

두드리는 소리와 노래 소리는 함께 겹쳐진다. 하드 케이스 속의 악기가 소리를 내어야 하는 음악의 법칙과 달리, 하드 케이스를 두드릴 때 소리가 울린다. 발길질의 난타처럼 두드림은 쉬지 않고, 하드 케이스는 튀어나온 돌부리처럼 발길질에 소리를 낸다.

 

우리는 악기를 꺼내 연주하기보다는 하드 케이스만 두들긴다. 악기 본래의 소리는 흘러나오지 않고 케이스를 두드리는 소리만 가득하다. 하드 케이스는 악기를 소장하는 숭고한 박스가 아니라 테이블로, 의자로, 돌부리로 전혀 다른 정체성이 강요되었다. 하드 케이스의 우아함과 견고함은 소프트한 형체로 허물어진다. 돌덩이에서 뭉쳐진 밥덩어리로, 오래 고인 물웅덩이처럼 액화되고 분해된다.

 

누가 어머니의 몸을 발로 차고 있는가? 우리이다. 우리는 잔혹하다. 발끝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맨살에 굳은 살이 배이도록 하드 케이스 바디를 두들겼다. 닳아서 뭉툭해진 모서리로 허물어진 밥과 물조차 짓이기는 우리는 새디스트이다. 그 짓을 하고서도 웃어대는 우리는 악기 연주자가 아니라 케이스 파괴자들이다.

 

어머니의 노래는 밤에 들린다. 어머니는 자신의 신체와 삶 속에 담긴 자기 악기를 꺼내 무대 위에서 연주하지 못하고 어둔 밤에 다른 노래를 부른다. 한숨과 어머니의 노래는 어이진다. 어머니의 노래와 우리의 노래는 돌림노래로 이어진다.

 

한숨의 공백 속에 주어지는 고요와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는 쉼표의 공간은 전혀 다르다. 완전쉼표는 악보 속에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이는 어머니의 노래가 그치거나 두드리는 소리가 멈춘 것이 아니라 귀가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이다. 묵음은 노래의 그침이 아니라 청력 상실이다. 우리는 참으로 아이이다. 한 존재로서의 여성을 케이스 속에 가두어버리고, ‘어머니’라는 껍데기를 두들겨대며 히죽거리는 악동들이다.

 

쉼표는 그침이 아니다. 접속사이다. 노래는 이어진다. 어머니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그 존재를 어이없이 두들겨대는 우리의 엉터리 연주가 그칠 때까지.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는 쉼표도 없고 마침도 없는 비극의 공연이다.

 

시인은 참회한다. 악기를 꺼내보지도 않고 제대로 한번 연주하지도 않고, 가구처럼 사용하고, 돌부리처럼 하대하고, 먹거리로 마실거리로 그 양분과 쓸모만 섭취하고 갈취하기만한 착취적 행위를 ~~.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한 가족사의 이야기나 고틍스런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숭고한 존재에 대한 찬양이자 참회의 눈물을 담은 고백문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성적 깨달음은 어쩌면 어머니가 된 여성만이 발견할 수 있는 진리일런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조심스런 마음도 있고  공개된 공간에 올리는 것이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제 나름의 느낌과 해석이 솔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시평은 아니구요 ~~~ 소감이자 제 읽기의 방법론으로 시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시공부 하는 기분이기도 하구요 ~~~ 그냥 있는 그대로 좋게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케테르 같은 독자가 있어서 희음은 좋겠어요~!!

희음님의 댓글

희음

아, 이렇게 읽을 수도 있는 거군요. 시보다 시평이 더욱 좋고, 시가 시평에 빚지고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풍부한 말과 사유가 흐르고 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무엇으로 이 마음을 갚아야 할지 고민이 될 만큼요.^^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댓글의 댓글

헉 ~~ 제가 엇박자로 읽은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되는군요. 제 방식대로 읽은 것이니 이쁘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히려 가까이서 함께 공부하는 분을 통해 시를 깊이 읽게 되어 감사하구요 ~~~ 시인님의 시를 통해 시를 다시 배우는 듯 하고 시심이 약간 솟아나 시를 한두편 쓰게 되었답니다. 시 '창문의 쓸모'에 나타나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단서들 ~~ 이란 제목으로 마지막 소감을 타이핑 했는데 금요일 공부 모임에 드릴 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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