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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는 고향이 없다 - 루쉰, 전사의 글쓰기 #2
기픈옹달 / 2018-10-20 / 조회 44 

본문

* 몇몇 친구들과 '루쉰, 전사의 글스기'라는 이름으로 글쓰기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쓴 글을 나눕니다.

* 브런치에도 올려두었어요. 이쪽이 가독성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zziraci/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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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이나 요원한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내 무덤을 내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이 말은 나에게 가늠할 수 없는 말일뿐이다. 게다가 요즘 세태를 보면 무덤이란  영영 나와는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람은 또 어떤가. 아이를 잠재우는 작은 침대 같은 무엇인데, 내 어린 시절을 아무리 추적해봐도 요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요람 따위와는 영 연이 없는 삶이었을 테다. 아니면 내가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 것이든.

 

요람이건 무덤이건 도무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지금 내 삶의 현주소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 아닐까. 그래도 행여 아는가. 나중에 수많은 사람이 내 죽음을 기리며, 궁궐 같은 무덤을 만들어줄지. 무슨무슨 릉陵이라 이름 붙일지도 모를 일이다. 암,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지. 허나 아무리 상상해도 뿌듯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무덤이야 재력이나 명성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 요람은 사정이 다르다. 어쨌든 제 손으로 선택할 수도 없고, 오로지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보다 아름다운 상상이 깃들곤 한다. 포근함, 아련함, 순수함 따위의. 그것이 제 삶을 사랑하는 방편이다.

 

고향이란 요람과도 같다. 그곳 역시 늘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곳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설사 요람이 있다 한들 거기에 다시 몸을 뉘일 수 없지만, 고향에는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고향은 떠나야만 하는 곳이며 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존재한다. 

 

나는 늘 내 고향이 변변치 않다는 사실이 불만이었다. 내가 난 곳은 도회지였지만 유년 시절의 태반은 촌동네에서 지냈다. 헤아려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고을도 아니었고, 뭔가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다. 넓은 들이며, 푸른 바다, 너그러운 강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듬성듬성 솟아난 산, 적당히 지저분하지 않은 개울물 따위가 둘러싼 작은 시골이었다. 

 

살다 보면 누가 자기와 동향 사람이니 하며 자랑하는 이를 만나곤 하는데, 나는 도무지 자랑할 것이 없다. 변두리에는 변두리 인간만 나고 자라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중에 책에서 좀 가까운 지역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어찌나 반갑던지. 정지용, 이 시인의 출생지를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닭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향수>, 정지용.

교과서에도 나오는 데다, 노래로도 만들어졌으니 자연스레 입으로 외우는 시가 되었다. 헌데 따져보면 영 낯설기만 하다. 넓은 벌과 실개천 따위는 늘 상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내가 자란 곳과 그가 자란 곳이 제법 가깝다고 하는데, 어찌 영 까마득한 이야기를 하는지.

 

나이가 들어, 옛 고을에서 벗어나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저가 말하는 꿈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몇 번쯤 옛 동네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별것이 없으리라는 확신에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니, 무엇보다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아득한 그리움 따위가 없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 ‘향수’라는 말을 그토록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 분명하다. 

 

그는 1927년, 일본 유학 중에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이역만리라는 말처럼, 낯선 세계에 던져진 와중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일 테다. 당시 일본은 조선인이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세계의 중심이었다. 이른바 신문물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제국의 심장부에서 제가 나고 자란 곳을 노래하고 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꿈에도 잊히지 않는 순수함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이란.

 

일찍이 루쉰도 일본 유학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다. 정지용보다 약 20살 정도 많은 그는, 훨씬 일찍 일본에서 유학했다. 그렇다고 루쉰 당대의 일본이 정지용 때보다 뒤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루쉰은 고향 샤오싱을 떠나,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들어간다. 당시에는 고문을 배워 관리가 되는 것이 뭇사람들의 목표였는데 젊은 루쉰의 선택은 달랐다. 낡은 왕조가 곧 무너지리라는 것을 예감했는지 그는 서양 학문을 배워보겠다고 나선다. 그는 이후 일본으로, 그리고 돌아와서는 베이징에서 자리를 잡는다. 따져보면 제법 성공한 삶이다. 궁벽진 고을을 떠나 신문물을 배웠다. 그가 일본에서 배운 지식은 당시 중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에서는 대체로 그가 나고자란 고을을 부정적으로 그린다. 루전魯鎭이라는 이 고을은 아둔한 사람 천지이다. <내일>에서는 제대로 약도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쿵이지>에서는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낡은 지식인이 있다. <야단법석>은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어두운 마을 사람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야단법석>은 1917년 장쉰의 복벽 시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해에는 군벌인 장쉰이 황제를 다시 보위에 앉히려 했다. 궁벽진 그 고을에도 어째어째 이 소식이 전해졌다. 문제는 신해혁명 이후 변발을 자른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황제가 다시 자리에 오르면 변발을 뎅강 자른 사람의 목을 뎅강 자르겠지. 자오치 영감이 떵떵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사건은 제목처럼 ‘야단법석’으로 끝났지만 이 변두리 땅의 삶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데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른다. 그때그때 소식에 이쪽저쪽으로 휩쓸릴 뿐이다. 그러니 그가 이렇게 말한 것도 이해할만한 일이다.

 

아, 조물주의 채찍이 중국의 등짝을 후려치지 않는 한, 중국은 영원히 이 모양 이 꼴일 거야. 스스로 머리털 한 올도 바꾸려 하지 않을 테니 말야!

: <두발 이야기>, 루신전집, 그린비. (이하 루쉰 인용은 '그린비 루쉰전집')

그러니 채찍으로 등짝을 후려치고, 말을 안 들으면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니 어디 ‘향수’ 따위를 품을 곳이 있겠는가. 허나 그의 <고향>을 보면 단순히 이런 문명과 야만의 구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그의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베이징에서 생활하던 중, 그는 고향의 집을 처분하고 어머니를 베이징으로 모셔온다. 이를 위해 잠깐 고향에 머물렀던 때를 그리고 있다. 그는 약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나 고향의 산천이 옛과 같이 않았다.

 

아! 이게 내가 이십여 년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하던 고향이란 말인가?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이렇지 않았다. 그건 훨씬 더 근사했다. 그러나 기억 속의 그 아름다움을 떠올려 멋진 대목을 말하려 하면 영상도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져 버린다. 마치 그런 것이라는 듯. 그래서 나 스스로 이렇게 해명하는 것이다. 고향도 본시 그렇다. 진보가 없다 한들 슬픔을 느낄 이유는 없다. 그저 내 심정의 변화일 뿐이니까. 게다가 이번 귀향에 설렘 같은 게 있지도 않았으니까.

: <고향>

뭇 다른 사람처럼 그에게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러나 고향으로 향하는 순간 이 그리움이 사라지고 만다. 그것은 산천이 변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고향의 경험이, 기억이 단지 과거의 것이 되어 버렸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고향에서 만나는 옛 관계는 앞서 언급한 루전 사람들의 그것과 닮았다. 특히 두부집 서씨는 그를 몰아세운다. 베이징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필시 부자인 데다 신분까지 높을 것이라며 집의 물건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한다. 가차 없이 속물이 되어버리는 모습은 그가 고향에 설렘 따위를 기대할 수 없었던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어쩌면 루쉰은 이런 만남을 예견했을 지도.

 

그러나 룬투와의 만남은 그렇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와 함께 몸을 섞으며 놀았던 룬투와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이던 루쉰이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를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조개껍질과, 두더지나 고슴도치, 오소리 같은 것은 물론, 참새와 뿔새, 파랑새 따위를 일러주는 신기한 인물이었다. 어린 루쉰은 이 야생의 소년이 열어주는 세계의 다른 면모에 푹 빠지고 말았다. 

 

검푸른 하늘에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고, 그 아래 바닷가 백사장엔 새파란 수박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로 열한두 살이나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목에 은 목걸이를 한 채 차라는 놈을 향해 힘껏 작살을 던지고 있었다.

: <고향>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루쉰은 쌀짝 흥분한다. 고향에서의 무료한 일정을 좀 생동감 있게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룬투와의 만남은 세월의 장벽과 함께 또 다른 장벽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바닷가 농부인 룬투에게는 예전에 보이던 그런 싱그러움이 없었다. 피부도 거칠었고, 주름도 깊었다. 그것뿐이라면 세월을 탓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쉰의 비애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룬투가 루쉰을 처음 만나 꺼낸 말 때문이다. ‘나으리!......’라는 말. 루쉰을 오싹 소름 돋게 만든 이 말은 그 사이에 결코 쉬이 부술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루쉰의 말을 빌리면 ‘슬픈 장벽’이라 할 것이.

 

루쉰과 룬투 모두 2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적잖이 달라졌다. 소년은 사라졌다. 베이징의 교원과 바닷가 농부의 차이도 슬픈 장벽을 더욱 두텁게 만든 까닭이었다. 허나 근본적으로는 이 슬픔은 오랜 역사에서 온다. 루쉰의 아버지와 룬투의 아버지에 얽힌, 주인집과 거기에 고용된 사람이라는 신분의 격차. 이미 시간은 너무 흘러 이 슬픈 장벽을 도무지 부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두고두고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잠깐 얼굴을 맞댄 관계였기 때문에 이 슬픈 장벽을 어떻게 건드릴 수 없었을 테다. 

 

루쉰은 그날 밤까지 룬투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한다. 그러나 ‘하나같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결국 루쉰은 낯설어진, 변두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고향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루쉰은 배를 타고 돌아오며 상념에 젖는다. 

 

나는 드러누워 배 밑창의 철썩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내가 내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룬투와 이 지경으로 멀어졌지만 우리 후배들은 여전히 한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훙얼은 지금 수이성을 못 잊어 하지 않은가? 바라기는, 저들이 더 이상 나처럼 되지 말기를, 또 모두에게 틈이 생기지 않기를 (...) 저들은 새로운 삶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일찍 경험하지 못한 삶을.

: <고향>

루쉰의 조카 훙얼과 룬투의 아들 수이성은 과거 루쉰과 룬투의 어린 시절처럼 자유롭게 어울려 놀았다. 그 어울림이야 말로 루쉰 자신이 경험한 슬픈 장벽과는 다른 가능성 아닐까. 그들이 앞으로 자신과 같은 슬픈 장벽을 쌓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새로운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다른 말을 빌리면 ‘미래 소관’ 일뿐이다.

 

루쉰에게 고향이란 이처럼 과거의 슬픈 장벽을 확인하는 곳이며,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나와야 하는 곳처럼 보인다. 허나 그뿐이라면 그는 숱한 계몽주의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려보는 미래, 이른바 희망에 대해 곱씹어 본다. 혹여나 내가 생각해보는 그 미래, 희망도 그리 대단치 않은 건 아니지 않을까? 

 

룬투는 루쉰에서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다. 아마도 제사를 위해 필요한 것이리라. 언제까지 우상을 섬길 것일까. 루쉰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러나 배 밑창에서 루쉰은 자신의 희망도 우상과 대체 다를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저 현실의 슬픈 장벽을 빗겨나가기 위해 빌리는 것은 아닐까? 

 

그는 문명과 야만의 구도에서 고향을 고찰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자신의 옛 고을을 비판적으로 그려내지만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보편적인 속성을 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루전 사람들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는 그런 사람을 루전에 모아 두었다. 

 

<작은사건>은 그가 계몽주의자로 자처할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된 사건을 그린다. 바삐 어디론가 가야 하는 상황에서 인력거에 한 노파가 부딪힌다. 갈 길도 바쁘고 노파가 크게 다친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꾀를 부려 엄살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재촉하는 루쉰을 두고 인련거꾼은 그 노파를 주재소로 데리고 간다. 루쉰은 그 인력거꾼의 뒷모습이 점점 커지더니 ‘가죽 두루마기 안에 감추어진 내 ‘소아’를 쥐어짜고 있’었다 말한다. 속물근성이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작은사건>은 결코 작은 사건이 되지 않는다. 루쉰은 그 인력거꾼의 평범한 태도에서 거꾸로 다른 것을 읽어낸다. 

 

이 일은 지금도 종종 기억이 난다. 그래서 종종 고통을 참으며 나 자신을 돌이켜 보려고 노력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문치와 무력은 한 구절도 머리에 남아 있지 않다. 어릴 적 읽은 ‘공자왈’, ‘<시경>에 이르기를’처럼 말이다. 그런데 유독 이 자그마한 사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더욱 또렷해지곤 한다. 나를 부끄럽게 하고, 나의 쇄신을 촉구하고 내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면서.

: <작은사건>

굳이 루쉰에게서 희망을 찾는다면 이런 작은 사건 가운데서 나올 뿐이다. 희망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아주 비근한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소박한 우직함이야 말로 그 희망의 뿌리라 불러야겠다.

 

그래서 그가 그려내는 희망이란 무엇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도리어 희망이란 일상의 경험 속에 문득문득 나타나거나 호출되는 무엇이라 불러야 한다. 아득히 멀고 요원한 희망이란 없다. 보통 사람들은 희망을 좇아 살아야 한다고 말할 테지만 루쉰의 말은 다르다.

 

몽롱한 가운데 바닷가 푸른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 검푸른 하늘엔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고향>

그가 룬투를 떠올린 그곳에 희망이 자리 잡는다. 바닷가 푸른 모래밭 검푸른 하늘에 노란 보름달. 그러나 희망은 그 대지에 희미하게 찍힌 발자국일 뿐이다. 희망이란 길과 같은 것이어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으며 다만 다니는 사람이 길을 내듯, 그렇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루쉰은 희망을 길로 묘사하며, 자신의 삶이 진행 중에 있음을 깨닫는다. 따라서 그가 고향을 떠나며, 룬투와 이별하며 생각한 ‘내가 내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다’는 말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하는 말이다. 아마 두부집 서씨는 그가 고향을 버리고 베이징의 높은 관저에서 떵떵거리며 살 것이라 생각했을 태다. 누구는 야만의 땅을 벗어나 문명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평범한 여정은 전혀 다른 것이다. 당대의 숱한 사람이 고향을 떠나 어딘가 새로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았다. 그러나 루쉰은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 고향은 오랜 뿌리를 내린 아련한 곳도 아니었으며, 여전히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신비한 곳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길 위에 있었을 뿐이다. 그는 뿌리를 캐려 하지 않는다. 

 

루쉰의 글에서 ‘향수’ 따위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에겐 요람 같은 포근함, 생의 뿌리가 되는 터전, 고귀하고 유구한 전통 따위가 없다. 그는 아득한 희망을 품지 않았으므로,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곳 따위도 필요치 않았다.

 

길에는 고향이 없다. 어쩌면 순간순간 찍히는 발자국만 남는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문명과 야만, 중심과 변두리의 대립 속에서 우리는 문명과 중심을 바라고 추구해야 할 만한 것이며, 야만과 변두리는 버리고 타파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나 더 생각하면 야만과 변두리도 소중한 것이라고, 아득히 순수한 것이 있다고 여기기 쉽다. 


희망을, 아득한 꿈을 갖는 자만이 전설 같은 뿌리를 필요로 할 뿐이다. 중심은 변두리를 배제하며 동시에 이를 신화화한다. 문명은 야만을 계몽하여 동시에 이를 추억한다. 사실 요람과 무덤의 거리는 별로 멀지 않다. 오직 한 걸음씩 꾹꾹 발자국을 놓으며 내딛는 사람은 그저 제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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