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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간 서:로] 『심장의 조각 - 최지원展』
아침 / 2017-08-13 / 조회 575 

본문

 

 

『심장의 조각 - 최지원展』

Choi Jione Solo Exhibition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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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원, 눈물 흘리는 돌
Oil on Canvas, 80.3x100.0cm, 2017









전시작가  최지원(Choi Jione)
전시일정  2017. 08. 12 ~ 2017. 08. 24
초대일시  2017. 08. 12 PM 5:00
관람시간  Open 13:00 ~ Close 18:00(월요일 휴관)
∽ ∥ ∽
예술공간 서:로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36길 6
seoro-art@naver.com
blog.naver.com/seoro-art









● 돌과 나눈 대화

임랑(문화비평, 소설가)


청동의 시대를 거쳐 ‘철기 시대’에 이르자 인류는 대지에서 곡물이나 먹이를 거두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대지의 내장에까지 침입하여 재물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약탈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인간의 폭력과 오만이 하늘을 찌르자 신 제우스는 신들을 모아놓고 인류를 없애버리기로 결정한다. 포세이돈과 노토스, 그리고 강의 신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길을 열어젖히고 아흐레 동안 멈추지 않고 비를 내린다. 모든 육지가 물에 잠기고 생물과 인간이 죽었으나, 믿음이 강한 데우칼리온과 그의 부인 퓌라 만이 살아남아 파르나소스 산에 도착한다. 그들은 테미스 신에게 기도하며 도움을 청한다. 지혜의 신 테미스는 “머리를 가리고 의복의 띠를 푼 뒤 너희들 크신 어머니의 뼈를 어깨너머로 던지라” 한다. 여신의 신탁을 가까스로 이해한 둘은 ‘어머니의 뼈가 곧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뼈, 즉 돌’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신탁대로 행한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성을, 퓌라가 던진 돌은 여성이 된다. 흙이 묻은 부분은 말랑한 살이 되고, 딱딱한 부분은 뼈가 되었다. - 이윤기 <그리스로마 신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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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원, 무제
Oil on Canvas, 50.3x40.98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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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원, 찍개1
Oil on Canvas, 130.3x130.3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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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원, 검은 절벽1
Oil on Canvas, 130.x193.9cm, 2015




우리는 돌의 후예이다.


최지원 개인전을 보며 문득 떠오른 그리스로마 신화. 그 한편을 길게 할애하여 소개한 것은 이 신화가 최지원의 작품을 읽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즉 최지원의 작품 속 ‘돌’을 읽어냄에 있어 이를 물질적인, 단순한 조형적 사물로서의 ‘돌’이 아닌 인간 존재와 연결된 ‘돌’ 그리고 인간 의식의 표현으로서의 ‘돌’로 읽어내기 위해서이다. 신화는 우리 인류를 ‘돌의 후예’로 정의내리고 있다. 숱한 사물들 중에서 왜 ‘돌’이었을까. 나무나 물, 지나가는 새를 던져 인류를 만들지 않고 왜 ‘돌’이었을까. 신화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선사 인들의 돌 숭배를 두고 돌에는 생명을 주는 힘이 잠재해 있어 생명을 낳을 수도 있으며, 사람이 성스러운 돌로 변할 수도 있다고. 심지어 돌은 죽은 조상의 영혼이 머무는 정령의 집이라고까지 보았다. 무감각한 ‘돌덩어리’를 살아있는 존재, 혹은 생명을 주는 어떤 존재로까지 상상하고 믿을 수 있었던 세계, 그러한 사물과 교감하고 비언어로 대화를 나누었던 세계. 그 세계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돌을 돌아보다

최지원의 ‘돌’에 대한 집착(?)은 전작들과 이어진 측면이 있다. 3년 전 작가는 풍광이 아닌 ‘물질’로서의 광활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암벽, 섬, 흘러내리는 구름 등. 이 풍경화들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대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보다는 그것들이 갖는 ‘성질’과 ‘원리’에 좀 더 접근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작가적 태도는 최근의 작품들 - 일련의 돌 시리즈 - 에서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길을 걷다가 ‘돌’을 채집한다.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다. 도심 속에서 돌을 발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속단이다. 의외로 콘크리트 시대를 살아가는 이 도심에서도 ‘돌’은 여전히 흔하다. 작가는 돌을 여러 차례 유심히 관찰하고 사유해나간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돌은 다양한 빛깔과 분위기를 띤다. 변하지 않는다 생각했던 ‘돌’이 변화한다는 사실, 그것도 어떠한 화학적 물리적 처리 없이도 돌은 작가의 사유방식에 따라 변형된다. 예를 들면 <찍개>라는 제목의 작품 속 돌은 선사유적지에서 몰래 훔쳐온 돌이 아니다. 평범한 돌일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날카롭고 쪼개진 면들을 관찰하는 속에서 최초의 문명도구인 ‘찍개’를 유도해낸다. 최초의 문명도구가 ‘돌’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점은 돌이 ‘신성’을 가진 존재이자 생활 주변에서 가장 흔한 사물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가장 흔한 것이 동시에 고귀한 영적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사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기도 한다. 어떤 돌은 노을빛을 받고, 어떤 돌은 그날의 음울한 정서 속에서 녹아내리기도 한다. 또한 어떤 돌은 희미하게나마 누군가를 위한 구원으로서 <기도>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단계의 조형화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속에 숨은 이미지를 끌과 정을 통해 꺼내어놓는 작업방식과 유사하다. 즉, 작가는 자신이 읽어내고자 하는 바를 ‘돌’에서 끄집어내고 있다. 


부분과 전체가 전위되다


한편 돌의 근원적 성질에 대한 탐색은 다음 작품들에서 이뤄지고 있다. <검은 절벽>과 <돌의 부분>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 보자. 작품의 모티브가 ‘돌’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면 ‘추상’작품으로 읽힐 만큼 작품은 모호하고 해체되어 있다. 그러나 그 해체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형상이 떠오른다. 암벽으로 이뤄진 거대한 산이나 지질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는 돌이 애초에 머물렀던 자리로 우리를 데려간다. 거대한 자연의 일부였을 암석, 그 암석의 한 귀퉁이였을 바위, 그 바위의 한 부분이었을 돌. 즉 일정한 부분을 확대하고 클로즈업하여 그 사물이 위치하였던 근원의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부분은 전체를, 전체는 부분으로 전위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확대된 돌의 이미지 속에서 거칠고 한편으로는 상대적인 개념의 단단함 사이를 걷게 된다. 붓질은 돌의 예리한 측면을 뭉개어 흐리고 오히려 흘러내리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의 ‘돌’에 대한 상투적 인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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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원, 연소되는 돌1
Oil on Canvas, 50.3x40.98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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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원, 연소되는 돌3
Oil on Canvas, 90.9x72.7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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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원, 심장2
Oil on Canvas, 130.3x162.2cm, 2017




돌 호흡하다 


돌의 형상에서 시작된 이미지와 부분과 전체로서의 돌에 대한 관찰을 넘어서자 새로운 문이 열린다.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언급처럼 돌의 어떤 ‘힘’에 대한 접근이다. 이미 부분과 전체에서 내재해 있었을 그 ‘힘’을 작가는 ‘연소’의 개념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연소하는 돌> 시리즈에서 돌들은 - 크기로 보자면 바위이다 - 스스로 불타고 있다. 불꽃은 터지지 않지만 돌에서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불이 붙는 암석이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작가는 초자연적 현상을 끌어옴으로써 돌에 내재된 ‘에너지’를 주목하게 만든다. ‘탄다’라는 것은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현상이다. 인류는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의 사물을 태움으로써 불과 열을 만들었다. 자연은 발화점이 상이한 사물들로 이루어진 에너지의 순환계라 할 수 있다. 작품 속 <연소하는 돌>은 어쩌면 자연의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는 사물로서의 ‘돌’을 비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 <심장>이다. 작품의 제목이 인간의 기관 이름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형태적인 측면에서 심장과 유사하기 때문에 시작된 작품이 어느 순간 메타포로 전환되고 있다. 돌덩어리는 붉은 색조의 따뜻한 피가 흐르고 심박동이 느껴지는 심장으로 치환되면서 ‘생명체’로 다가간다. 이제 돌은 스스로 호흡하는 존재, 심장이 뛰는 생명체다. 앞서 언급한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류탄생 이야기는 돌에 대한 이런 사유와 맞닿아 있다. 무생물로서 영원불멸의 상징인 암석과 돌, 최지원 작가는 우리 주변에 흔하게 존재해 왔던 ‘돌’을 사유함으로써 돌의 물질성, 돌의 근원을 다각적으로 해석해내고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은 돌맹이’ 하나가 자연의 원리와 힘을 함축하고 어떤 면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을 발견해낸다. 이로써 자연의 숱한 사물과 비언어적으로 소통하였던 시대로부터 단절되었던 그 교감을 예술로 되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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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원(Choi Jione)

1990 출생
2017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대학원 졸업
2014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solo exhibition
2017 심장의 조각, 예술공간 서:로, 서울
2016 moving mountains, 도스갤러리, 서울

group exhibition
2016 말하는 그림 전, 서울 지방 법원, 서울
2016 누구에게나 시선은 열려 있다, 아트센터 화이트 블록, 파주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X, 북서울 시립 미술관, 서울
2016 이 작품을 주목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서울
2014 미술영재 평가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14 발견 전, Art center Pplus, 서울
2014 Expert class전, 겸재 정선 미술관, 서울
2014 만나서 얘기해, 잠실체육미술관, 서울
2014 Turn, Art center Pplus, 서울
2014 전국 미술대학 공모전 입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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