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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곤지] 삼국지 강독회 :: 조조는 어떤 인물인가?
기픈옹달 / 2018-02-04 / 조회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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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어떤 책인가? 어쩌면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오늘날 <삼국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러 모습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만화, 게임까지... <삼국지>는 다양한 텍스트의 집합이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 이런데도 누구는 <삼국지三國志>라는 이름처럼, 역사서 <삼국지>를 직접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어리석은 접근일 뿐. 역사서 <삼국지>는 일부 전공자들에게 필요할지언정, <삼국지>의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쓸모없는 고충을 얹혀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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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라는 긴 제목의 책이 있다. 한중일 삼국의 서로 다른 <삼국지> 독해를 다룬 책이다. 저자 이은봉 선생은 <삼국지>로 박사 학위를 받았음에도, <삼국지>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다. <삼국지> 전면에 흐르는 군주와 국가에 대한 충의忠義, 상대를 제압하는 권모술수를 보면 결코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실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삼국지>는 일본에서 군국주의의 선전도구로 사용되었다. '삼국지 인간학' 따위는 어떤가? 어떻게 하면 상대를 제압하고 이용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게 아닌가. 

저자의 의견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의문이 남는 부분이 있었다. <삼국지>의 뼈대에 충의와 권모술수 따위가 깊이 자리 잡은 건 사실이나, 이를 새롭게 변용하여 읽을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다. 텍스트는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에. 텍스트의 본의本意나 역사문화적 배경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늘 회귀해야 하는 유일한 목표는 아닐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삼국지>의 새로운 독해'라는 식의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삼국지 강독회를 진행하고 있는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손에 쥐었고,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되었다. 게다가 한문과 영어를 넘나들며 읽을 수 있어 더 재미있게 진행하고 있다. 한 회回씩 읽으니 더 꼼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하고... 

강독회 후기식으로 짧은 글을 브런치와 네이버 포스트에 정리해서 올리고 있다. 이런데 누가 관심을 가져 줄까 싶었는데 네이버는 오가는 사람이 많은지 드문드문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삼국지>가 만만한지 댓글도 달린다. 지난 4회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댓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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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사를 죽인 뒤, 자신을 나무라는 진궁을 향해 조조가 내뱉는 말, '寧教我負天下人 休教天下人負我: 내가 천하 사람을 저버릴지언정, 천하사람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는 저 말에 대한 평가를 문제 삼은 거다. 이것이 조조의 '매력'이라 했는데 이에 대해 저런 반론이 달렸다. '지독한 자기중심의 정신병자'를 매력적이라 했으니 그렇게 읽은 사람의 정신도 한 번은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나 '천하위공天下爲公' 관점에서 보면 조조의 저 말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지금 한漢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간신 동탁을 처치하기는커녕 그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치는 자가 저런 말을 하다니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천하사람보다 일신의 안녕을 중시 여기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욕과 탐욕, 권력과 음모에 인물 간웅奸雄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비껴서 보면 조조라는 인물을 저렇게 손가락질할 이유가 있는가 의문이 든다. <삼국지>, 특히 <삼국지연의>는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야기의 인물은 특정한 가치를 대변하기도 하고, 어떤 욕망의 화신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조조의 경우 촉한정통론이건 천하위공이건 전통적인 도덕관념에서 벗어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 지점이야 말로 조조의 매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기>를 읽으면서 <삼국지>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 <삼국지>를 끼고 다녔지만 철든 이후에는 재미가 없어 손에 쥐지 않았다. 그러나 <사기>를 읽으니 사마천이 그려낸 여러 전형적 인물들이 <삼국지>에서 다시 새롭게 주조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새로운 변주라고나 할까? 그런데 조조는 <사기>의 어느 특정한 인물과 연결되지 않는다. <삼국자>의 고유성이 있다면 조조라는 특정한 인물의 탄생에 있지 않을까. 

조조의 저 말에서 역설적이게도 나는 항우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天之亡我 我何渡為‘ 해하垓下에서 자신을 둘러싼 여러 제후국의 군대를 깨뜨리고 강가에 이르렀을 때 항우는 말머리를 돌린다. 강동 땅으로 돌아가 후일을 도모할 수 있으련만 항우는 차마 부끄러워 강을 건너지 못하고 말에서 내려 맨몸으로 적군을 상대한다. 그는 '하늘-天'이 자신을 망하게 한다고 여겼다. 영웅의 몰락은 이렇게 비애를 더한다. 항우는 운명-天에 의해 바스러지는 삶이었으나,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한 인간의 삶으로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항우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드러내었다면 조조는 천하사람(天下人)을 상대하며 자신을 드러낸다. 사실 여기 조조의 말에서 문제 삼을 것은 천하사람을 저버리겠다는 패기 따위가 아니다. 여백사와 그의 가족을 죽여놓고 천하사람을 입에 올리는 그 터무니없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일개 필부와 그 가솔을 죽여놓고 천하사람을 입에 올리다니 가당키나 할까. 그러나 저 한마디 말을 통해 조조는 여백사의 사건에서 벗어난다. 천하인민을 상대하는 또 다른 인간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소설 속의 잔혹한 인물이 잔혹한 삶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처럼, 손에 피를 묻힌 조조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고 살인자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천하라는 거대한 세계를 상대하는 기묘한 인간, 그렇기에 여백사 가솔을 죽인 것보다 더한 도덕적 지탄을 무릅써야 하는 한 인간의 탄생을 흥미롭게 바라볼 뿐이다. 과연 유가독존의 시대에 조조의 저 말은 어떻게 읽혔을까? 한편 오늘날 우리는 저 말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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