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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곤지] 글은 읽어야 맛이다
기픈옹달 / 2018-02-15 / 조회 266 

본문

철 지난 논쟁이 되어버렸습니다만, 한때 부먹과 찍먹보다 더 치열한 논쟁을 낳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장면 - 짜장면 논쟁입니다. 탕수육의 부먹과 찍먹이 취향의 문제라면 자장면-짜장면 논쟁은 국립국어원에서도 다루었던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지금이야 어떻게 쓰건 상관없습니다만 '자장면'만이 표준어였던 시절에는, 짜장면이라 표기해서도 안 되는 건 물론 읽을 때에도 '자-장면'이라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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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그대로 읽으시오

 

여러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자장면'이라 쓰고 '자장면'이라 읽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한번도 '짜방면'을 '자장면'이라 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자장면으로 읽는 이들을 보면, 글자에 너무 갇혀 있는 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말이 먼저 있고 그다음 글자가 있는 게 아닐까요? 한글이 표음문자인 이상, 글자를 읽을 때에는 쓰인 대로 읽어야 하나, 때로는 좀 다르게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글자가 발음은 물론 생각을 가두는 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장면-짜장면 논쟁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글자와 발음의 문제는 글과 말의 문제로 바꾸어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글 고유의 문법이 중요하다면서, 글 자체의 형식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글은 말을 표현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언어로 발화되지 않은, 소리로 바뀌지 않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글은 읽을 때 머릿속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울립니다. 마치 누가 직접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귀를 기울여보면 말투도 있고, 고유의 어조도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이미 좋은 글이라 말한 것처럼, 저는 입말에 가까운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글쓴이 고유의 호흡, 생각, 특징이 드러나는 글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얼굴 없는 글이 얼마나 많은지요. 아무런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글쓴이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름표를 떼어내면 누구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글이 얼마나 많은지. 주인도 주소도 없는 글은 언젠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흩어져버릴 것입니다.

 

'글쓰기 교실'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수업시간의 태반을 읽기에 바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자나 글로는 채 쓰이지 않은 글 고유의 멋을 만나보라는 이유입니다. 시작하면서 시 두편을 여러 목소리로 읽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시 두편을 꼽는 이유는 그 차이를 들어보라는 뜻입니다. 다른 시를 옆에 두고 읽어보면 각 시가 가진 고유성을 더 분명히 만날 수 있지요. 

 

지난 시간 우리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최승자의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를 읽으며 시작했습니다. 이 두 시를 꼽은 이유는 우리 글쓰기의 주제가 바로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사랑을 이야기하되 영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훑어보아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테지만 직접 소리내어 읽어보니 그 차이가 더 크지 않던가요.

 

한편의 시를 세 사람씩 돌아가며 읽었습니다. 똑같은 시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어보니 어떻나요? 아마 적잖이 다른 감각을 선물해주었을 것입니다. 내용이야 똑같지만 어떤 톤으로 읽느냐, 어디에서 쉬느냐, 어떤 속도로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한번쯤 누구의 목소리가 시인의 목소리와 닮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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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글을 읽어보겠심다.

 

 

우리는 각자 써온 글을 글쓴이의 목소리로 다 읽고 있습니다. 참 미련한 짓입니다. 굉장히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읽는 게 더 빠르고 편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눈은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눈으로 읽다 보면 어느 부분은 건너뛰고, 어느 부분은 살짝 눈길을 주는데 그치고 맙니다. 자칫하면 읽어도 읽은 게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읽었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난감한 상황을 맞고는 하지요. 적어도 소리내어 읽기는 성실합니다. 글자 하나도 빼먹지 않는 것은 물론 눈보다는 조금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곱씹으며 읽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그보다는 글쓴이의 글을 더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글로, 문자로 만날 때와는 다른 글쓴이의 감정, 생각을 만납니다. 글에서는 보이지 않던 어떤 부분이 보입니다. 더 생생한, 생동감 넘치는 글이 여기에 있습니다. 눈으로 볼 때엔 그저 그랬는데, 소리내어 읽으니 또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요. 눈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보석 같은 표현, 잘 드러나지 않던 감정을 만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글쓴이 자신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글을 소리내어 읽는 게 어떤 기분인지.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는 것도 난감한데, 이를 직접 소리내어 읽으라니! 그래서 이런 질문을 종종 만납니다. 꼭 읽어야 하나요? 직접 읽어야 하나요? 어떤 경우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글쓰기 교실에서 철의 규율로 지키고자 하는 원칙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신이 쓴 글을 직접 소리내어 읽기.

 

글쓰기에 '퇴고'가 중요하다 합니다. 글을 쓰고는 적어도 한번 고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이지요. 모든 글에는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고칠수록 글은 좋아져요. 이를 위해서는 소리내어 읽는 게 좋은 방법입니다. 소리내어 읽다 보면 글을 쓰면서는 몰랐던 어색한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소리내어 읽는 건 자기 글의 독자가 되어 보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글쓴이의 입장이 아닌 독자의 입장이 되어 글을 만납니다. 당연히 쓸 때와는 다른 관점에서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 보다는 남의 잘못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은 정확하게 맞는 말입니다. 자신의 잘못은 잘 보이지 않기 마련이예요. 그러니 거울이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물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보는 식으로 나를 보지 않을 때 나의 잘못이 더 잘 보입니다. 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내어 읽으며 독자의 입장이 되어보면 내 글이 가진 단점을 더 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잘 고칠 수 있구요.

 

다른 사람 앞에서 읽는 건 그것대로 유익이 있습니다. 저는 모든 글은 읽히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습니다. 글쓴이 자신 이외에 다른 독자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글에게는 커다란 선물입니다. 또한 글을 매개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글을 읽는 건 일종의 조심스러운 제안이지요. 내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 앞에 내놓아 보는 일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길게 이야기했지만 소리내어 읽기, 낭독의 맛은 직접 체험해 보아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저런 장점을 늘어놓아 보았자 스스로 경험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요. 그러니 좋은 글을 뽑아 소리내어 읽어보면서 직접 맛보길 바랍니다. 제 글 말고 좋은 글이 많으니 그 글부터 읽어보면 좋겠지요. 지난 시간 읽었던 백석의 시와 최승자의 시를 다시 소리내어 읽어보면 어떨까요.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자, 그러니 우리도 맛난 글을 쓰기 위해 분투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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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글쓰기교실 - 성장의 글쓰기 (3월 4일 시작) http://cafe.naver.com/ozgz/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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