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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 1011(수) 개강2017-08-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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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타리 『천의 고원 읽기 :: 2017-1011(수) 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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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 :: 강좌개요          

▪강 사 : 최 진 석 

  일 시 : 2017-1011 ~ 1129 / 매주(수) pm7:00 (8강)

▪교 재 : 『천의 고원, 들뢰즈ㆍ가타리, 이진경 외 옮김, 연구공간 ‘너머’, 2000

             교재의 제본이 필요하신 분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부교재는 수업 중에 제시합니다.

▪신 청 : 홈페이지에 비밀댓글로 이름(닉네임), 휴대폰, 메일주소를 남겨주세요.

  회 비 : 16만원 / 하나은행 646-910315-54507 이소연​

  주 의 : 강좌가 시작된 후에는 회비환불이 안되니, 신중히 신청하세요. 

반 장 : 삼월 010-3473-5841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 :: 강사 최진석       

​러시아 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문학평론가, 수유너머104 연구원 

​저서: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그린비 2017), 국가를 생각하다 ​(북멘토 2015, 공저), 불온한 인문학 ​(휴머니스트 2012, 공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그린비 2007, 공저), 코뮨주의 선언 ​(교양인 2007, 공저) 

​역서: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자음과모음, 2013), 러시아문화사 강의 ​(그린비 2011, 공역), 

 『해체와 파괴 ​(그린비 2009), 레닌과 미래의 혁명 (그린비 2008, 공역)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 :: 강좌일정          

 강의일정

 강의주제 

 『천의 고원​ 해당 목차

 강의당번 (후기-간식)

 10-11(수) 1강

 리좀: 분열분석으로부터 생성의 사유로

 1장

 

 10-18(수) 2강

 늑대인간의 고독: 정신분석이 이끄는 곳

 2, 3장

 

 10-25(수) 3강

 말과 사물: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4, 5, 8장

 

 11-01(수) 4강

 추상에 관하여: 기관없는 신체를 만드는 방법

 6, 15장

 

 11-08(수) 5강

 (탈)영토화하는 분열분석: 미시정치와 선분성

 7, 9장

 

 11-15(수) 6강

 탈주선의 존재론: 생성 또는 ‘되기’의 동물행동학

 10장

 

 11-22(수) 7강

 리토르넬로와 역사의 횡단: 유목과 전쟁기계

 11, 12장

 

 11-29(수) 8강

 생성, 혹은 시간의 정치: 매끈한 공간과 홈패인 공간

 13, 14장

 

*강의일정에 따라 『천의 고원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 강의가 훨씬 즐겁습니다. ^^*

 

 

탈주의 철학, 생성의 정치 『천의 고원​ :: 강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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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른바 ‘문화의 시대’가 활짝 열린 후 널리 유포된 인문학의 신화에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름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드리야르와 푸코, 데리다와 라캉을 위시한 ‘포스트 사상’의 최전선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과 혁명, 탈주의 주창자로서 자신들의 명패를 확실히 새겨 놓았지요. 하지만 신화의 위용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그 본래면목을 식별하기란 더욱 까다롭기 마련입니다. 

 

철학사의 진열장를 장식하는 그들의 저작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깨우쳤던가요? 범접하기 어려운 원전의 무게에 짓눌려 구사일생하진 않았습니까? 수많은 해설서의 덫에 걸린 채 들뢰즈와 가타리라는 두 이름자만 확인하고 도망쳐 오진 않았을까요? 근대성의 문턱을 넘어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었다는 그들의 사유는 우리에게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니, 당신은 여전히 궁금해 하고, 알고자 욕망하고 있나요?

 

들뢰즈와 가타리의 저작들은 난해하고 불투명하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누구든 야심차게 손에 쥐었다가 이내 덮어버리는 실패의 순간들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독서의 곤경은 그들의 글쓰기를 ‘문학적’이라거나 ‘허위적’이란, 심지어 ‘관념적’이란 수사로 내팽개치곤 합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단언할 겁니다. 그들의 책은 문학이나 허위, 관념의 냉소로 쉽게 정리될 수 없는 다른 무엇임을.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책은 기계입니다. 우리 독자와 결합하는 기계이고, 미리 정해놓은 목적지로 인도하기보단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고 화나게 자극하며 격렬히 싸우고 엉겨붙도록 촉발하는 전쟁기계니다.  

 

실로 전쟁을 치를 각오가 아니라면, 대체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들이 던지는 교훈이 아니라 그들도 못가본 우리-너머의 세계일 텐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책의 상식으로부터 벗어나고, 책은 독자의 통념으로부터 일탈해야 합니다. 책을 책 아니게 만들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닐 수 있도록 부추김 당하고 스스로 떠나도록 강제되어야 할 겁니다. 탈주의 철학과 생성의 정치란 바로 그렇게 책과 우리가 만드는 그로테스크한 과정의 이름이겠죠.

 

떠난다는 것, 자신을 내려놓고 이 세계를 넘어서 새로운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어렵고도 수고로운 일입니다. 『천의 고원 한 권을 달랑 읽고서 자본주의적 일상을 폭파하고 새로운 삶의 경계를 따라 나설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그런 비법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기 없이도 다르게 살 수 있는 양식들, 몰래 구덩이를 파고 이동할 수 있는 도구들, 마침내 제자리에서 유목할 수 있는 욕망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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