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세이

슬기로운 미용 생활

[ 미미 ] :: 루쉰 잡감 // 나의 미용 생활 머리카락 이야기를 쓰려니 내 생애 가장 비싼 미용실에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강남 모처에 있는 그 미용실은 근방의 다른 미용실과 비교해 봐도 그중 비싸기로 유명한 집이었다. 물론 장점도 있다. 그곳은 다른 건 몰라도 머리 하나 자르는데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여기서 온갖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과 비례한다. 그러니까 주기적으로 ‘외쿡’에서 연수받고 오신 원장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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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의미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병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라는 질문이 있다. 자주 대면하게 되는 질문이다.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자주 묻는다.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물어봤자 돌아오는 건 기존의 닳고 닳은 의미부여에 대한 답일 뿐인데도 계속 묻게 된다. 이익이 있는가, 발전적인가, 교훈이 되는가 등 의미부여는 묘하게도 발전주의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재미있는가, 아름다운가, 타인을 돕는가 등 조금 다른 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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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는 누구를 위한 문화인가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따돌림 … 18세 다문화 소녀 “학교가 지옥 같았다” 지난 달 한 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학교폭력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마당에 애석하게도 따돌림이라는 단어가 오래 눈길을 끌지는 않는다. 더 안타깝고, 더 슬프고, 더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는 사건들이 많은 탓이다. 오히려 눈길을 사로잡는 표현은 ‘다문화 소녀’라는 단어이다. ‘다문화’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제는 그 ‘다문화’라는 단어 뒤에 인칭마저 붙었다. 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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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던지고 침을 뱉겠다고?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저녁에(夕) 부르는 소리(口), 이름을 뜻하는 한자 ‘명名’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어두워 상대를 분간할 수 없을 때, 이름은 존재를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렇게 ‘이름’이란 까마득한 옛날부터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름에는 이런 질문이 함께 섞여 있다. ‘너는 누구냐?’ 공자는 이름과 존재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정명正名’이다. 그렇게 이름과 존재가 서로 들어맞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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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은 글, 같잖은 보헤미안 랩소디

[ 미미 ] :: 루쉰 잡감 // 가는귀와 보헤미안 랩소디 언제부터인지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목소리가 큰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목소리가 크고 또렷하다고 각종 발표를 도맡아 했다.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것까지는 없었지만 장점 정도는 되다가, 요 근래 들어 목소리가 큰 데 대한 타박을 자주 받곤 한다. 이른바 가는귀가 먹은 것이다. 내 ‘가는귀 먹음’에 크게 일조한 것은 영국 그룹 ‘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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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한 잔소리를 생각하다②_비판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나는 지난 글 말미에 고병권의 짧은 글 <비판이란 무엇인가>(『다시 자본을 읽자1』의 부록)를 읽고 이제는 딸에게 쉽게 잔소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내 잔소리가 대부분 ‘교정으로서의 비판’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알고 난 후 나는 겁을 먹었었습니다. ‘이제 우리 딸과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해서요. 참 슬픈 일이죠, 잔소리 말고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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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줍’의 묘미猫美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냥줍’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냥줍’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귀엽게 표현한 단어에 ‘줍다’라는 단어를 붙인 말이다. 뜻은 ‘길에서 고양이를 줍다’ 정도 되겠다. 인터넷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냥줍’이 유행한지는 제법 되었다. 이유가 뭘까? 단 두 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이 짧은 단어에서 단서를 찾아보자. 먼저 왜 고양이인가? 도시에서 동물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개도 있고, 도시의 하늘과 광장을 배회하는 비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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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짜리 우쭐함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얼마 전 후배로부터 나와의 만남이 본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 한 얘기였다. 몇 초간 우쭐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약 1초짜리 우쭐함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진다. “좋은 의미”라는 말 앞에는 꼭 “현재까지는”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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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거짓이다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활자로 인쇄되어 나온 것들, 책이나 신문에서 보는 모든 글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아니 신뢰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그대로 믿고 외우고 사유의 근거로 채워 넣었다. 픽션이라고 대놓고 써놓은 이야기에서조차 일말의 진실을 찾아내어 신뢰의 장에 밀어 넣었다. 진실을 활자로 전하는 것이라 믿었던 저자, 철학자, 기자 등의 이름은 명예를 가질 만한 것으로 자동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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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찬양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사건은 갑작스럽고 대응은 미숙하기 마련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그렇겠지.  지난주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사건은 적잖이 내 삶을 흔들어댔다. 덕분에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좁아터진 속알머리로는 전사가 되기는 글렀다는 점. 적어도 기습에는 턱없이 취약하여 쓰린 속을 붙잡고 한참이나 끙끙대야 했다. 둘째, 잘 싸우는 것만큼 상처에 대처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점. 완벽한 승리는 없으니 얼마간의 피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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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미용 생활

[ 미미 ] :: 루쉰 잡감 // 나의 미용 생활 머리카락 이야기를 쓰려니 내 생애 가장 비싼 미용실에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강남 모처에 있는 그 미용실은 근방의 다른 미용실과 비교해 봐도 그중 비싸기로 유명한 집이었다. 물론 장점도 있다. 그곳은 다른 건 몰라도 머리 하나 자르는데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여기서 온갖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과 비례한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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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의미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병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라는 질문이 있다. 자주 대면하게 되는 질문이다.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자주 묻는다.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물어봤자 돌아오는 건 기존의 닳고 닳은 의미부여에 대한 답일 뿐인데도 계속 묻게 된다. 이익이 있는가, 발전적인가, 교훈이 되는가 등 의미부여는 묘하게도 발전주의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재미있는가, 아름다운가, 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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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는 누구를 위한 문화인가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따돌림 … 18세 다문화 소녀 “학교가 지옥 같았다” 지난 달 한 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학교폭력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마당에 애석하게도 따돌림이라는 단어가 오래 눈길을 끌지는 않는다. 더 안타깝고, 더 슬프고, 더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는 사건들이 많은 탓이다. 오히려 눈길을 사로잡는 표현은 ‘다문화 소녀’라는 단어이다. ‘다문화’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제는 그 ‘다문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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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던지고 침을 뱉겠다고?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저녁에(夕) 부르는 소리(口), 이름을 뜻하는 한자 ‘명名’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어두워 상대를 분간할 수 없을 때, 이름은 존재를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렇게 ‘이름’이란 까마득한 옛날부터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름에는 이런 질문이 함께 섞여 있다. ‘너는 누구냐?’ 공자는 이름과 존재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정명正名’이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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