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세이

정상성 유지비용에 대하여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화장실만 빼고 다 은행 거예요.” 한 드라마에서 집 좋다며 둘러보는 선배에게 후배가 한 말이다. 번듯한 직장에 번듯한 외양을 갖춘 그녀가 살만 한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80%가 대출이라는 의미. 드라마에 등장하는 집이 대체로 그렇듯이, 내용은 가난한 자를 설정했더라도 사는 곳은 꽤나 멋스럽게 보여주고, 중산층 가정의 집을 묘사하면서도 호텔급 인테리어가 나오는 비현실적인 차원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다. 드라마니까. 드라마니까

Read More »

그들도 우리처럼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추석연휴, TV에서 한국 영화를 보았다. 서번트증후군(savant syndrome)을 갖고 있는 지우의 법정 증언 드라마 ⟪증인:Innocent Witness⟫이다. 서번트는 전반적으로는 정상인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나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은 비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옆집 할아버지가 살해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지우는 살인사건 피의자의 변호인 측 증인으로 세워진다. 살인을 목격한 사람이 살인을 부인하는 쪽을 변호하게 된 것이다. 변호인은 사건을 목격한 지우가 아니라

Read More »

노바디 노바디

[ 미미 ] :: 루쉰 잡감 // 나는 강남 아줌마다? 가끔씩 이런 제목을 쓰고 나면 묻고 싶다. 강남이란 무엇이고 강남 아줌마와 강남 아줌마 아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강남에 산다고 강남사람인가. 아니면, 강남적 욕망을 가진 모든 사람이 강남사람인가. 그러나 다음에 생각하자. 지금은 조국 때문에 마음이 부산스럽다. 그렇다. 조국 때문이다. 그 사람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더 시끄럽다. 왜냐하면 조국 딸이 밟았던 과정은 나와 내

Read More »

기생충의 역사를 통해 보는 계급 문제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신데렐라처럼 가난하지만 착하고 밝은 소녀가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 어딜까? 왕자가 가난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 아니면 왕자와 가난한 소녀가 현실에서 마주칠 아주 희박한 가능성? 아니다. 이미 전제부터 틀렸다. 가난하지만 착하고 밝은 소녀는 존재하기 힘들다. 가난은 사람을 종잇장처럼 힘껏 구기고, 어둠 속으로 걷게 만든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은 그런 이야기다. 가난에 대한 아주 오래된

Read More »

소중한 나의 익명성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공유자전거 따릉이가 나름 쓸 만하다. 서울이라는 곳에서 이십년 이상을 살았는데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자전거를 타고 가 보았다. 바로 한강이다. 강바람 맞으며 먹는 즉석라면의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다. 어스름 개늑시의 시간에 만나는 한강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이걸 안 보고 살아왔다니 헛살았다 싶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혼자 만끽할 수 있는 광경과

Read More »

문명의 전장에서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붉은 악마는 스스로를 치우의 후손이라 여긴다. 치우는 전설의 인물인데, 중국의 시조로 숭상되는 황제黃帝와 탁록의 들판에서 싸워 패배했다 전해진다. 만약 탁록의 전장에서 치우가 승리했다면 천하의 판도는 지금과 다르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상상으로 동이족 서사가 있다. 서쪽에서 발흥하여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가 실은 동이족이었다는 이야기부터, 나아가 한자가 실은 동이족의 문자였으며, 위대한 사상가 공자도 동이족의 후예였다는 이야기까지. 이렇게 보면 우리 민족, 동이족은

Read More »

«죄 많은 소녀»가 ‘우울’을 형성하는 방법

[ 준민 ] :: 줌인준민 // (본 글은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울하다. 아니, 그보다 “철학자가 언어를 점유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철학자를 점유해 그에게 말을 하게 한다.”는 문장처럼, 이 영화는 ‘우울’이라는 언어에 점유되어 만들어졌다. 영화의 어떤 점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우울이 만든 장면들 ‘우울’을 화면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어찌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해낸 두 장면이 있다.

Read More »

하릴없이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말은 늘 얼마간의 진실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세간 사람들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뻔하디 뻔한 말에도 진실의 한토막이 담겨 있다. 그래도 교회는 나가야지. 숱하게 들은 말이다. 못마땅한 게 있더라도, 행여 마음에 혹은 영혼에 상처를 입었더라도 교회는 나가야지. 그러다 영 신앙을 잃어버린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듣는 말이다.  넌 교회에 가기는 하냐? 아버지의 질문은 간결하다. 깊은 이야기로 이어질 수 없는

Read More »

잊어달라니, 롄수

[ 미미 ] :: 루쉰 잡감 // 똑똑한 사람을 보는 일은 즐겁다. 뭐 하나 명쾌하지 않은 세상에서 저리도 똑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말 할 수 있다니. 확실한 글을 쓰는 이는 부럽다. ‘이렇다’고 쓰려니 ‘저렇다’가 걸려서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니. 잊어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프다. 잊어달라는 말은 말하는 당사자가 아닌, 이 말을 들을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에. 나에겐 롄수가 그렇다. 죽음이 좋은 일이 되는

Read More »

타자에 대한 영화는 가능할까

[ 준민 ] :: 줌인준민 // 곤궁의 영화. 김응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 <우경>을 이렇게 부른다. 감독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인 ‘우경’을 촬영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우경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둠 속에서 그의 뒷모습을 수동적으로 찍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감독은 그 곤궁함이 영화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검은 초상 영화는 크게 두

Read More »

정상성 유지비용에 대하여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화장실만 빼고 다 은행 거예요.” 한 드라마에서 집 좋다며 둘러보는 선배에게 후배가 한 말이다. 번듯한 직장에 번듯한 외양을 갖춘 그녀가 살만 한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80%가 대출이라는 의미. 드라마에 등장하는 집이 대체로 그렇듯이, 내용은 가난한 자를 설정했더라도 사는 곳은 꽤나 멋스럽게 보여주고, 중산층 가정의 집을 묘사하면서도 호텔급 인테리어가 나오는 비현실적인 차원을

Read More »

그들도 우리처럼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추석연휴, TV에서 한국 영화를 보았다. 서번트증후군(savant syndrome)을 갖고 있는 지우의 법정 증언 드라마 ⟪증인:Innocent Witness⟫이다. 서번트는 전반적으로는 정상인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나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은 비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옆집 할아버지가 살해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지우는 살인사건 피의자의 변호인 측 증인으로 세워진다. 살인을 목격한 사람이 살인을 부인하는 쪽을 변호하게 된 것이다.

Read More »

노바디 노바디

[ 미미 ] :: 루쉰 잡감 // 나는 강남 아줌마다? 가끔씩 이런 제목을 쓰고 나면 묻고 싶다. 강남이란 무엇이고 강남 아줌마와 강남 아줌마 아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강남에 산다고 강남사람인가. 아니면, 강남적 욕망을 가진 모든 사람이 강남사람인가. 그러나 다음에 생각하자. 지금은 조국 때문에 마음이 부산스럽다. 그렇다. 조국 때문이다. 그 사람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더 시끄럽다. 왜냐하면 조국

Read More »

기생충의 역사를 통해 보는 계급 문제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신데렐라처럼 가난하지만 착하고 밝은 소녀가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 어딜까? 왕자가 가난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 아니면 왕자와 가난한 소녀가 현실에서 마주칠 아주 희박한 가능성? 아니다. 이미 전제부터 틀렸다. 가난하지만 착하고 밝은 소녀는 존재하기 힘들다. 가난은 사람을 종잇장처럼 힘껏 구기고, 어둠 속으로 걷게 만든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은 그런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