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세이

혁명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 아Q를 변호하며

[ 기픈옹달 ] 1. 광인狂人 혁명과 혁신이 다르다면, 그것은 연속성의 문제일 것이다. 혁명이 단절이라면 혁신은 변화라고 해야 한다. 혁명 이후에는 낯섦, 기존의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이질감이 있다면 혁신은 말 그대로 ‘새로움’을 가져다준다. 일면 이 둘은 닮아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새로움은 낡은 것을 대체하고 언제든 다시 낡은 것으로 돌아갈 수 있으나, 혁명이 가져다주는 이질감은 차후 무엇으로 대체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혁명 이후란, 아니 본질적으로 혁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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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1부를 읽다

1부를 읽다 [ 선우 ]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1부를 읽었다. 들뢰즈는 서론에서 스피노자에게 있어 “표현하다”라는 말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1부는 왜 여러 실체‘들’이 아니라 단 하나의 실체여야 하는지를 조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사용했던 실재적 구별 수적 개별의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접근한다. 들뢰즈가 말하는 표현의 역할과 중요성의 논의를 따라가 보고, 속성이 동사라는 것 그리고 속성들의 존재론적 평등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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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강박을 벗어나게 하는 미셸 푸코

[ 지니 ] 그 곳은 따뜻하고 칼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거기를 비추는 태양은 스피노자, 니체, 푸코, 들뢰즈, 루쉰이었고 그 태양들을 등에 업은 그림자들이 안심하며 살고 있다. 간간히 그러나 일상적으로 휘몰아치는 매서운 칼바람은 다른 태양을 섬기는 정신들이 출현할 때를 놓치지 않는다. 종교와 자본을 모시는 정신들에 가하는 정의의 칼날은 차라리 귀여울 지경이고 진부하다. 시시각각 아주 섬세하게 모든 말들을 주시하며 그 말들 뒤에 ‘누가 있는지’를 보고싶어하는 눈들이 사실상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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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가

[ 삼월 ] 1. 오이디푸스와 지식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상상해낸 불운한 왕자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작품으로도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오이디푸스를 이야기하면서 흔히 운명과 욕망을 떠올린다. 인간이 벗어나기 힘든 강한 운명의 힘,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소유의 욕망. 푸코는 오이디푸스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다른 무언가를 읽어낸다. 오이디푸스가 가졌던 지식, 그 지식이 권력과 연결되는 지점들. 현대사회의 ‘지식-권력’을 성찰했던 푸코가 오이디푸스에게서 읽어낸 지식과 권력은 어떤 형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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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자들의 공동체: 공동체 허물기에 대하여

[ 삼월 ] 1. 철학의 타자가 말할 수 있는가 버틀러는 스스로가 ‘철학자’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철학’이 무엇인가, 혹은 무엇을 철학이라고 하는가 하는 문제의 답을 먼저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도 단순하지 않다. ‘누가’ 철학을 정의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답 역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버틀러가 스스로가 철학자인지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체로 이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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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도 아닌, 복수

[ 미미 ] 너 죽고 나 죽자!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치명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복수의 대상인 적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적이 원하는 게 내가 죽는 것이라면 안 죽는 것이고, 못 살기를 바란다면 별일 없이 사는 것이 복수다. 복수에 대한 시를 좀 보자. 『들풀』에 나오는 복수 시리즈 둘 중 「복수」 1. 그렇지만 그 둘은 마주 서 있다. 광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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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벗이 되겠습니다

[ 삼월 ] 1. 벽에 부딪힌 나머지 1925년부터 1927년까지 3년여 간 루쉰은 꽤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무덤》, 《방황》, 《화개집》, 《화개집 속편》, 《들풀》, 《아침꽃 저녁에 줍다》, 《이이집》 등의 작품집들을 이 시기에 쓰거나, 출간했다. 사는 곳도 자주 옮겼다. 베이징에서 샤먼, 샤먼에서 광저우, 광저우에서 상하이까지.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청년들을 만났고, 사건이나 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사건이나 싸움이 이미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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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루쉰을 좋아하는 이유

[ 손미경 ] 작년 가을 루쉰 전집 읽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기묘한 기시감, 혹은 데자뷰를 경험했다. 하! 백 년 전에 현재에도 유효한 고민을 한 작가가 있었네 라는. 이전에 내가 알던 『아Q정전』의 저자는 단지 화석이었다면 지금은 뚜벅 뚜벅 내게로 걸어와 말을 거는 것 같다. 세상은 아직도 많이 변해야 한다고. 루쉰을 21세기에 다시 불러 그의 작품을 곱씹게 만드는 것은 당시의 그의 고민과 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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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 아Q를 변호하며

[ 기픈옹달 ] 1. 광인狂人 혁명과 혁신이 다르다면, 그것은 연속성의 문제일 것이다. 혁명이 단절이라면 혁신은 변화라고 해야 한다. 혁명 이후에는 낯섦, 기존의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이질감이 있다면 혁신은 말 그대로 ‘새로움’을 가져다준다. 일면 이 둘은 닮아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새로움은 낡은 것을 대체하고 언제든 다시 낡은 것으로 돌아갈 수 있으나, 혁명이 가져다주는 이질감은 차후 무엇으로 대체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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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1부를 읽다

1부를 읽다 [ 선우 ]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1부를 읽었다. 들뢰즈는 서론에서 스피노자에게 있어 “표현하다”라는 말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1부는 왜 여러 실체‘들’이 아니라 단 하나의 실체여야 하는지를 조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사용했던 실재적 구별 수적 개별의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접근한다. 들뢰즈가 말하는 표현의 역할과 중요성의 논의를 따라가 보고, 속성이 동사라는 것 그리고 속성들의 존재론적 평등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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