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세이

무효사회無孝私會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얼마 전 일이다. 연구실을 가는 길에 건물주 할머니를 만났다. 나를 내쫓은 그 건물주를. 매일 그 앞을 지나가니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렇지만 애써 모른 척 지나고 싶었다. 웬걸, 쪼르르 오더니 내 손을 두 손으로 잡는 게 아닌가? “내가 미안혀.”“아니요, 뭘…” 그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던 까닭일까? 어느새 난 예의 바른 청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착해빠진 정신이라니. 파렴치한은 아니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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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을 위한 변명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새벽배송이 화제다.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이 시작되기 전, 신선한 식재료들을 집 앞으로 배송해준다는 새벽배송. 유통혁명으로 불릴 만큼 많은 이들이 새벽배송에 열광하고 있다. 물론 열광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거세다. 편리함을 무기로 한 새벽배송에 위협당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새벽배송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아갈 것인가. 새벽배송에 대한 열광과 우려에 대해, 한 번 밑도 끝도 없이 떠들어보려고 한다.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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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과 짜릿함의 역설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드라마는 평온하던 주인공의 일상이 위기에 처하면서 시작한다. 평범하고 무해한 주인공에게 부당한 일이 발생하고 주인공을 괴롭히는 빌런(악역)까지 등장하면서 갈등이 고조된다. 주인공은 온갖 불행과 고난 속에서도 선하고 정의로운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하며, 빌런은 갈수록 악랄함을 증폭시켜야 한다. 주인공이 견디다 못해 잠시 흑화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결론으로 가기 위한 보조장치일 뿐이다. 왜 그런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빌런은 갑자기 결정적인 장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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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하겠네”라고 나는 말할 수 없다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월차 휴가 날 뭘 할까, 묻는 남편에게 미술관에 가자 했다. 갑자기 왜? 하는 표정이길래 그냥 그림이 자주 보고 싶어진다 했다. 썩 내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일 아침 딸의 등교 후, 어서 가자 10시에 오픈이야 한다. 호감 겨우 10프로의 표정까지 숨길 재간은 없으나 내 입에서 떨어진 말에 남편은 웬만하면 맞추는 사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었다. 알았대도 달라질 것은 없었으나 누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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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자식들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김동호 목사는 나름 상식연하는 목사로 분류되어야 할 듯싶다. 그는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 교회 세습을 정면으로 비판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있었던 ‘높은뜻숭의교회’는 메가처치로 성장하지 않았다. 약 10여 년 전 교회를 분립, 즉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법정에서는 일이 있었다. 사연인즉 이렇다. 지난 2017년 포항에 지진이 났다. 이에 당시 자유한국당 최고 의원이었던 류여해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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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두 얼굴을 가졌다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모교 한동대 장순흥 총장의 인터뷰가 지난 4월 국민일보에 실렸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맞서 기독교 건학이념과 신앙교육의 자유를 지켜가겠다 주장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017년 페미니즘 강연을 개최했다는 이유로 한 학생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명목상 이유는 ‘교직원에 대한 언행불손’이었다지만, 기독교 건학이념을 훼손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나님의 대학에서 동성애는 물론 페미니즘 따위는 입에 올려서도 안된다는 뜻이었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징계가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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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그럴싸한 거짓말의 세계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인간의 뇌는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단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구식 이야기에서부터 24시간 스트리밍이 가능한 신식 넥플릭스까지 이야기의 세계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한 친구는 넥플릭스를 두고 “나를 파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표현했다. 일상이 무너지지만 그렇다고 끊을 수도 없을뿐더러 유일한 낙이라는 의미였다. 파괴자이자 구원자인 이야기의 세계는 그 무궁무진함으로 틈없이 인간을 유혹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좌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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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것들

[ 미미 ] :: 루쉰 잡감 // 이것도 삶이야 1930년대 상하이. 어느 여름 날 루쉰은 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했다. “살아야겠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것도 삶이야. 주변을 둘러보고 싶소.” 그가 둘러봐야겠다는 주변은 다름 아닌, 늘 잠이 들고 잠이 깨는 곳 그리고 지금은 아파 누워있는 자신의 방이다. 고작해야 자신의 방. 누구에게나 자신의 방은 아무렇지도 않은 장소다. 잠이 들기 전 되는대로 읽던 몇 권의 책, 겨우내 덮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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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종교와 혼동하고 문학을 자기변명과 혼동하고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수년 전 인문학을 함께 공부했던 여자였다. 소식이 두절된 채 몇 해가 지났고 며칠 전 뜬금없이 여자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어떻게 지내냐고 커피 한 잔 하겠냐고. 마주 앉자마자 여자는 “나는 요즘 문학을 읽어요.” 했다.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학생용 문학전집으로 독서의 맛을 들였다고 했다. 그때의 책은 학생용이라고 특별히 배려된 바 없었으니 그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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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없지만 내 앞에만 있는 것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그렇게 마음이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시오. 그렇지만 명심하시오. 내가 막강하다는 것을. 그런데 나로 말하자면 최하급 문지기에 불과하고, 방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막강해지지. 세 번째 문지기만 되어도 나조차 쳐다보기가 어렵다고.” 법(法)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하는 시골 사람에게 문지기가 이렇게 말한다. 입장하기 위해 부탁도 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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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밥의 가격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집 밥, 집에서 만든 밥. 1인가구가 늘고, 모두가 바쁘게만 사는 세상에서 집에서 만든 밥을 먹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우고, 한참 재료를 손질한 뒤 요리에 돌입해서, 요리를 마치고 밥상까지 차려내는 데는 족히 몇 시간이 소요된다. 요리가 직업이나 취미가 아닌 이상 누군가 이 길고 힘든 작업을 기꺼이 하는 일이 자연스럽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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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커피, 혁명 혁명

[ 미미 ] :: 루쉰 잡감 // 에브리데이 커피 처음 문장을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라고 쓰려니 과연 내가 커피를 좋아하나 다시 묻게 된다. 분명 커피를 즐겨 마시긴 하지만 이젠 커피가 더 이상 특별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물같이 느껴져서 좋아한다고 쓰는 게 맞나 싶다. 어디를 둘러봐도 한집 걸러 카페이고 언제 어디에나 손쉽게 마실 수 있는 게 커피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스타벅스에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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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育兒)를 끝내는 정신승리법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나이 오십 줄을 넘어서니 친구들은 거의 대학생 엄마 이상이 되었다. 결혼과 출산이 약간 늦었던 나는 딸이 아직 고등학생이다. 친구들의 입에서 요즘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도대체 육아는 언제 끝나는 거니!” 대학만 보내면, 애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안달하며 보낸 십여 년만 끝나면, 저도 제 앞가림하겠지, 그럼 나도 애 일에서 놓여나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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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가스라이팅이에요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살면서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어이없는 말 중의 하나. 정말 어이없어서 죄송하지만, “예쁜아~”였다. 애인이 애인에게 건네는 말이었기에 참고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삼천년 쯤 없다. 일단 예쁘다 보다는 못 생겼다 류의 말을 자주 듣고 살았기 때문인데다 철 들고 부터는 스스로도 예쁘지 않음을 주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쁜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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