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중국]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중국철학강의 1~2강)2020-09-17 01: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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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에레혼

五四新文化”的实质:瓦解宗法家族,建立国家主义. “五四”是中国近代史上的一个重大事件。今天,仅将“五四”命名为青年的节日局限了。… | by  江上小堂| 

요즘 것들, 아니 1919년 것들

5.4운동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를 못 본 지가 좀 된 터라, 이번 기회에 검색을 해봤다. 왼쪽의 그림이 바로 그 이미지이다. 멀리 천안문을 배경으로 물밀듯 밀어닥치는 인파, “불평등조약 폐기라는 구호, 그리고 그 뒤로 타도공가점이라는 문구까지. 모든 것이 5.4운동 그 자체이다.

<중국철학 강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두부터 왜 1919년 이야기를 하나 싶으신 분들도 있으시리라. 책을 읽으면서 5.4운동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바로 다음의 구절 때문이었다.

이 시대는 서양 문화가 주도권을 잡은 시대로, 사람들은 모두 일체를 서양으로 표준을 삼는다. 이러한 현상은 서양 사람들 자신이 그렇게 여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화민국이 개국한 이래 중국의 지식인들 대부분도 역시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 (p. 23, 물론 한 장 뒤에서 5.4운동을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모종삼의 입장에 빙의해서 인용한 글을 읽어보면 왠지 마지막에 혀를 끌끌 차야 할 것만 같다. 비록 모종삼이 신아서원(新亞書院, 현재 홍콩중문대학의 전신)에서 강의를 한 것은 1960년이지만 그의 시선은 20세기 초반의 중국으로 향해 있다. ‘어쩌다 중국이 이렇게 된 걸까?’ ‘왜 많은 중국인들이 전통을 거부하고 서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처지가 되었을까?’ 모종삼의 문제의식 저변에는 봉건타도를 기치로 내세웠던 5.4운동 역시 원흉처럼 보였을 것이다.

썩 반갑지 않은 발견

교과서전공수업에서 5.4운동을 배울 때마다 반쪽짜리를 공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그 시기에 서양을 배우자고 주장하는 사람뿐이었을까? 중국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을 소홀하게 다루는 이유는, 한국이 중국 대륙의 역사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비어있는 대척점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황제 제도를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엄복강유위보다 더 매운 맛을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 모종삼으로 대표되는 신유가 학자들이었다.

물론 잃어버린 고리를 발견하고 난 이후의 심정은 즐거움보다는 난처함에 가까웠고, 속 시원한 기분보다는 오히려 꽉 막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몇 년 만에 세미나를 통해 다시 만난 모종삼 교수는 첫인상에서 별반 바뀌지 않았다. <중국철학 강의>를 따라가다 보면, 중국 고유의 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철학자의 기이한 여정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

스스로를 모자라다고 여기며 발생한 비극

첫번째 강의의 시작은 어떤 지역에는 그 지역만의 고유한 □□()가 있다는 구태의연한 말로 시작된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모종삼의 말은 자국 학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원래 중국의 학술 사상에는 서양의 철학 체계와 부합하는 것이 매우 적다. 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묵자>만이 미국의 실용주의에 비교적 근접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들은 또 묵변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 편(묵변)에 약간의 조잡한 물리학적 지식을 함유하고 있고, 또한 약간의 논리학과 지식론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p.25)

20세기는 여태까지 지겹도록 읽어 온 공자, 맹자 말고 다른 제자백가, 다른 사상가의 말과 글이 발굴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모종삼의 지적에 따르면 이러한 발굴 작업은 서구에는 있고 중국에도 아마도 (혹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분야를 발견하는 것이다. <중국철학 강의>의 비판은 가감이 없어서, 풍우란의 <중국철학사> 역시 이와 같은 억지스런 대칭 찾기 놀이에 골몰한 책으로 소개된다.1) 모종삼에 따르면 풍우란은 서양철학의 시대 구분 방식을 중국철학 위에 덧씌워’ (p.27) 책을 집필했을 뿐만 아니라, 명학처럼 중요하지 않은 사상을 강조하였으므로 중국 고유의 철학사를 집필했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

중국에는 이미 철학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다른 학자들이 괜한 수고를 했다며 한참 핀잔을 늘어놓은 뒤, 모종삼은 자신이 생각하는 중국철학의 특질을 두 가지주체성과 내재한 도덕성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이는 서양철학의 특징(객체성, 지식 중심)을 위시한 정의처럼 보인다. 더불어 그는 중국철학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특징 역시 강조하고 있다.

서양 학문의 우수한 특징으로 꼽히던 분석적 사고는 <중국철학 강의> 오히려 서양철학의 확장성을 가로막는 요소로 설명된다. “이러한 해석과 반성의 활동이 어떻게 반드시 일정한 형태와 소재에만 국한되어야 하는가? 철학이 어떻게 반드시 하나의 형태와 소재를 유난히 고집해야만 하는가?” (p.32) 여기까지 모종삼의 목소리를 따라오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터져 나올 것이다. , 이제 누가 더 열등한 학문이지?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할지

이 책은 거창한 이름과 걸맞지 않게 중국철학의 일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여기에서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주류가 된 유가사상을 강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나머지 부분은 이 강의에서는 시간이 없어 논의할 수가 없다.” (p.7) 변명처럼 붙은 이 말은 모종삼의 서술 전략이었을지 모른다. 서양철학에 대비되는 대상으로 유가철학을 내세우면서 모종삼은 흥미로운 차이점을 도출하고 있다.

<중국철학 강의>에 등장하는 중국·서양철학의 차이점은 통념을 뒤엎는다. 모종삼은 중국철학하면 흔히 떠오르는, ‘현실에는 쓸모없는 이미지가 서양철학의 특성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같은 형이상학이라 하더라도 고대 그리스 철학의 형이상학은 이론 형이상학에 불과하고, 중국철학의 형이상학은 (도덕)실천을 지향한다. 모종삼의 논리대로라면, 통치자에게 인치와 덕치를 강조하던 공자와 맹자야 말로 가장 실천적인 철학자 아닌가?

이처럼 유독 중국철학에서 도덕이 강조되는 까닭에 대해, 모종삼은 우환의식을 그 원인으로 본다. 우환의식은 모종삼과 함께 대만신유가 학자로 분류되는 서복관이 특별히 강조한 개념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군자의 근심은 일상에서는 발생하지 않지만, 도덕실천이나 학문, 통치 등에 대한 고차원적인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성인)가 마음에 품고 있는 불만과 가지고 있는 근심은 만물을 낳아서 기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생육이 그 마땅한 바를 얻지 못할까이다. 이러한 우환의식이 점점 자라고 커져서 최후에는 비천민인의 관념을 이루게 된다. (p. 46)

이와 같은 우환의식은 기독교나 불교에서 나타나는 공포의식과 구분된다. 모종삼은 기독교나 불교의 온화한 이미지의 배후에는 공포의식이 자리한다고 지적한다. 기독교의 원죄 관념, 불교의 고업의식은 인생의 부정적 요소를 강조하는 반면 유가는 이와 정반대이다. 유가의 성인은 하늘이 무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여, 그 인식을 바탕으로 모든 만물이 나고 자라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구망에 가려졌던 계몽

다시 모종삼이 서두에 언급했던 5.4운동으로 돌아와 글을 마치려 한다. 중국 철학자 이택후(리쩌허우) 5.4운동 이후 중국 근대사를 구망(求亡)을 위해 계몽이 희생된 역사라고 평가한다. 이택후의 진단은 중국 근대의 정치운동들이 대다수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뤄졌고, 민족과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요구에 계몽이 중국사의 무대에서 밀려났다는 이야기이다.

이택후와 같은 학자들이 못내 아쉬워했던 평행세계 속의 인물이 바로 모종삼이 아닐지. 망하는 것을 구하는 일보다 계몽을 앞세운 평행세계 너머의 중국이 있었다면, 서복관이나 모종삼 같은 인물들이 진독수, 호적 등과 위치를 바꿨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담이지만, 이택후와 모종삼은 의견이 많이 갈리는 사상가이므로 이택후 세계관에 모종삼이 낄 자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내가 원하는 것 바꿨더니 다른 안 좋은 것들이 튀어나오더라 식의 클리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중국철학 강의>를 읽으면서 주목할 부분은 중국과 서양의 철학이 무엇이 다른가가 아니라 왜 모종삼은 중국과 서양을 비교해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이다. ·서양을 비교하며 이뤄진 서술은 단순히 시대적 한계를 증명하는 것일지, 지금 우리가 한국의 문화를 연구할 때에도 이런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모종삼의 <중국철학 강의> 국학 연구 방법론의 반면교사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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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우란의 <중국철학사>를 비판하는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는데, 바로 진인각의 심사보고서에 대한 평가이다. 모종삼은 진인각이 풍우란의 <중국철학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실만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진인각의 심사보고서는 억지로 비교하는 나쁜 습관을 고칠수 있었고, 이해에 기초한 공감을 하고 있다는 말이 핵심은 아니다. 진인각은 고대의 사상에 대한 현시점의 연구 과정에서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 진인각 심사보고서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예전의 것을 연구하는 과정에 지금의 시각을 배제할 수 없다는 구절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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