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포스트휴먼] 바이러스 시대의 주체와 윤리2021-09-15 10: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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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로지 브라이도티_변신 5장 발제문 .hwp (185.5KB)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5장 변신-금속변형: 기계 되기 & 에필로그

 

지난주 화요일, 202197일에 나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이름도 무시무시하게 mRNA 백신이었다. 이 백신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담겨있어,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우리 몸에 전달한다고 했다.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담겨있다는 말은 이 백신이 바이러스를 우리 몸 안에 옮겨온다는 의미가 아니다. 백신은 USB처럼 필요한 정보를 우리 몸에 옮겨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백신을 맞은 후 우리 몸의 유전정보가 변하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히 변형이 일어난다.

 

로지 브라이도티의 지적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변형된 존재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처럼 우리는 점점 더 혼종에 가까워진다. 기계화에 맞춰가는 신체,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한다. 근대적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범주는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 그 위태로움은 일종의 허무와 종말에 대한 상상을 유발한다. 인간이라는 범주의 사라짐은 과연 우리들의 사라짐과 같은 말일까? ‘인간의 죽음이 곧 인류의 멸종과 종말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서로를 공격하고 물어뜯는 아비규환을 예언하는 말일까?

 

우리가 인간뒤에 오는 다음 세대의 인류로 포스트휴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이 가졌던 문제는 그대로 포스트휴먼에게 전해진다.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이 결합된 시대의 포스트휴먼은 젠더와 인종, 계급의 문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론적으로 주체성과 윤리의 문제를 소거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한 포스트휴먼 역시 이론적 한계에 부딪힌다. 포스트휴먼 세대에 걸맞은 새로운 주체성과 윤리가 필요하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새로운 주체성과 윤리를 들뢰즈의 되기이론과 페미니즘에서 찾는다.

 

단지 우리 몸의 일부를 기계로 바꾸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유의 전제부터 시작해서 패턴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변증법적 방식으로 동일자에 포섭되는 타자가 아니라 소수성에 대한 자각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주체를 이야기한다. 들뢰즈의 되기는 바로 이런 유목적 주체를 향해 나아간다. 이 주체는 다중적이며 복잡하고 다층화되어 있다. 통일성과 거리가 멀고,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지도 않는다. 소수성과 변화를 무기로 삼는 이 주체성이 우리 삶의 전제를 바꾸고 새로운 윤리적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변화하는 기술문명은 간혹 기술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새로운 낙관론으로 연결된다. 반대로 세계의 변화를 불길한 감성으로 읽어내면서 파멸의 서사를 상상하기도 한다. 특히 대중문화에서는 거듭해서 새로운 파멸의 서사들이 창조되고 소비된다. 기계의 위협, 이방인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무차별한 죽음과 변형에 대한 공포들이 판타지와 사이버펑크를 거쳐 최근 유행하는 좀비 장르에까지 만연한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가 아주 연약한 몸을 가졌음은 물론 그 몸 때문에 쉽게 공포에 잠식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허무주의와 파멸에 대한 상상에서 벗어나는 전제로 우리 몸을 다시 사유한다. 우리 몸은 모든 감각과 기쁨의 원천이다. 몸은 자체의 역량으로 거듭해서 변형을 받아들인다. 과학기술은 여성을 배제하지만, 한편으로 여성의 몸은 기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성은 자신과 닮은 기계를 경계하지만, 새로운 주체성은 기계적 방식으로 활동력을 얻는다. 들뢰즈는 우리가 기계적 배치안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주체는 완벽하게 자유롭지 않으며, 기계적 배치 안에서 생존하고 활동한다.

 

변형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미 새로운 주체이다. 통일성이나 일관성과는 거리가 먼 이 주체는 변형 속에서 새로운 윤리를 사유한다. 변형은 욕망과 연결되며, 욕망이 곧 우리의 정치성이다. 우리는 변형을 욕망하면서 두려움에 저항한다. 논리적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사회적 상상계는 우리의 욕망과 밀접하며, 이는 곧 정치적 정동의 영역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변형 속에서 살아가면서 욕망과 함께 생존 조건을 만들어간다. 생존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새로운 윤리의 특징은 긍정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형될 나약한 혼종으로서 자신을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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