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서양고전] 에티카, 습관과 태도의 철학 (<에티카> 낭독세미나 후기)2022-10-28 09: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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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권, 심지어는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는 시대에 무려 열 달에 걸쳐 책 한 권을 읽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철학 공부를 막 시작하던 시기에 멋모르고 읽었던 책이라 한 번은 차분하게 다시 읽고 싶던 책이다. 최근 읽는 책들에 자주 언급되면서 점차 마음도 급해졌으나, 벌려놓은 일이 많아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고민 끝에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는 낭독세미나로 진행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에티카를 읽으며 버티고 보내온 해였다. 스피노자에게 기쁨은 보다 큰 완전성으로의 이행이며, 역량의 촉진과 증대를 뜻한다. 반대로 슬픔은 보다 작은 완전성으로의 이행이며, 역량의 감소와 억제를 뜻한다. 스피노자의 세계관에서 신의 변용인 우리는 모두 완전한 존재들이다. 신의 완전성은 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완전하게 구현하며, 그렇게 구현된 우리 역시 완전하다.

 

더 이상의 가능성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완전한 존재들인 동시에 우리는 매 순간 정서(감정)에 따라 역량이 증대되거나 감소하면서 흔들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스피노자는 기쁨이 인식과 연결되며,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의 역량을 바라보는 기쁨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일과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다르지 않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바로 세계를 사랑하는 일이다.

 

불행하게도 올 한해 나는 역량이 증대하는 기쁨의 순간을 많이 느끼지 못했고, 나 자신의 역량을 바라보는 기쁨과도 멀어졌다. 보다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면서 나는 슬픔과 함께 나와 세계를 응시했다. 인식의 역량과 관계의 역량이 모두 축소되는 상황을 신체와 정신으로 함께 느꼈다. 그리고 다행히도 매주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으며, 나의 변화와 이행을 감지하려 노력했다.

 

지금 이러한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으로서 내가 제시한 길은 몹시 험준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발견될 수는 있다. 진실로 이와 같이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곤란한 일임에 틀림없다. 만일 구원(행복)이 눈앞에 있어서 큰 노력 없이도 발견될 수 있다면, 어떻게 거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등한시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

- 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정리 42 증명 마지막 문단

 

그러다 보니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고, 무력감과 욕망 속에서 에티카의 마지막 문장을 만났다.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나는 고귀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어렵고 드문 과정을 열 달 동안 견뎌왔으니 나의 무력감과 욕망, 미움과 질투에도 고귀함의 부스러기가 몇 개쯤은 콕콕 박혀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 부스러기를 지렛대 삼아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고 싶었다.

 

이성은 본성에 반대되는 것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므로, 이성은 각자가 모두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자기의 이익(진실로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고, 진실로 인간을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인도하는 모든 것을 욕구할 것을, 그리고 절대적으로 각자가 가능한 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 4부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에 대하여 정리 18 증명 중에서

 

나의 이성이 내가 관계 맺는 이들과 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리라 믿으며, 나를 기쁘게 하는 일에 기꺼이 몰두하라는 스피노자. 이 믿음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생존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존재를 보존하려는 노력은 다른 존재가 자신을 보존하려는 노력과 연결되며 공명한다. 죄책감에 물들지 않은 기쁨과 결핍 속에서 피어나지 않은 욕망으로 우리는 서로를 보존하고, 응원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순간에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끊임없이 역량이 증대하고 감소하는 이행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스피노자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은 습관에 있었다. 반복되는 습관은 언제나 이행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역량을 태도로 드러내 준다. 이제 나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습관과 태도의 철학이라고 부르려 한다. 철학은 습관 속에서 만들어져 태도로 드러난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에 대하여 완전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동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올바른 생활규칙이나 일정한 생활지침을 구상하고 이것을 기억에 남겨 인생에서 흔히 마주치는 개개의 경우에 끊임없이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의 표상력은 그러한 생활규칙으로부터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고, 그 생활규칙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정리 10 주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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