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문학]보르헤스 읽기 :: <알렙 >#1 발제 2019-03-21 22: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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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사람들

1929조셉 카르타필루스가 뤼생즈 공주에게 포프의 여섯 권짜리 일리어드(1715-1720)를 사도록 권했다. 그는 회색 눈과 구렛나루 수염, 흙빛의 노쇠한 사람이었다. 여러 개의 언어(불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등)를 구사했고 이오스 섬에 묻혔다. 그녀는 일리어드의 마지막 권에서 이 원고를 발견한다.

 

1. 나는(마르코 플라미니오 루포) 로마제국의 군단장이었다. 동쪽에서 온 사람은 라틴어로 도시의 성벽들을 씻어내고 있는 강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집트>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정화시켜 주는 비밀의 강>을 찾고 있으며, 강의 하구에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가 세워져 있다고 말했다. 나는 사막으로 들어갔다.

 

2. 개울 건너편에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가 있었다. 내 것과 비슷한 구덩이에서 혈거인들이 나타났다. 나는 갈증으로 인해 산 아래로 몸을 날려 물을 들이마셨다. 혼수상태로 빠져들기 전 그리스 말인 에세포스 강의 검은 물을 마시고 있는 셀레아에서 온 부유한 터키사람들.. 나는 개울을 건너 <도시>로 향했다. 두어 혈거인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바싹 오그라든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도시>의 지하에는 아홉 개의 문을 가진 지하실들과, 끝없이 갈라지는 길다란 지하실들이 있었다. 그 지하의 갈래들에서 한차례 향수를 느끼며 나의 마을과 혼동했다. 형용할 길 없는 궁전을 돌아본 후 거의 회한에 가까운 이해할 수 없는 욕설과 함께 감각적인 두려움보다는 지성적인 공포를 느꼈다. 나는 내가 어떻게 귀환하게 되었는지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3. 동굴의 입구에서 혈거인을 발견했다. 그는 일련의 기호들을 모래사장 위에 썼다 지우곤 했다. 그 기호들 중 어떤 기호도 나머지 기호와 동일하지 않았다. 그 혈거인의 비천함과 비참함은 죽은 오디세이의 늙은 개, 아르고스에 대한 기억으로 데려갔다. 그에게 아르고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인지시켜 주고자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어느날 비가 내리고 혈거인은 환희에 넘쳐 소낙비를 맞고 있었다. 나는 아르고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아르고스가 더듬거리며 아르고스, 율리시즈의 개그런 다음 이 개는 퇴비더미 위에 누워 있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에게 오디세이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가장 형편없는 음유시인들보다 더 모르지요, 벌써 내가 그 오디세이를 창조한 지 천 백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소

 

4. 불사의 존재가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들은 죽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불사의 존재들이다. 종교는 불사성을 신앙하지만 그렇게 믿는 것에 불과하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수레바퀴이다. 죽지 않는 자들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 도덕적이거나 지적인 우월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호머는 오디세이를 지었다. 만일 무한한 변화들을 가진 무한한 시간들을 상정해 본다면 적어도 한번 오디세이가 씌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신이고, 영웅이고, 철학자고, 마귀이고, 나는 세계이다. <죽지 않는 자들>은 경건심에 냉담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서조차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매달 몇 시간의 잠, 약간의 물, 고기 한토막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10세기말 새로운 학설이 등장했다. <그곳의 물이 불사성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강이 있다면 다른 곳에 그 불사성을 지워버릴 또 다른 강이 있을 것이다> 죽음은 인간을 소중하고 애상적인 존재로 만들어 준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환영적인 존재 조건 때문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인간이 행하는 각 행동은 그들의 마지막 행동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죽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 행동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과거에 했던 다른 행동들과 사고들의 메아리다. 호머와 나는 항구 어귀에서 헤어졌다. 우리들은 서로 이별의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5. 나는 스템포트 다리의 전투에 참가했고, 불락에서 선원 신바드의 모험을 필사했고, 1714년 포프의 일리아드6권을 구독 신청 했다. 비카네르 그리고 또한 보헤미아에서도 점성학을 연구했다. 192110월 봄베이로 가던 배에서 내렸다. 나는 그 항구 도시의 근교에서 아주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개울을 발견했다. 나는 습관에 쓸려 그 물을 떠 맛을 보았다. 둑 위로 올라왔던 나는 가시나무에 손등을 찔렸다. 고통은 내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침묵 속에서 천천히 방울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과정을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죽는 존재가 되었다.

 

끝부분에 가까워지면서 그의 기억의 영상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남아있는 것은 단지 <말들>뿐이다. 나는 호머였다. 나는 마치 율리시즈처럼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죽을 것이다.

 

죽어 있는 사람

굽힐 줄 모르는 용기 외에 다른 덕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싸움꾼이 말 탄 사나이들이 난무하는 사막으로 들어가 밀수꾼의 두목이 되는 이야기.

1891년 벤하민 오딸롤라는 19세가 되던 해 그의 승리로 끝난 칼싸움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를 도주하면서 반데이라를 구해주고 가우초(목동)이 된다. 두목의 주된 사업은 밀수였고, 오딸롤라는 야심과 충성심에 밀수꾼이 된다. 오딸롤라는 두목이 백발과 피로와 쇠약함으로 늙어빠진 영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적토마와 금속판으로 도금한 마구와 찬란한 빛을 내는 머리를 가진 여자를 원하게 된다. 우주가 그와 함께 음모를 꾸미는 것 같고, 그는 두목의 자리를 찬탈하고 적토마를 타고 목장으로 돌아와 두목의 여자와 잠을 잔다. 1894년 마지막 날 오딸롤라는 취해 끝간 데 없는 환희와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이지만 이 끝없이 쌓여 올라가는 흥분의 탑은 그가 저항할 수 없는 운명 그 자체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걸맞는 그런 죽음, 한 발의 총탄에 맞고 죽는다. 죽기 전 오딸롤라는 그들이 자신을 배반했고, 이미 사형이 언도되어 있었고, 그가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자신에게 사랑과 지휘권과 승리를 허용했던 사실을 깨닫는다.

 

신학자들

역사는 순환적이고, 과거에 없었거나 미래에 없을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무변교도들>(또한 환상교도들이라고도 불리는)이라는 새로운 종파가 생겨났다. <수레바퀴><>이 십자가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아우렐리아노 주교는 후안 데 빠노니아아에 앞서 <수레바퀴>이단을 공박한다. 그는 후안을 능가하기를 원했다. 유다가 재차 예수를 팔고, 바울이 재차 스테파노의 순교를 목격하게 되리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오리게네스의 저작 태초로부터의 한 부분과, 키케로가 루쿨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수가 무한한 또 다른 루쿨로들과 키케로들이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키케로의 학문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덧붙여 플타크의 저술과,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자연의 빛>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우상 숭배자들의 추문을 공박했다.

 

후안 데 빠노니아가 반박문의 사본을 그에게 보내왔다. 그것은 그를 비웃기고 있는 듯 간명했다. 예수가 태초로부터 여러 차례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세기들이 지난 근자에 와서 단 한 차례 희생을 했던 것뿐이며, 이방인들의 헛된 증언부언에 반한 성경의 가르침과, 아무리 우주가 광대하다 해도 두 개의 똑같은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찰하고 있는 플리니의 자연사7권의 구절을 증거로 제시했다.

 

아울렐리아노는 굴욕감을 맛보았다. 몇 달 후 공의회가 열렸을 때 <무변교도들>의 실책에 대한 논박을 책임질 신학자로 후안 데 빠노니아가 임명됐다. <수레바퀴><십자가>에 무릎을 꿇었으나 아우렐리아노와 후안의 은밀한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후에도 새로운 이교들은 널리 퍼져나갔고 아우렐리아노는 그들에게 <어릿광대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우렐리아노의 교구에 있는 이교도들은 모든 행동이 하늘에 반영된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역사의 반복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우렐리아노는 <어릿광대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플라니를 인용한 후안의 문구를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을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 지금 이교도들이 컹컹 짖어대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을 금세기의 박학한 한 신사가 과실이라기보다는 경솔함으로 인해 이미 언급했던 바 있다>라고 덧붙인다. 결국 후안은 이단적인 견해들을 설파한 죄로 고발당하게 되고 화형을 당한다. 그러나 아울레리아노 역시 후안이 죽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천국에 이르러 아우렐리아노는 하느님의 속성 안에서 빠노니아(정통교도와 이단자, 증오하는 자와 증오를 받는자, 고발자와 희생자)가 같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사(戰士)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

로마를 방어하다 죽은 야만인 드록툴프트와 금발머리 원주민의 삶에 관한 이야기.

드록툴프트는 멧돼지와 들소가 있는 숲에서 자랐지만 전쟁을 위해 라베나로 온다. 그는 무질서하지 않게 한데 모여 전체성을 이루고 도시를 본다. 석상들, 사원들, 정원의 축조물들 중 그 어느 것도 그에게 아름답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는 어떤 불멸의 지성을 감지케 하는 아주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계를 만져보듯 그것들을 만져본다. 도시는 그의 눈을 멀게 했다가 다시 새롭게 눈을 뜨게 만든다. 그는 그 도시 속에서 어린애에 불과하고, 도시를 이해조차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 도시가 자신의 신들과 독일의 모든 늪지대들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느낀다. 드록툴프트는 자신이 속해 있는 군대를 버리고 라베나를 위해 싸운다.

 

나의 영국인 할머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요크셔 출신의 금발머리 원주민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인디언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고 납치당해 두 아이를 낳은 추장의 부인이었다. 그녀의 삶은 야만적이었다, 나의 할머니는 그녀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신은 행복하다면서 사막으로 되돌아갔다. 그 여자 포로와 드록툴프트는 똑같이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떤 비밀스러운 충격, 이성보다 더 심원한 어떤 충격의 포로가 되었고, 스스로조차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을 그 충격에 순종했다.

 

내가 들려준 이 두 이야기들은 똑같은 하나의 이야기일는지도 모른다, 신에게 있어 동전의 양면이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데오 이시도로 끄루스(1829-1874)의 전기

가우초들이 사회에서 냉대받고 끝내는 범법자들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

1829년 따떼오 이시도로 끄루스는 태어났다. 1849년 그는 토벌군과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갔다. 그는 자신과 도시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것을 알고 있었다. 끄루스는 땅에서 잠을 자고, 마테차를 마시고, 새벽에 일어나고, 기도를 드리면서 보냈다. 마을의 한 일꾼이 그를 조롱했고 끄루스는 그에게 칼침을 먹였다. 끄루스는 하급 군인의 신분으로 내전에 참가했다. 1856년 인디언들과 싸웠던 기독교인들 중의 하나였다. 1868년 한 사내아이의 아버지였고, 조그만 땅뙈기의 주인이었다. 1869년 경찰서장이 된다. 그는 과거의 삶의 방식을 고쳤다. 1870년 그는 두 사람을 죽인 탈영병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라구나 꼴로라도 출신으로 그곳은 끄루스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끄루스와 부하들은 그를 포위할 수 있었다. 차하해오라기 한 마리가 울었다. 그는 전에 마치 이 순간을 살았던 것 같은 환영을 느꼈다. 어둠속에서 범죄자와 싸우고 있는 동안 끄루스는 한 운명이 다른 한 운명보다 나을게 없지만 모든 인간은 자신의 가슴 안에 있는 운명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끄루스 지금 자신이 싸우고 있는 그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범죄자인 피에로와 함께 군인들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1874년 끄루스는 천연두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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