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리딩R&D] 생동하는 물질 - 6장 줄기세포와 생명문화2022-10-19 21: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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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물질

2022-10-19 라라

6장 줄기세포와 생명문화


생기론이냐 기계론이냐라는 논쟁은 생명과 물질 사이의 근본적 구별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복음주의 기독교와 로마 카톨릭이 옹호하는 생명문화는 현대적 생기론이라 할 수 있다. 생명문화운동은 생물학적 유기체에 자유롭고 비결정적인 행위성이 있어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생기적 힘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시와 복음주의자들의 생기적인 힘이란 배아의 물질에 활기를 불어넣는 신성한 영혼을 뜻한다. 드리슈의 생명력 개념은 육체와 분리된 영혼(종교적 개념)과 구별하려고 노력했다.형성권력(생명력)은 물질세계나 개별 생물체에게도 있어서 스스로 현시하는 형상과 질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정적인 영도의 경계도 인정하지 않고 적법하게 소속될 수 있는 생물학적 통일체인류라는 것이다.

 

생기론의 두 가지 입장(하나는 영혼기반 다른하나는 그렇지 않은)은 존재론적 가정들과 정치적입장들 사이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영혼의 생기론의 위계적 논리(-인간-자연)는 쉽게 사회계급이나 문명의 위계로 이어진다.

 

생명문화 옹호자들은 첫째 생명은 물질과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생명에는 자율성과 물질에는 수동성을 강조한다. 둘째 인간의 생명을 다른 생명들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믿는다. 영혼을 부여받은 인간 유기체는 다른 유기체와 격차를 강조한다. 셋째 영혼은 전능한 이 부여한 것으로 인간의 유일성을 신의 의도라고 여긴다. 넷째 신성하게 창조된 세계는 질서가 있는데 그 질서에는 위계가 있다. 인간과 지구가 우월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과 비인간 행위소의 배치에서 생명 사랑이 폭력 사랑과 공존하게 된다. 우주의 위계에 대한 인간의 마음,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라는 정서, 침략과 폭력이 주는 인간의 기쁨은 만능적인 줄기세포, 미제국이라는 비인격적인 힘, 이라크의 전쟁이 그 예이다.

 

드리슈의 생기론은 이와 다르다. 실험실에서(?) 행한 실천적인 작업(유기물과 무기물을 손으로 다루고 대면하고 반복적으로 접촉을 시도)은 위계 구조라는 개념은 말끔히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드리슈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분배된 생명을 넘어서 모든 사물들이 생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주를 거대한 유기체이자 진화하는 어떤 것이 라고 결론짓는다. 기계론과 생기론의 차이(그 자체)를 파괴하여 모든 사물은 생명력적(entelechial)이고 생명적(lifely)이며 생기적(vitalistic)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생기론에서 생기론적 유물론으로 넘어갔다.

 

제인 베넷은 잠재성과 가능성에서 오직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전제만을 허용한다는 드리슈의 주장을 비판한다. 생기론의 핵심은 자유로운 활동을 긍정하는 것이다. 세계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계산되지도 않으며, 창조와 경탄, 선택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인 베넷은 배아줄기세포 연구 논쟁을 종교인과 과학지지자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생기론과 유물론의 논쟁으로 바라본다. 물질의 자유성보다 인간의 능력이 어떻게 자연을 통제할 수 있었는가가 중요한 부시의 현대적 생기론은 과학과 신학의 거리를 좁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줄기세포 연구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면서도 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에 수십만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기적 전쟁이라고 평가했다.

 

제인 베넷은 생명-물질의 이원론과 그것의 상관관계 자연의 기계론적 모델을 넘어서 비물질적인 행위자를 상정하는 생기론으로 회기하지 않으면서 세계의 비결정적 생기를 받아들이는 또 다른 생기적 유물론을 내세우고자 한다. 물질은 내부에서, 물질의 외부와 내부의 기관들에 순응하면서 수천의 살아 있는 다양한 힘들이 작용한다는 폰 헤르더를 인용한다. 능동적인 원리로서의 물질을, 다양한 단계가 언제나 존재하는 활력의 물질성의 우주를, 목적이나 경험 없이도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물질성을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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