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와 성] <일탈> 8-9장 발제2019-08-09 10: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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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연대

 

 게일 루빈은 1982년 바너드 대학에서 열린 학술회의 <학자와 페미니스트>를 위해 이 논문, 성을 사유하기를 준비했었다. 성을 사유하기는 이후 사반세기 동안 세 차례 추가 보강 되었는데, 10년 후(1992)에 긴 후기를 덧붙였고, 그로부터 4개월 후 다시, 그리고 처음 논문을 썼던 그 시기를 반추해달라는 요청에 응답하여 2010년 최종적으로 보강되었다.(일탈8)

 

성을 사유하기는 여러 번 리뉴얼된다. ? 그것은 게일 루빈의 다음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늘 누군가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끊임없이 우리의 주제에 대해 더 나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만드는 것은 학자가 해야 할 일일 뿐 아니라 특정 기술의 도덕적 임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우리가 더 배울 때, 우리의 분석을 다듬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사회적 의제들이 그렇듯 성 역시 시대와 장소에 따라 구성된다. 변화를 포착하고 수용하면서 성이라는 주제를 더 나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즉 사람들이 좀 덜 불평등하고 좀 덜 부당한 방식으로 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게일 루빈은 그것을 자신의 학자적 임무로 여긴다. 성을 사유하기는 본질주의와 부정에 근거해서 성을 판단하는 기존의 잣대를 허물고 구성주의라는 새로운 잣대를 제시했다. 본질주의와 부정이 통념과 관습에 근거한 비사유적 판단의 잣대라면 구성주의는 익숙한 방식을 파괴하기에 급진적 사유가 된다.

 

낯선 존재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밀어내는 것은 인간이 갖는 동물성의 자기보호본능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낯선 존재를 끌어안고, 우리 안의 구성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이 갖는 또 하나의 기능, 사유다. ‘우리라는 울타리는 더 넓어져야하고, 존재했으면서도 왜 그동안은 드러나지 않았는지, 왜 하필 지금인지 등등 우리 안에 낯선 자의 자리가 권리로서 정당하게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이 갖는 사유속성을 발휘해야 한다. 성을 사유하기는 그 성과 중 하나이고 게일 루빈은 리뉴얼을 통해 자신의 이론적 모델과 개념적 구분의 한계를 갱신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최근 새롭게 부각되는 페미니즘 담론과 성 이슈가 낯설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무관심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관심을 좀 가져보려 하면 당장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떤 관점으로 그 사안들을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이 시작된다. 나이 먹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관심 있는 척하는 것은 금방 한계에 부딪친다. 무엇보다 한 큐에 가장 올바른판단을 하고 싶은 욕심스러운 성급함이 앞선다. 25년 동안 한 논문을 고치고 고친 게일 루빈의 작업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복잡한 것은 복잡한 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성급한 단순화에 대한 경계다. 더욱 명징하게 분석하고, 정밀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교조주의로 빠지지 않기 위함이다.

 

2010년에 쓰인 성을 사유하기의 최종 버전은 이 논문이 처음 나왔던 1982년 바너드를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게일 루빈은 이때를 바너드 성 전쟁으로 칭한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 회의를 반페미니즘적으로 규정했다. 이 전쟁은 성을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은 급진적인 진영과 사유하기를 멈춘 자들, 더 이상 급진적으로 사유하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다.

 

바너드 회의는 19829회째를 맞이한 연례 학술 행사였다. 이 회의의 기획팀이 회의가 열리기 전 여덟 달 동안 2주에 한 번씩 사전 모임을 가졌다면 그들이 이 지적 작업의 산물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드는데 얼마나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바너드 회의에서 발표된 주제들도 자크 라캉, 낙태권, 게이와 레즈비언의 권리, 포르노그래피, 10대 로맨스, 대중을 위한 섹스지침문헌, 창조성과 연극, 예술적 비전, 동성애와 이성애 관계에서의 부치/펨 역할, 계급, 인종, 심리치료.....섹슈얼리티, 매춘, 정신분석학등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모든 주제가 페미니즘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페미니즘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학술행사였다.

 

이 회의를 파행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페미니스트 집단이었다. 뉴욕을 근거로 활동하고 있던 ‘WAP:포르노그래피에 반대하는 여성는 회의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대학행정당국을 압박해 회의 자료인 [섹슈얼리티 회의 일지]를 배포하지 못하도록 했다. 게일 루빈은 이 전쟁의 시작을 1978, ‘WAVPM:포르노그래피 및 미디어의 폭력에 반대하는 여성과 최초의 레즈비언 S/M조직 사모아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라고 본다. 이 전쟁은 애초부터 페미니즘 대 반페미니즘 간의 대결이 아니고, 반포르노그래피를 주장하는 페미니즘 단체가 S/M이미지 및 실천에 반대해서 일으킨 전쟁이었던 것이다.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즘 운동단체는 S/M을 포르노와 동일시한다. S/M을 폭력과 등가관계로 보며, 최악의 가부장제적인 섹슈얼리티 형식으로 취급한다. S/M을 자기파괴, 남성우월, 파시즘, 여성혐오, 정신병과 일치시킨다. 이러한 주장이 게일 루빈에게 우파가 페미니스트를 공격하고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과 똑같이 편향되고 편협하게 보인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생물학적 결정주의, 관습적 도덕, 성적 도착에 대한 심리적 통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S/M은 반페미니즘적이지도 반여성적이지도 않다.

 

게일 루빈은 어떤 성애적 행위나 욕망이 본질적으로 즐길 만한 것이 되거나 아니면 예외 없이 불쾌한 것이 되는지는 전적으로 개별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믿었다. 성행위를 성적 가치의 위계질서에 따라 평가하는 종교적, 정신의학적, 페미니즘적, 사회주의적 도덕은 가장 비민주적이다. 게일 루빈에게 성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었다면 다음의 언급일 것이다. “민주적인 도덕이라면 파트너를 대하는 방식, 상호 배려 수준, 강제력 유무, 제공하는 쾌락의 양과 질로써 성행위를 평가해야 한다. 성행위가 동성애냐 이성애냐, 둘이 하느냐 집단으로 하느냐, 속옷을 벗느냐 입느냐, 상업적이냐 비상업적이냐, 비디오를 쓰느냐 안 쓰느냐 따위가 윤리적인 고려 사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너드 사태 이후 게일 루빈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반포르노페미니즘 단체는 게일의 해외 강연들을 무산시킬 정도로 힘이 막강해졌고 2010년 현재 연방정부와 국제적인 비정부기구의 유력 인사들이 되어있다. 이제 그들은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 성매매를 타도 대상으로 삼고 국제법과 정책을 성문화하고자 한다.

 

바너드 성 전쟁의 가장 큰 손실은 페미니스트들의 연대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보수 반동적인 성·젠더 의제에 맞서 함께 저항하면 좋았을 페미니스트들은 그 이후 계속 분열 중이다.

 

바너드 사태를 씁쓸하게 회고 한 후, 게일은 성을 사유하기가 갖는 이론적, 개념적 한계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트랜스젠더문제를 성애문제가 아니라 젠더 정체성의 문제로 다루지 못했던 점, 성매매 문제 그리고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좀 더 정밀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특히 청소년 섹슈얼리티와 관련해서 부모들의 히스테리와 공포를 문제삼는다. 사유없는 감정적 대응은 신중한 분석과 조사를 방해한다. 균형 잡힌 학술 연구보다는 선정적 저널리즘의 기승을 부추긴다. 더욱이 아동 보호의 명목은 수많은 사안을 보수적 어젠다에 묶어왔다. 1977년에 플로리다에서 게이 인권 조례 폐지를 위한 캠페인이 1994년 캘리포니아에서의 삼진 아웃법으로 회귀하듯 이어졌다. 이런 유의 법과 정책은 아동을 보호하기 보다는 보통 주민을 감금하고 탄압하는데 더 수시로 이용되었다.

 

게일 루빈에게 사유하는 것은 새로운 이론과 개념을 창안하는 데 골몰하는 작업과 등치되지는 않는다. 성의 사회적 구성주의를 받아들이고 베버의 사회이론을 차용하면서 그 이론들을 성에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고, 신중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서였다. 남겨진 그의 글들이 난해한 이론보다는 현실조사분석보고서 같은 꼴을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카타콤과 같은 글은 주먹성교 파티가 누구에 의해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에이즈 발견이후 어떻게 쇠퇴해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남겨졌는지를 서술한다. 이 낯선 성의 실천에 대한 구체적 묘사와 거기에 모이고 흩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 단박에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별다를 것 없고, 그럴 만하고, 이해되기 시작한다. 나아가 그들이 상관관계는 없지 않지만 뚜렷한 인과관계는 발견되지 않은 에이즈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토벌되었던 상황을 알게 된 후엔 부당하다는 감정도 갖게 된다.

 

일단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연대하여 뭔가를 도모할 가능성이 생긴다. 행동을 같이 하지 않더라도 반대 측에 서서 그들을 마녀사냥하는데는 적어도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성을 사유하기가 나온 지 25년이 지난 시점에도 게일 루빈은 사유하기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사유하기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당사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당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독단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게일 루빈은 아직 희망하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각각의 정체성들이 횡단하고, 복수적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함으로서 다수의 쟁점들이 그 복잡성을 품은 채로 융합할 수 있는 분석, 거기로 나아갈 때까지 사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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