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취투북]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 #2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2021-02-18 20: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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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국제 관계가 가장 골치 아팠던 시기는 언제일까? 현대를 논외로 한다면 아마도 10~12세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 한반도에 있었던 고려는 서쪽으로는 송, 북쪽으로는 거란, 동쪽으로는 일본과 접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고려와 북쪽으로 국경을 접한 여진은 시시때때로 부상을 꿈꾸고 있었다. (75쪽)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2000년을 코 앞에 두고는 '밀레니엄 버그'니 하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세기말 위기론, 종말론 따위는 다 헛소문에 불과했고 너무도 고요히 새천년을 맞았다. 뭔가 대단한 변화가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별 사건이 없어 심심했다고 할까.


시계추는 똑딱똑딱 매분 매초 똑같은 호흡으로 움직이지만, 역사의 발걸음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뚜벅뚜벅 제 걸음을 걷다가도 갑자기 요동치는 순간이 있다. 2020년이 바로 그 기점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방향도 속도도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디로 얼마만큼 빠르게 가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최근 <추월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책을 펼쳐보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광고에 쓰인 다음 표현을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한국은 아직도 약소국인가?' 선진국에 뒤쳐져 있다는 착각 이제는 추월의 시간이다!"


실제로 새해를 맞아 언론에서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이탈리아를 앞섰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경제 순위로 10위권 바깥을 맴돌다가 코로나 사태로 10위권 안쪽으로 진입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 경제학을 공부하는 친구와 이 내용을 두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제 앞에는 중국, 미국, 인도 같은 커다란 나라 혹은 영/프/독/일과 같은 전통 강국만 남았다고. '추월의 시대'를 운운하는 저자들은 과연 누구를 얼마만큼 추월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과거 역사를 읽으면서는 혀를 끌끌 차는 일이 많았다. 뭔가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행보 대신 주변국에 휘둘리는 일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청'이라는 오랑캐 국가의 등장이 그랬다. 한쪽에서는 명-청의 관계에서 실리적인 중립외교가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광해군이겠다. 또 한쪽에서는 삼전도의 굴욕을 이야기하며 삼궤구고두를 이야기하며 치욕의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남한산성>과 같은 소설이 그 서사를 담고 있다.


당대 사람보다 후대 사람이 시대를 더 잘 이해하곤 한다. 어쨌든 후대 사람은 시대의 변화상에서 사건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어리석은 행동도 그들에게는 나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현실적 선택'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제 스스로의 역량을 제대로 가늠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은 송, 요, 원, 명, 청 등을 상대했다. 책은 여러 선택을 보여준다. 예를 고려는 요의 연호를 쓰며 요를 천자의 나라로 인정하기도 하고, 송의 연호를 사용하여 양국 관계를 저울질 하기도 했다. 한편 충선왕은 원 황실의 외척으로 자리매김하여 안정을 꾀하였으며, 공민왕은 원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고려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조선은 명의 사신을 접대하며 외교적 실리를 찾기도 했고, 청이라는 오랑캐 국가를 두고 갈등하기도 하나 금수와도 같은 서양 오랑캐의 등장으로 상황이 역전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조공-책봉 시스템'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그저 하나의 '현실'이었다. 왜 독립국가로서 당당하지 못했느냐는 평가는 후대인의 야박한 잣대를 과거 사람에게 들이대는 것인 동시에 당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흐려버린다.


'사대'에 대한 이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선은 명을 사대事大 했으며 동시에 사소事小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국제 관계를 읽는 안목을 넓혀준다. '사대'란 커다란 나라와 작은 나라라는 현실적인 판단에서 출발한 나름의 선택이었다. 또한 사소를 요구했다는 것은 일방적이고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선은 고려의 교훈을 바탕으로 명과의 관계를 정립해 나갔다. 그 방법은 바로 '명을 지성으로 사대하면서, 사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 이른바 조공-책봉 관계였지만, 거듭 예를 말하면서 명도 조선을 예로써 대해줄 것을 요구했다. (142쪽)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인사로 조금 시끄러웠다. 어떤 사람은 일본어를 빼놓았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중국어로 인사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반일친중'이라는 관점이 여기에 작동하고 있어 보인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손가락질하기도 하는데, 한중관계를 논하고 있으니 친중 논란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자.


현 정부를 두고 친중이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친중=반미'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중국 혐오의 관점에서 이를 고깝게 보는 입장이 있기도 하다. 현 정부의 행보를 친중이냐 아니냐를 두고 따지기 전에, 더 문제는 정작 질문되어야 할 것이 삭제되고 있다는 게 아닐까. 


과거 역사를 읽으며 혀를 끌끌 찼던 그 태도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인 선택, 실리적인 선택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무엇이 좋은 것이냐 하는 질문은 호오를 따지는 것이기도 하고,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기도 하다. 호오에만 얽매여 있다면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서양인을 보고 금수와도 같다고 무시했던 이들과 과연 오늘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려가 요와 송을 별도의 천하로 인식하고, 나아가 고려 자신도 또 다른 천하를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었다. 어찌 하늘이 하나만 있겠는가. 이런 상상력은 보다 유연한 관점에서 역사를 읽고, 시대를 보는 눈을 선물해준다. 친중이니 친미니 하는 식의 접근이 고리타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11세기 초중엽에 이르면 세상의 중심에는 고려라는 천자국이 있고, 그 주변에 여진, 흥요국, 탐라국 등의 제후국이 있으며, 고려의 군주인 '해동천자'가 그들을 통치한다는 관념이 공유됐던 것이다. … 즉 10~12세기는 요와 송이라는 거대한 천하가 존재하면서도 여러 개의 소천하가 공존하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92~93쪽)


혹자는 '추월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나. 역전과 추월, 몰락과 쇠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온통 세상이 들썩이니 어리둥절 어지러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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