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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푸코와 성] 게일 루빈 선집 <일탈> 14장 발제2019-09-05 13: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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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루빈 선집 《일탈》 14장 퀴어 연구의 지질학: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데자뷔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친족은 반감과 증오의 대상이다. 게일 루빈도 <여성 거래>에서 여성을 거래하면서 억압을 종속시키는 친족의 구조를 인류학의 입장으로 잘 분석해 보여준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게일 루빈에게 친족의 문제가 단순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학자에게는 여전히 친족과 공동체의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인 게일 루빈은 이성애자들처럼 부계 혈통의 친족을 형성할 수 없는 동성애 공동체에 대한 인류학적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혈연 집단을 형성할 수 없고, 기존의 혈연관계와도 단절되어야 하는 동성애자들에게 공동체의 형성은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연구자로서 게일 루빈은 문헌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성애 연구를 하면서 언제나 자료가 부족하거나 접근하기 힘들어 연구에 곤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와 관련된 자료들은 늘 희귀하거나, 접근이 차단되어 있거나, 아예 존재가 은폐되어 있었다. 동성애와 관련된 역사와 기억, 지식은 관례화되지 않은 하위문화의 영역에 속해있었다. 이 역사와 기억, 지식에서 단절된 이들은 근대에 와서 사후적으로 구성된 ‘동성애’라는 개념으로 동성애를 바로볼 수밖에 없었다. 푸코와 게일 루빈은 어떤 개념이 만들어질 때는 대체로 금기와 처벌을 위해서일 때가 많음을 강조한다. ‘동성애’라는 개념은 동성애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금지하고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 개념으로 다시 구성된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 개인의 기억에 대한 기록, 실제 살았던 인간의 역사, 이 기억과 역사가 지식으로 조직되는 과정. 이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지 않다. 아주 인위적인 방식으로, 어떤 힘의 관계들에 의하여, 명백하게 누군가의 목적과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다. 게일 루빈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게이 해방그룹의 연구가 ‘성과학’ 자료들에 많이 기대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동성애를 병으로 규정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들에게서, 게이 해방그룹의 연구가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금지하기 위해 ‘동성애’를 정의한 이들이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겠다. 같은 자료가 어떻게 쓰일지는 이용하는 이들의 재량에 따른 문제라는 관점은 푸코와 게일 루빈에게 있어, 지식을 바라보는 남다른 관점이다.

 

동성애 자료가 갈수록 희귀해지고 접근이 차단되는 문제에 대해 게일 루빈이 던지는 해결책 역시 비슷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들이 한다면 우리도 하자. 동성애 자료의 관례화를 제안하는 게일 루빈은 퀴어가 가진 자유분방함이 관료제 속에서 매력을 잃을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니다. 기억에는 기억으로, 역사에는 역사로, 지식에는 지식으로 대적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상황이 암담할 수 있겠지만, 기억과 역사와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기꺼이 다시 시작하도록 종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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