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잡담] 잡담을 위한 짧은 메모2021-02-04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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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밤의 채팅에서는 리원량 추모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리원량 추모 활동을 제안했는데, 저역 8시 55분부터 9시까지 불을 끄고 묵념한 뒤, 9시부터 9시 5분까지는 빛을 내는 거면 뭐든 손에 들고 창밖을 비추면서 다 같이 호루라기를 불자는 것이었다.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은 평소 빛이 드문드문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9시가 되니, 몇몇 건물 귀퉁이에서 미약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었다. 그건 봉쇄를 뚫는 빛이었다. 
(140쪽)


2월 9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나친 식당 입구에 생선 열 몇 마리가 걸려 볕을 쬐고 있었고, 벽에는 이런 글귀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우한, 하루하루가 다른 곳!" 하지만 지금의 우한은 하루하루가 똑같다. 길은 텅 비어 있고. 
(152쪽)


2월 10일

광둥에 사는 친구는 음식을 배달시켰더니 배달 영수증에 '안심 배달 카드'라는 게 한 장 붙어 있더란다. 그 카드에는 음식을 만든 사람 이름, 음식을 담은 사람 이름, 배송한 사람 이름, 체온, 그리고 양손 소독 여부가 기록되어 있었다고 했다. (156쪽)
이미 리원량에 관한 일부 정보가 사라졌다. 사회의 압력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검열한다. 어떤 사람들은 남도 검열하는데, 본인과는 상관도 없고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발언을 삭제하라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
(159쪽)


2월 11일

오늘은 날이 흐려서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우한시 코로나19방역통제지휘부에서 시 전체의 모든 거주지를 폐쇄 관리하기로 했다고 한밤중에 발표한 공지 사항을 보고 말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나가야만 했다. 폐쇄 관리라는 게 정말 시행되기 시작한 건지, 그리고 폐쇄 관리라는 게 도대체 뭔지 확인해야 했다. 
(166쪽)


2월 12일

어제 위챗 모멘트에 빗자루가 똑바로 선 영상을 올린 사람이 정말 많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어떤 사람이 "나사(NASA)에서 오늘이 지구의 중격 각도가 완벽해져서 빗자루가 혼자서 똑바로 설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밝혔다."는 소식을 전한 까닭이었다. 한 친구는 처음에는 자기도 그 얘기가 좀 의심스러웠지만 시험 삼아 해 봤더니 정말 되더라면서, 너무 신기했다고 했다.*

*실제 이날 #BroomChallenge가 온라인을 휩쓸었으나, 나사 측에서는 이를 뜬소문이라고 밝혔고, 여러 과학자가 나서서 빗자루 세우기는 연중 어느 때나 가능하다고 밝힘으로써 빗자루 세우기 도전은 인터넷을 휩쓴 가짜 뉴스로 판명되었다. (옮긴이 주)
(175쪽)


2월 14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끊임없이 고갈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심리적 공황은 점점 커져 가고 있다. (186쪽)
요즘 다들 집에만 박혀 있다 보니 오타쿠 문화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집에 박혀 있는 수 많은 집순이, 집돌이들이 자기들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 '페이페이(肥肥)'이다. …
나는 이들의 삶의 방식에 사회에 대한 일종의 소극적 저항이 담겨 있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계층이 고착화되면서 기회를 차단당한 탓에, 젊은이들이 실패를 경험조차 해 볼 수도 없게 되었고, 실패를 딛고 일어나 자기를 성장시킬 공간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노력해 봤자 쓸데 없다'는 절망이 이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187~188쪽)




1년 전, 2월은 코로나19의 공포감이 실제로 다가왔던 때였다.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고, 이웃 중국의 상황을 보니 심각하게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세계적 사건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이웃집에 난 불이 옮겨 붙지 않기를, 불씨가 날아오더라도 큰 불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을 뿐. 책을 읽으며 1년 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흔적을 찾아보니 귀를 세우고 뉴스를 듣고 있었다. 국내 뉴스에 만족하지 못해 웨이보나 바이두에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다.


작가의 이 책은 중국과 한국이 과연 얼마나 다른지를 되묻게 만든다. 가정에서의 폭력, 교사로부터의 차별, 시험에 대한 압박, 사회적 불평등과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오는 무기력...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가정폭력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건 우리나 그들이나 큰 차이가 없다. 우한이라는 도시를 지우고 읽으면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우한을 꼭 가보겠다고 다짐한다. 코로나의 흔적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직접 사람을 만나야, 얼굴을 보고 표정을 읽어야 무언가를 실감할 수 있기 마련이다. 어쨌든 중국 역시 세계 여느 나라처럼 상처를 입었고, 다시 고비를 앞두고 있다. 만 1년이 되고, 다시 설 연휴를 맞아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나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생각이다. 예년 보다야 이동 인구가 줄겠지만, 그래도 그 많은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고향을 찾아가고 싶지 않다. 명절마다 집에 내려갔다 오면 몸이 쑤시고 아팠다. 가능한 편한 방법을 찾아볼 요량이다. 얼마나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책을 읽으며 사람들과 중국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중국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 나라와 그 역사가 궁금해서 이제껏 공부하고 있다. 중국을 통해 보는 중국인의 모습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국가 차원의 중국인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이다. 행동하는 소수가 있으나 이들의 활동은 드러나지도 않고 주목받지도 않는다. 내부의 모순, 내부의 갈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물론 저자는 자국의 검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정치적 참여의 통로가 제한적인 사회를 사는 그에게 큰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검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며 소박한, 혹은 소심한 저항을 지속한다. 불평도 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도 한다. 봉쇄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봉쇄를 확인하는 것, 정말 그런지 스스로 부딪혀보고 직접 물어보는 일. 그와 같은 이들이 결코 적지 않으니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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