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담론과 질서 :: 세번째 강의 발제2019-03-17 00: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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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담론과 진실 세 번째 강의(1983.11.7.) 라라

탈튀비오스(트로이 전쟁동안에 아가멤논의 전령) :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고 노예는 아니지만 자주적이지 못하며 자기보다 더 힘있는 사람에게 순종하는자. 진실을 말할 능력이 없으며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자. 군주제를 찬양하고 민주정을 비판

디오메데스(가장 유명한 그리스 영웅) : 화술과 지혜로 유명한 전사. 독자적인 사람. 자신의 생각을 소신있게 말함. 정치적이기 보다는 종교적 동기가 강함.


이 두 신화적 인물과 다른 두 연사가 등장하나 이름은 알 수 없다.

.탈튀비오스와 대칭을 이루는 나쁜 웅변술사인 전자 : 해로운 연사. 입은 항상 열려있어서 입을 다물 수 없는 사람(아튀로그로소스). 혀는 있지만 문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말하는 경향이 있음.=>파레시아의 부정적 버전.

부정적 파레시아의 특징

1. 말할 것과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없는 분별력없는 자.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을 구분할 수 없고 경솔한 방식으로 타자의 문제에 개입. 자신의 일과 타인의 일을 구분하지 못함

2. 진실을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여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이성, 합리적 담론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음 => 철학적 중요성이 없는 솔직함은 파레시아가 아니라 아튀로스토미아

아튀로글로소스의 특징

1.뻔뻔함의 측면에서만 강건하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신체적 강건함을 나타내며 이성이나 진실을 말할 역량은 부족

2.무력이나 부정행위를 통해 억지로 도시국가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자

3.토뤼보스를 신뢰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소란스러운 말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정합적 담론의 합리적 의미가 아니라 청중들에게 감동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능력

4.자신의 무지한 직설, 즉 아마테스 파레시아를 신뢰한다는 것. 형식적인 시민의 권리에 불과하여 유용하며 정치적으로 긍정적인 파레시아가 되기 어려움.

=> 마테시스(배움과 지식)가 있어야 긍정적인 파레시아로 훌륭한 효과를 나타냄.

==>마테시스는 어떤 지주가 자신의 삶을 통해 획득하는 경험으로 단순한 토뤼브스(큰 목소리, 고함, 아우성, 야단법석에 의해 발생한 소음을 의미)에 그치지 않고 마테시스를 갖출 수 있다.

 

.디오메데스(가장 유명한 그리스 영웅,호메로스의 세계, 영웅의 세계)와 대칭을 네 번째 연사(아테나이 정치계, 아르고스 정치계)의 특징

1.신체적으로 위풍당당하지 못하고 존재감이 없음

2. 용감한 남자

3. 아고라(정치적 토론장소)에 자주 가지 않는 사람=>즉 긍정적 파레시아스트는 아고라에서 일생을 보내는 직업정치인이 아니고 생계수단이 없는 가난한 사람도 아니기에 중요한 순간, 중요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참여하는 자이다.

4. 손수 일하는 자, 즉 자기 땅을 손수 일구는 자. 지주이며 일하는 지주임.=>아우투르고스의 두 가지 정치적 능력=[도시국가를 위해 기꺼이 싸우고 탁월한 능력]+[언어를 사용할 능력과 도시국가에 적절한 조언을 할 능력이 있는자]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해야할 바와 관련해 결정을 내리는 일에 익숙한 자로 훌륭한 전사이자 지도자입니다.

아테나이에서 민주파는 늘 전쟁에 찬동했고 귀족파는 평화에 찬동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민주파는 경제적인 이유로 전쟁에 찬동했다. 일반적으로 상인과 아테나이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민주파를 지지했다. 귀족파는 스파르타와 평화적 관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는 파레시아의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하다.

<<이온>>에서도 파레시아가 긍적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소개 : 파레시아는 이온과 같은 사람이 향유하고자 했던 일종의 자유나 특권. 신이 진실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크레우사는 신을 비판하고 자기자신을 비판, 고백한다.

=>인간이 담당하는 파레시아스트 역할 내부에 위치하고 있고 긍정적 의미의 파레시아와 부정적 파레시아 간의 단절이 일어남 => 누가 파레시아를 사용할 자격을 갖느냐와 파레시아와 마테시스가 맺는 관계와 관련이 있다. ==>파레시아를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솔직성, 순수한 용기와는 다른 진실과 관계를 맺는다. 이 진실의 관계는 교육을 통해 개인적 수련을 통해 확립되어야 한다.

파레시아의 위기는 진실의 문제이다.

각자가 권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한을 평등하게 갖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누가 진실을 말할 능력이 있는지가 문제이다. 진실, 민주주의 그리고 교육, 바로 이것들이 파레시아 위기의 주요 특징이다. 민주정 그 자체로 어떤 사람이 진실을 말할 권리와 능력을 가져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다. 솔직하게 용기있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것으로는 진실을 폭로하는 파레시아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이 파레시아의 새로운 문제제기이다.

(신의 침묵뿐만 아니라 아테나이의) 진실, 발언행위, 자유, 권력, 그리고 정치제도 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문제제기가 이 시기에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념사와 사유사를 구분한다. 관념사는 한 관념을 그 탄생과 발전, 그 관념의 맥락이 되는 다른 관념들의 구축에 입각해 분석합니다. 사유사는 아무 문제 없이 수용되고 논쟁의 여지가 없던 경험의 장 또는 실천의 장이 토론과 논쟁을 발생시키고 새로운 반응을 야기하며 습관, 실천, 제도에 위기를 발생시키는 방식에 대한 분석이다. 사람들이 마음을 쓰는 방식, 아마도 광기, 범죄, 섹스, 자기 자신 혹은 진실을 돌보는 방식에 관한 역사입니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활용의 문제이다. 새로운 문제 제기이지 제도적 측면에서의 변화는 아닙니다. 어떤 사회적 영역 내에서 문제화가 전개되었는지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파레시아는 자질을 갖춘 자들이고 도시국가, , 진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진실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화는 없다. 파레시아에 대한 문제화는 평등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과 맺는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누가 사회적·정치적·제도적으로 파레시아를 행사하도록 허용받을 것이며 누군가 파레시아를 행사할 때 그가 진실을 말하리라 확신할 수 있는 조건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우선 파레시아를 행하는 자의 사회적 위상과 삶의 방식, 개인의 탁월함이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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