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SF 연대기] 진부한 두려움의 시작과 변화 2022-06-22 16: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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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진부한 두려움의 시작과 변화>

 

 

5장 냉전 소비지상주의, 사이버네틱스 : 1950년대

 

정치든 경제든 바깥은 전쟁인 와중에 혼자 방구석에서 만들어내는 세계이던 시절의 SF는 기이하고 거대했다.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감각의 퓨즈를 끈 상태에서 듣도 보도 못한 거침없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SF는 낯설었고 공격받았다. 내부에서도 확고하지 않은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었다. SF를 폄하할 수 있는 요소에는 상업성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소비로 시작해서 소비로 끝나는 세계가 곧 도래하리라는 사실을.

 

1950년대 들어 미국은 엄청난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정책적으로 육성된 중산층은 포드 자동차를 타고 잔디가 깔린 교외의 집으로 퇴근해 코카콜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문화의 모든 것이 거의 이때부터 태동했다. 이전 시대의 각종 박람회에서 미래세계는 어떨 것이라 꿈꾸던 것들이 하나씩 실현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SF는 이전 시대에 지탄받던 상업성을 바탕으로 성장하며 정작 그 자본주의적 문화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의 동력으로 흡수한다. 이전 SF에서 보여준 과학에 대한 두려움은 좀 더 근원적 상상력을 필요로 했다면 50년대 SF에서 보여주는 두려움은 현재의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다. 필립 K. 딕의 세일즈 설득이나 프레더릭 폴과 C.M.콘블루스의 우주상인같은 작품들은 인간은 평생 소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으며 이는 산업과 자본의 거대한 논리 속에서 인간이 부속에 불과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비록 70년 후에도 그 굴레는 깨지지 않지만 50년대부터 이미 SF는 위험성을 꾸준히 경고한다.

 

아포칼립스 소설들의 발달은 전복을 통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에서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뱀파이어 세상 속에서 혼자 남은 인류를 담당하며 영웅적으로 투쟁한다. 하지만 역전된 세상에서 지난 세대의 생존자로 사는 것은 새로운 세대의 재앙임을 깨닫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는 생존으로 주체적 인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타자성을 깨닫고 인정한 선구자가 된다. 하지만 50년 후의 헐리우드는 네빌을 무덤에서 파내 인류를 존속시키는 영웅으로 재탄생시키고 영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그를 놔줄 수 없지만 전복은 인정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힘이다.

 

50년대, SF는 팬덤을 중심으로 소통하던 폐쇄성을 벗어나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장르로 변화했다. 이전의 딱딱한 SF는 그 강직도(순수과학의 문학화)에 의해 평가받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 속 인간이지 과학 그 자체가 아님이 드러났다. 그리고 소프트 SF를 통해 인간들의 모습을 그릴수록 가부장적 과학과 식민지적 위계성이 폭로됐다. 주디스 메릴이나 앤 워런 그리피스, 캐서린 맥린 등은 미국식 가족주의의 도구로 빠르게 전락하던 여성을 거부하고 젠더적 전복을 꾀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여성 외의 타자들이나 인종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으나 시대적 한계로 인해 그런 작품들은 착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화성에 지어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에 대한 지속적 조명은 SF의 원동력이 됐다. 한쪽에서는 지배적이고 빛나는 미국에 대한 신화가 공고해지는 한편 민주주의적 독재에 순응하지 않는 타자들에게 SF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6장 새로운 현실, 새로운 소설 : 1960년대와 1970년대

 

50년대의 과학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방향이었다면 60년대 이후 과학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전쟁과 히피가 공존하는 아사리판 속에서 유래 없는 다양성이 탄생했고 카운터컬쳐가 직접 전통적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꾸준히 자본주의와 인간세계를 고발하던 내공을 바탕으로 SF는 카운터컬쳐로 편입된다. SF학술지가 편찬되고 각종 학회와 협회, SF문학상들이 줄을 이어 생긴 것은 확실히 변모한 SF의 권위를 보여준다.

 

이 시기 메타픽션 SF는 기존의 서사형태를 뛰어넘은 진정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과학과 우주, 새로운 존재가 인간 이야기의 배경으로 활용되던 것이 이전의 SF라면 메타픽션 SF에 이르러 언어 자체가 변화했다. 이런 모호함은 SF의 정체성을 흔든다. 과학적 고증 없이 혼란하고 허구적인 세계의 창조도 SF로 봐야하는지의 논쟁은 SF를 위축시키기 보단 이제 SF가 동시대 문학의 역할을 수용해야 한다고 팽창시켰다. 만족스럽고 승리에 찬 결말에서 벗어나 세계적 혼돈과 인간 내면에 집중한 SF들이 생산됐고 어떤 방식으로든 기술, 언어, 남성성, 제국주의, 자본 등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됐다.

 

사이키델릭하고 아방가르드한 SF는 시대와 맞아떨어지며 주류 독자들을 흡수했다. 성자유주의와 반전을 외치던 대중은 낯선 땅 이방인속 주발 하쇼와 같은 반지성주의 선동가에 매료됐다. 반면에 과 같이 거대하고 완전한 세계관을 구축한 작품이 하드 SF독자들을 만족시키기도 했다.

 

텔레비전 시대를 맞아 SF는 흔들릴 수 없는 번영을 맛본다. <닥터 후>, <환상특급>, <스타트랙>등의 생명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인쇄물 시대의 팬덤과는 결별하고 새로운 컬트적 팬덤과 카운터컬쳐 관중을 모두 사로잡으며 SF는 이제 도전정신을 보여줄 필요 없이 사이키델릭한 화면은 유지하되 관객들에게 영웅 신화를 무한정 제공하는 가족오락이 됐다. 제국주의를 비판하던 SF가 대중들에게 제국주의적 승리감을 안기기도 하고 성차별, 인종차별적 클리셰 생산에 시동을 걸었다. 재밌는 것은 동시대의 인쇄 SF는 뉴웨이브 작가들이 꾸준히 혁신을 꿈꾸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텔레비전 시리즈를 뛰어넘어 이때 시작된 SF 블록버스터 영화는 인간과 사회의 고찰이라는 인쇄물의 목적을 망각하고 SF를 훌륭히 상품화했다. 지금 우리가 모여서 SF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상업적 성공에서 얻은 SF의 지위 덕분이다.

 

SF에 대한 기호는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고 권위에 도전한다는 자부심을 수반한다. 폐쇄적이었던 지난 세대의 팬덤은 그런 자부심을 대중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60-70년대를 거치며 사회는 체제거부를 힙한 트렌드로 받아들였고 SF는 학술적 위상과 상업적 성공을 필두로 권위가 생겨버렸다. 역전된 관계 속에서 SF는 말 그대로 대중문화가 돼버린다. 모험과 진보를 말한다 한들 내재된 보수성을 답습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SF. 그럼에도 이시기에 보여준 뉴웨이브는 분명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시켰고 우주나 다른 차원이 어딘가 존재하는 옆 동네로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대중을 만들었다. 이것은 이후 찾아올 블록버스터형 SF 수확기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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