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 성의 역사4 첫부분 발제 ('아프로디지아'와 자기지배의 변형)2020-01-02 01: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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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성의 역사 4권 1장 1.창조, 생식 발제.hwp (31KB)

《성의 역사 4: 육체의 고백》 제1장 새로운 경험의 출현 1. 창조, 생식

 

고대 그리스 철학의 ‘아프로디지아’ 개념은 철학자들과 이교도들에게 전해지다가 2세기 교부들의 교리에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지금 우리가 ‘성’이나 ‘육체’라고 부르는 개념이 없었다. ‘아프로디지아’는 실제의 성행위나 관계, 감각, 욕망, 정념, 규범 등 우리가 성과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푸코는 이 책의 첫 장에서 ‘아프로디지아’가 기독교 교리와 연결되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눈여겨본다.

 

초기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욕망의 제어, 재혼 거부, 쾌락에 대한 불신’은 스토아 철학의 규범들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영향을 받은 아테나고라스는 그리스인들의 이상적 도덕성을 실천하기 위해 영생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과의 합일에 대한 욕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2세기 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기독교 사상에 수용된 아프로디지아에 대해 풍부한 기록을 남겼다. 《교사》의 일부와 두 번째, 세 번째 《강론집》이 여기에 해당한다. 푸코는 이 중 《교사》라는 텍스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사》는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치는 내용으로 구성된 개인 훈련서이자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도록 하는 안내서이다. 《교사》 안에 담긴 가르침은 기독교인의 보편적 율법으로 여겨지지만, 여기에는 스토아주의적 용어와 견해들이 많이 담겨있다. 스토아주의에서 올바른 행동과 이성으로 이해되던 것이, 기독교에서는 구원과 영생에 대한 믿음이 된다. 기독교의 로고스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과의 결합을 통해 영혼을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

 

《교사》 2권 10장의 독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예비적 고찰이 필요하다.

1. 클레멘스는 스토아주의자들의 규범을 자연과 인간이성과 하느님의 말씀으로 변화시켰다.

2. 책의 구성이 ‘자연/이성/천국(하느님)’으로 3등분되는 것은 상승의 흐름에 따른 것이며, 성관계의 관리술도 이런 도정에서 결정된다.

3. 전통적으로 대립되는 문제였던 아프로디지아와 결혼이라는 주제가 뒤섞여있다. 성적 행동의 규범을 지혜나 개인의 건강이 아닌, 결혼생활에 관한 규범으로 보는 태도가 나타난다. ‘아프로디지아’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이제 성관계는 생식을 위한 결합으로 이해된다. 부부의 성관계가 문제시되며, 그리스 철학과 종교적 개념(자연/로고스/구원)이 통합된다.

 

클레멘스 역시 성관계의 목적을 생식에 놓는다. 다만 생식의 결과인 자손의 생산을 보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다. 율법에 따른 복종으로써 생식은 하느님과 ‘공조’하는 일이며, 인간을 창조하는 일이다. 가치는 성행위 자체에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생식에 부여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손을 낳기 위한 성관계는 하느님을 말씀인 로고스이자 이성을 따라야 한다. 클레멘스는 성관계의 목표와 목적의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동물적인 자연/ 이성적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 천지창조 그리고 창조주와의 관계’라는 3가지 측면의 논리를 발전시킨다.

 

1. 클레멘스는 동물에게서 부정적 교훈을 이끌어내어 생식과 관련 없는 과잉의 문제나 생식능력의 과도함을 비난한다. 교훈을 이끌어내는 클레멘스의 방식은 그리스의 박물학자나 철학자들에게서 차용한 방식이며, 고찰의 근거 역시 그리스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프로디지아의 근거를 자연에서 찾으며 사회적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던 고대 그리스인들과 달리, 클레멘스는 인간의 사회적 존재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시켜버린다. 클레멘스의 텍스트에서 자연의 생물들은 공통의 외연적 원칙을 가진다고 폭력적으로 규정되며, 그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되는 동물들에 대한 단죄가 정당화된다.

 

2.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을 자연과 연결시키려던 고대 그리스의 지혜는 클레멘스의 텍스트에서 뒤섞여버린다. 신체의 열등함과 영혼의 우월함이라는 전제 하에, ‘절제’는 신체에 대한 영혼의 지배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육체의 욕구에 대한 이성의 지배가 조심성의 문제와 관련되면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결혼-성관계-임신’의 규범이 반복된다. ‘자기에 대한 지배’의 문제 역시 자기 신체의 균형과 질서의 문제가 아닌, 하느님과 협력하는 계기에서 조심성을 지키는 문제이다. 여기서 성관계의 카이로스는 인간 신체의 문제가 아닌 육체의 움직임에 대한 ‘관리술’이다.

 

3. 성관계의 금지사항에 대한 고대 그리스 철학의 격언들이 반복되는데, 중요한 점은 금지를 어겼을 때 나타나는 죄의 양상이다. 양심에 의한 사적인 죄가 문제시되며, 절제는 내면의 빛인 양심과 연결된다. 육체는 로고스가 거주하는 곳이다. 절제가 육체를 하느님의 사원으로 만든다면, 타락은 죽음으로 이끈다. 클레멘스는 이후의 텍스트에서 수도권 생활을 암시하며 욕망의 포기까지 언급하지만, 《교사》에서는 아직 욕망에 패배하지 않으려는 의지에 주목한다. 클레멘스는 카이로스와 ‘아프로디지아’에 대한 패배를 대립시킨다. 절제를 일종의 관리술로 보는 태도가 남아있는 것이다. 이후에 더 강경한 태도를 드러내는 《강론집》 3권에서도 죄의 원인은 성관계 자체가 아닌, 카이로스의 문제로 표현된다.

 

천지창조의 권능과 관련되는 인간의 생식(생성)은 여전히 신성하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피-로고스를 통해 인간의 정액과 우유로 변하여 인간을 창조한다. 클레멘스는 피-정액-우유의 순환이 생식행위를 통해 로고스와 함께 우리를 하느님과 친자관계로 만들어준다는 결론으로 《교사》를 마무리한다. 클레멘스의 텍스트는 스토아주의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유사하면서도, ‘아프로디지아’와 ‘자기지배’의 문제에 있어서는 명확한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이후에 나타나는 아우구스티누스와도 큰 차이가 있다.

 

푸코가 클레멘스의 텍스트를 자세히 분석하면서 내리는 결론은 기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애초에 《성의 역사》 1권의 서두에서 제기된 문제는 ‘과연 권력이 억압의 방식으로 작동하는가’였다. 푸코는 서구 사회에 존재한다는 성 억압의 주범이 기독교 도덕이라는 통설에 과감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서구 사회에 성 억압의 역사가 아닌, ‘자기지배 윤리’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가설을 세우고 《성의 역사》 1, 2, 3권을 통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이제 4권에 이르러 기독교 교리와 철학을 재해석하는 작업이 시작될 참이다. 애석하게도 기독교 교리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의 ‘아프로디지아’ 개념은 사라지고, ‘자기지배 윤리’는 변형을 겪는다. 대신에 기독교는 육체와의 관계를 깨닫고 발견한다. 푸코에게 기독교는 억압적 성규범이 아니라, 육체에 대한 하나의 경험방식이었다. 개인의 테크놀로지가 형성되는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에 대한 푸코의 추적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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