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아나키즘] 국가 밖의 역사에 대하여 (농경의 배신 서론, 1장 발제)2020-03-10 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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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 배신 서론, 1장 길들이기: , 식물, 동물, 그리고우리

 

바이러스가 한창인 시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무차별 전파는 인구 천만이 넘는다는 중국의 도시 우한에서 시작되었다고 짐작된다. 사태가 악화되자 정부는 두 차례 전세기를 띄워 우한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국내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과정을 돕고 우한에 남은 우한 한인회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소감과 인사를 전했다. “교민 철수에 애써 주신 분들을 보면서 국가를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국가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한 한인회장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국가를 느꼈을까? 국내의 코로나19 확산이 더욱 심각해진 지금 사람들은 국가에 끊임없이 대책을 요구하고, 국가 역시 부산하게 움직이며 그 요구에 응답하려 한다. 국가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도착하는 재난문자메시지. 확진자의 성별과 나이, 구체적인 동선의 공개. 각종 모임과 예배를 금지하라는 경고. 마스크 사용기준과 사용법에 대한 여러 권고들. 마스크 구입 제한 조치까지. 공공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는 지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국가의 존속 이유가 공공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믿게 될 정도이다. 국가의 수많은 활동과 선전은 선진의료체계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사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라고 종용한다. 집권여당으로서 현 정부는 다가올 총선에 대비하여 자신들에 대한 신뢰감 쌓기에 분주하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와 국가가 언제나 무능하거나 무용하지는 않다. 국가는 그 안에 소속된 개인들의 역량을 결집한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질병관리본부의 지휘 아래서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한 전술을 신속하고 일관되게 펼치고 있다. 개인들의 역량이 어느 순간 그들이 소속된 조직이나 사회의 역량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개인보다는 조직이나 사회 전체가 해내는 역할이 크기에 더 쉽게 거기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우한 교민들의 입국을 도운 것은 국가인가? 그들이 감사해야 할 대상이 국가인가? 이런 일이 닥친 후에 비로소 국가를 느꼈다는 말은 그 전에는 국가를 느끼지 않고 살았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또 감각 속에서나 국가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다는 말은, 국가가 어느 정도는 허상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듯 보이는 요즘, 국가의 실체에 조금 더 다가가 보기 위해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했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C. 스콧은 농경의 시작과 정착생활, 국가의 발생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기본서사(표준서사)에 대항한다. 농경과 정착생활, 국가의 발생 사이에는 4000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저자는 이 격차에 주목하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질문한다. ‘왜 인류가 농경을 빨리 시작하지 않았는가대신 왜 위험부담이 큰 정착생활과 고된 농경을 굳이 선택했는가를 묻는다. 자명하게 여겨왔던 일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국가 역시 우리에게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축적된 고고학적 증거들 앞에서 정착과 농경, 국가에 대한 표준서사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2) 자신의 주장이 실증적 자료를 통해 뒷받침될 수 있음 역시 확신한다. 서론에서 저자는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등장하는 유명한 경구를 인용한다.(27)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개를 편다지식(지혜)은 섣불리 앞날을 예측하기보다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을 살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은 짧은 시간 안에 인류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예측하지도 않고, 국가의 미래가 어떻게 되리라는 예단을 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먼 과거에 인류가 어떻게 국가에 소속되었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류가 수렵과 채집 생활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농경을 선택했다고 믿어왔다. 저자는 이런 서사에 반대하며, 농경과 정착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인류의 긴 역사에서 아주 짧은 기간(1% 미만)에만 존재했고, 사회계약을 통한 국가의 성립도 거의 없었다. 국가는 역사기록을 통해 문명 시혜자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저자는 국가를 통해 노예제와 강제노동, 가부장제의 역사를 본다. 국가는 분명히 어떤 조건 하에서 성립되고 확장되었을 뿐, 인류 역사의 필연적 결과물은 아니었다. 이 비국가의 역사, 국가 밖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문자로 기록되거나 돌에 새겨지지 않은 역사를 들추어야 한다. 왕조와 문자 위주로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풍부한 고고학적 자료들이 새로운 역사를 보여준다.

 

국가는 농경과 목축을 위해 부자유노동을 강제하고 곡물을 조세로 징발했다. 인류는 자신이 기르는 가축이나 식물과 함께 국가에 길들여졌고, 신분제 사회에서의 삶을 받아들였다. 밀집된 인구와 농경·목축은 질병이나 기근에 대한 위험부담을 강화했다. 초기의 국가들은 자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우리는 그 왕조 혹은 국가의 붕괴를 종종 슬픈 감정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그 감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한 억압적 사회질서가 파괴되어 작은 공동체들로 흩어진 사실을 기쁘게 바라볼 수는 없는가 묻는다. ‘문명은 일반적으로 국가보다 더 오래 계속된다. 그러니 문명과 국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한 별달리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작은 정치 단위보다 큰 정치 단위를 선호해서도 안 된다.’(57)

 

동물과 식물을 길들이는 데는 불의 힘이 컸다. 불은 조리를 통해 소화작용의 일부를 대체했다. 나아가 화식은 인류에게 유전적이고 생리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대규모 관개사업보다는 불의 힘이 자연의 경관을 더 많이 변형시켰다. 대규모 관개사업을 통해 농경과 정착이 자리잡고, 국가가 힘을 발휘했다고 믿기 쉽다. 늪지대의 초기 군집생활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정착과 농경은 별개의 사건이었으며, 농경의 시작이나 국가의 성립 역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습지에서 중요한 기술은 관개보다 배수였다. 초기의 소규모 군집이 관찰된 메소포타미아 지역 역시 당시에는 습지였다. 습지에는 수렵, 어로, 채집 등 다양한 생계그물이 존재했으며, 이는 단일한 정치적 권위의 등장을 막는 역할을 했다.(78) 먹이사슬에서 자원의 밀도와 다양성이 낮아질 때, 오히려 정착생활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80) 힘든 농경은 선택보다 노예노동 등 강제를 통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보관이 쉬운 특정곡물 역시 징세를 위해 선택되었다.(86) 잘못된 믿음의 밑바닥에는 초기 인류의 적응성에 대한 과소평가가 있다. 초기 인류는 적응성이 떨어져 수렵과 채집, 이동생활을 오래 감내했던 게 아니라 여러 형태의 경제활동을 병행하며 실험을 계속했다.(92)

 

왜 빨리 농경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대신 도대체 왜 힘든 농경을 시작했냐는 저자의 질문은 중요하다. 추측과 달리 정착생활은 식량안보의 약화를 초래했다. 하나의 생계전략에 불과했던 정착생활은 언젠가부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95) 농경을 문명의 중대한 도약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크게 잘못된 것은 농경민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수렵·채집민에 대한 묘사이다. 수렵·채집민은 충동에 따라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게으른 자들이 아니라 도구를 활용하며 수준 높은 협동과 조직을 유지하는 유연한 생활을 했다.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는데도 구태여 힘든 노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발견되는 것은, 농경의 강점이 아니라 농경이 강제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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