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게릴라 세미나 발제: 감염병과 방역으로 국가서사 만들기2022-01-19 23: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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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감염병과 방역으로 국가서사 만들기.pdf (660.5KB)

차이나 리터러시 - 게릴라 세미나 2022.01.19.

*발제문에 포함된 사진은 첨부파일의 PDF 원본을 참조 부탁드립니다.


감염병과 방역으로 국가 서사 만들기

에레혼

 

중국에서 지내면서 중국의 코로나 상황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은 (아마도) 중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택하는 모호하게 대답하기이다. 중국은 지역마다 편차가 크기에 자기가 사는 곳을 기준으로 다른 지역을 뭉뚱그려 이야기할 수 없다. 심지어 코로나처럼 실시간으로 정보가 갱신되는 이야깃거리라면 더더욱 함구하게 된다. 시안이나 톈진처럼, 봉쇄 등으로 이슈가 된 지역에 대해서는 소식을 접하기 쉽지만, 중국의 코로나 상황 전반을 쫓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얻고 있는 정보는 우리나라의 뉴스에서 보도하는 중국 코로나 동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게릴라 세미나는 반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코로나 원산국(?)에 있으면서도 이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지 않은 일에 대한 반성. 하지만 중국의 코로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워낙 많은 내용을 다뤄야 하기에, 그 중에서 두 가지만 꼽아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래 내용들은 2021년 중국의 신문 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각각의 기사는 2021년 중국 내 방역 상황을 대변한다.

 

1. “상하이 속도”: 행정력이 능사는 아니다

작년 하반기, 상하이를 뒤흔든 코로나 관련 이슈는 ‘확진자의 디즈니 방문’이었다. 사태의 전말은 이러하다. 상하이 인접 도시 항저우에 거주하는 확진자가 10 30일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1031일 저녁, 디즈니는 갑작스럽게 봉쇄되었다. 당시 디즈니랜드 안에 있는 사람은 3 5천명에 이른다. 다행히 이들 중에는 양성 반응자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인원(관람객 및 직원)을 핵산검사 하는 데에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인터넷에는 상하이 시 방역 당국의 일처리를 칭찬하는 기사가 즐비했다. 이럴 때 사용되는 말이 바로 “상하이 속도上海速度”이다. 아래 가져온 기사의 제목에도 상하이 속도 운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사 제목: 모든 이가 상하이 속도에 경악했다! 몇 만명을 두 시간만에 처리하다)

상하이는 코로나 방역에 있어 빠른 판단과 대처로 정평이 나 있다. 밀접접촉자라도 한 명 나오면 해당 지역을 봉쇄하고 핵산 검사를 시행한다. , 상하이 속도의 의미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방역 당국이 결정을 내리는 속도를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핵산 검사나 확진자 처리와 같은 의학적 문제에 결과를 내는 속도를 의미한다.

 


(2021 10 31일 상하이 디즈니 랜드의 임시 핵산검사소)

 

중국의 코로나 상황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많이 들어본 물음은 “중국의 코로나 관련 정보가 투명한가?”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상하이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상당히 투명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중국 내에서도 코로나가 심각하던 2020, 상하이 시정부는 거의 매일 코로나와 관련된 내용을 기자회견 형식으로 브리핑했다. 지금도 2020년만큼 잦은 횟수는 아니지만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혹은 코로나 관련 루머가 떠돌 때, 상하이 시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입장을 표명하거나 올바른 의학 정보를 제시한다. 이런 행보에 대해 상하이 시민들의 만족도 역시 높다. 상하이의 코로나 초동 대처 관련 기사에는 “역시 상하이 속도”, “상하이 속도 덕분에 안심했다” 같은 댓글들이 달린다.

중국 1선 도시(베이징, 상하이, 션전, 광저우 등의 대도시) 대부분의 방역 상황은 상하이와 유사할 것이다. 상하이 속도에 대한 칭찬 일색에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중국의 모든 도시가 상하이처럼 확진자 발생 시 빠른 초동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하이 등의 대도시와 2선 도시(샤먼, 하얼빈, 옌타이 등)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준 1선 도시’라고 불리는 정저우, 션양 등의 지역만 해도, 최근 코로나 확진자를 초기에 잡지 못해 애를 먹었던 케이스가 존재한다.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에서도 코로나 초동 대처에 대한 지역간 차이를 지적하는 글이 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중국의 한 농촌에서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기 위해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창을 들고 외부인을 통제하는 남성의 모습이 SNS상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해외에서는 중국의 후진적인 방역을 풍자하는 것으로 인용되기도 했다. 도시 지역에서는 여러 하이테크 및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안면인식 체온계, 스마트폰의 QR코드를 통한 동선 추적과 디지털 감시 등이 활용되었지만, 막상 농촌 지역에서는 마을로 들어오는 건을 물리적으로 막는 단순한 방법밖에는 없었다. 방역에서도 도농이원구조가 존재했던 것이다. _ 하남석, <중국의 코로나 19 대응과 정치사회적 함의>, 39.

설령 농촌에 대도시에 버금가는 방역 인력을 동원한다 하여도, 그 효력이 얼마나 미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인용문에서 언급한 도농간 기술력 차이 때문에 1선 도시의 방식이 농촌에서 유효하지 않을뿐더러, 봉쇄 방식이 농촌에 적용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농촌 지역은 아직 오미크론의 여파에서 자유로운 듯 보인다.

 


(1 17일 기준 중국 대륙 오미크론 확진자 분포)

 

위 신문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아직 오미크론은 동남부 연안의 주요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중국의 농촌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표적 학자인 원톄쥔은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안 역시 농촌에 있다고 주장한다.

신냉전 상황에서 중국은 전염병 예방 및 통제라는 시험에서 중국의 답안이 얼마나 좋았는지 관계없이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활로는 어디에 있을까? …… 중국은 현재 전략적 조정을 하고 있고, 집단지도 체제 속에서 종국에는 생태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 그렇다면 생태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향촌에 있다. 산과 물, 밭과 숲, 호수와 초원이 향촌에 있기 때문이다. 국가 생태화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과거 산업화 시대의 평면적인 자원 개발을 공간 자원의 입체적인 개발로 전환하는 것이다. _ 원톄쥔, <팬데믹 상황에서 글로벌화 위기와 중국방안>, 260-261.

향촌을 발전시켜 또 다른 내수 시장을 개발하자는 그의 주장은 추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톄쥔의 말대로 시각을 바꾸어 본다면 코로나 방역 상황을 전시 상황처럼 대하는 중국에게 농촌은 전투의 배후지인 셈이다.

대도시의 행정력이나 기술력을 바탕으로 타지역에 기준을 세우는 일은 적어도 중국에서는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없다. 여담이지만, 모 언론은 상하이 시정부의 디즈니 봉쇄 정책을 두고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미 확진자가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지 하루가 지난 상황에서 뒤늦게 핵산검사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각주구검’이다.” 창을 들고 외부인을 막던 중국 농촌의 풍경만을 촌극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듯하다.

 

2. “재난미학”: ‘코로나와의 전쟁’ 속에서 사라진 목소리들

202111 26, 상하이의 한 대학 캠퍼스가 통째로 봉쇄당하는 일이 생겼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때문은 아니었고,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가 해당 캠퍼스 랩실의 근무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학교측은 시간을 특정하여 해당 시간까지 캠퍼스에 머물렀던 인원들을 모두 소환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팬데믹 이후 중국 대학들에는 캠퍼스에 들어갈 때 전자 학생증을 태그해야 하는 규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정보를 조회하면 캠퍼스에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의 출입 시간을 파악할 수 있다.) 인원이 모두 모이고 해당 캠퍼스는 72시간의 봉쇄에 돌입했으며, 다행히 핵산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사람은 없었다. 이 사건은 상하이 지역방송에서 소소하게 다뤄졌지만 상하이 지역 대학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긍정적인 의미의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 의미의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72시간 캠퍼스에 머물러야 하니 침구나 먹거리가 문제가 되었다. 봉쇄되지 않은 캠퍼스의 같은 학교 학생들이 쓰지 않는 이불이나 매트리스를 기부하면서 잠자리가 해결되었고, 식당 인원들이 퇴근하지 않고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봉쇄된 곳의 음식을 책임졌다. 자발적으로 움직인 사람들이 모여서 기적을 만들었다며 감동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도 존재했다.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은 봉쇄가 일어난 첫 날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보도 자료에 대해 언급했다. 위에서 말한 도움의 손길을 화보처럼 찍어서 보도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었다.

 


(캠퍼스 봉쇄에 투입된 방역업무 종사자들의 사진을 담은 보도)

 

이러한 보도를 통해 비판받은 기자 혹은 학내 매체는 억울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팬데믹 이후 중국에서는 줄곧 이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당 수뇌부에서부터 시민들까지 방역에 종사하고 있음을 알리고, 그것이 숭고함을 강조하는 일은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부터 이어져왔다.

중국은 국민들에게 코로나 19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기 위해, 동시에 많은 공산당원들이 인민을 위해 열성적으로 방역활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민전쟁의 ‘영웅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리원량을 포함하여 방역 과정에서 사망한 14명의 의료인에게 4 2일에 ‘열사’ 칭호가 부여되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출산일을 앞두고 업무 복귀를 결심한 임신 9개월의 간호사, 유산 후 10일 만에 출근한 간호사, 우한 파견 직전에 삭발하는 란저우시 여자 간호사들, 거액의 돈을 익명으로 기부한 사업가 등, ‘영웅 만들기’를 위해 주요 언론사가 서로 경쟁하면서 보도하는 과정에서 허위 가장 보도도 섞여 있었다. _ 조영남, <중국은 코로나 19에 어떻게 대응했나?>, 97.

코로나 사태 동안 미디어의 여성(특히 일선의 여성 의사 및 간호사)에 대한 보도는 젠더적 차이와 개성적 특징을 없애는 경향을 보이며 일종의 성별이 없는 데다가 무아적인 ‘초인’ 역할을 만들어냈다. “여간호사, 후베이성을 지원하기 위해 식물인간 남편을 놔두고 의연히 일선으로 달려갔다”, “우한의 ‘90년대생’ 여간호사, 유산 10일 만에 일선으로 복귀했다”, “간쑤성 여성아동보건원, 후베이성 지원팀을 위해 집단 삭발했다” 등의 편향적 보도는 광범위한 논쟁을 가져왔다. 이 같은 미디어의 보도는 코로나 사태 동안 죽음과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공헌하고 희생하는 여성, 심지어 ‘비여성’적인 영웅주의적 이미지를 만듦으로써 방역 일선의 여성에 대해 ‘희생과 봉헌’의 완벽한 이미지를 고정한다. _쉬주주, <젠더 관점에서 본 공중보건 위기상황과 제도 최적화>, 315.

일부는 이러한 상황을 ‘재난미학’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벌어진 일을 포장하는 과정에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거되어 있다. 재난미학이 가미된 신문 보도를 두고 공산주의식 선전 방식 중 하나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 생성되는 재난미학의 부산물들은 전통적인 선전물과 궤를 달리하는듯 보인다. 단순히 언론이나 당이 선전작업에 앞장서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서서 재난에 대처하는 상황만을 숭고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지금의 사태도 언젠가는 ‘인민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던 사건’ 정도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까. 방역 전쟁에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의 최종 단계는 ‘코로나 종식 선포’이다. 오미크론 확산 직전까지만 해도, 시진핑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중국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말을 하는 시나리오는 아주 먼 미래의 일로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 봉쇄 위주의 “제로 코로나” 전략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기존의 방역 시스템을 바탕으로 2월 동계 올림픽을 마무리하고, 3월에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열려는 심산이었을 터.

그러나 오미크론이 중국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면서 이 모든 ‘큰 그림’ 또한 무위로 돌아갔다. 감성적 인식의 대상이 아닌 것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작업은 녹록치 않다. 그리고 결과물에 대해 수용자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는 일. 언젠가 중국은 방역 전쟁에도 재난미학적 의미 부여를 하는 데에 성공하겠지만, 그 결과물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할 것이다.

 

 
(2021 7,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홍수가 일어나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재가 일어난 첫날 정저우 고속철도 역에서는 어린이 교향악단이 음악을 연주하는 자원 봉사를 펼쳤다.)

 

3. 나가며: 이번에도 중국은 예외일 수 있을까

중국이 국경을 걸어 잠그고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중국은 전세계적 위기를 극복해 본 경험을 가진 나라이다. 사스나 조류 독감과 같은 감염병 사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지구에서 중국‘만’ 괜찮았던 상황이 몇 차례 있었다. 금융위기가 아시아를 휩쓸었던 20세기 후반,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이 휘청이던 시기에 중국은 동경의 대상처럼 부상했다. IMF 금융위기 때 중국 경제가 버텨 주었기에 아시아가 회복할 수 있었다는 평은 여러 국가의 정상들이 중국 지도부를 만나면 으레 건내는 말이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에는 어땠는가?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 사태가 신자유주의 멸망의 징조라며 중국식 통치 모델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중국 ‘덕분에’ 내지는 중국‘처럼’ 같은 표현을 입에 담지 않는다. 중국이 국경을 닫고 자국의 방역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 전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중국과 관련된 코로나 뉴스의 댓글창에는 ‘중국에게 피해보상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중국처럼 방역을 해야 한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도 없다. 확진자가 여럿 나오면 그 도시를 봉쇄해버리고, 직장에서 밀접접촉자가 나오면 해당 건물 상주 인원의 핵산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출입구를 폐쇄하는 정책. 이는 다른 국가에서 따라할 수 없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중국의 행보가 국제 사회에서 따돌림을 자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는 일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세계에서 “C-방역”을 칭송할 것은 물론이고, 중국은 (다른 선진국이 주춤하는 사이) 국제 무대에서 가장 강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은 중국의 국가적 염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기폭제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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