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영화비평] 여성영화 : 경계를 가로지르는 스크린 <머리말> 190316 발제2019-03-16 03: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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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 : 경계를 가로지르는 스크린 <머리말> 180316 발제

준민

 

책은 여성영화의 역사를 할리우드 장르 영화, 작가 영화, 트랜스내셔널 영화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책의머리말 여성영화 이론가들의 담론을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여성영화는 장르가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거의 모두 장르 영화이다. 장르가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어떤 감독이 기존에 있었던 장르와 다른 영화를 만들어낸다. 이후에 영화의 특징을 반복하는 영화들이 생겨난다. 영화들을 묶어서 하나의 장르로 명명한다. 그러나 여성영화는 기준이 모호하다. 여성이 만든 영화를 지칭하기도 하고, 여성에게 말을 거는 영화를 지칭하기도 한다. 여성영화는 관객, 감독들, 비평가들, 학계의 관심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복잡한 제도적 구성물이다. 1장에서도 나오듯이 할리우드의 여성감독들은 장르의 규범 안에서 영화를 만들 밖에 없었다. 그들이 만든 영화는 실패하기도 했지만, 고정되어 있던 기존의 장르를 흔들기도 했다. 따라서 여성영화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어떤 장르의 경계도 넘나들 있는 혼종적이고 규제되지 않는 장르이다.

 

로라 멀비: 부정 미학으로서의 대항 영화

글에서 나타난 멀비의 주장을 요약해보자. 멀비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영화의 탄생, 대항 영화의 탄생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녀는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와 고다르의 현학적 형식주의를 포함하면서 단절과 혁신의 역사를 지닌 아방가르드 영화를 대항영화 혹은 여성영화의 모델로 간주한다. 글을 읽은 영화감독들은그러지 말고 니가 한번 찍어 보든가.”라고 하겠지만, 저자는 멀비의 이런 주장이 2세대 여성주의 맥락에서 등장한 크리스테바의 부정 미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멀비의 이론은 시각적, 서사적 쾌락에 대한 부정을 여성주의 미학의 핵심으로 봤다. 샹탈 아커만,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형식주의 영화감독들이 이에 속한다. 크리스턴 글레드힐은 멀비의 이론이 급진적 차이의 무한한 놀이 속에서 주체를 용해한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어떤 주체가 어떻게 용해되는지는 모르겠지만) 70년대는 주류 영화 산업의 둔화로 인해 이런 대항 영화를 상상하는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80년대 할리우드가 회생하고 보수주의가 부상하면서 다른 모델이 요구되었다.

 

클레어 존스턴: 담론 투쟁으로서의 대항 영화

존스턴의 주장에 따르면, 여성영화는 오락영화를 벗어날 아니라 활용하면서, 쾌락과 오락, 판타지 등을 전유해야 한다. 당시 자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미국의 많은 영화들은 유럽의카이에 시네마 통해 인정받는다. 존스턴은 비평들 속에서 스튜디오 장르 영화의 미학을 발견했는지, 스튜디오 영화가 대항 헤게모니의 기능도 수행할 있다고 주장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전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지만, 동시에 이데올로기를 하나로 통일하는데 실패를 안겨주기도 한다

존스턴은 도로시 아즈너의 영화들을 예로 든다. 아즈너는 남성과 여성의 담론을 병치시킨다. 이런 서사는 고전 할리우드의 관습상 여성 담론의 기호가 수는 없지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전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즈너는완전히 기존의 관습을 제거하는 가능한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전복하는 것은 그것이 출현한 속에서 가능하다. 글레드힐은 여성 담론 개념이 경합과 교섭을 허용하고, 형식주의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표현이든 스스로를 체계적으로 드러내야하는 형식주의와는 달리 담론은 미학적 혹은 의미론적일수도 있다. 덕분에 담론 개념은 이론가 영화감독들이 형식주의의 해석학적 교의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테레사 로레티스: 여성영화를 재사유하다

로레티스는 존스턴의 이론을 받아들인다. 그는 서사와 쾌락을 해체할 것이 아니라 재구성해야하고, 재구성을 하는 유일한 길은 서사와 함께, 그리고 서사와 대항하며 작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주의 미학의 중심에 있는 동일화 과정을 연구하면서 작가주의에서 벗어나독자가 읽어내는 텍스트라는 개념으로 향한다. 관객에 대한 재조명은 1980년대 페미니즘의 상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 관객은 Woman 아니라 a woman으로 명명된다. 여성들도 계급, 인종, 연령, 섹슈얼리티와 교차해 그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게 된다. 저자는 로레티스의 입장을 다문화주의로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여성영화는 관객이 자신의 닮은 꼴에 동화하도록 유도하는 아니라 영화적 동일화의 유연성으로 특이성, 다양성, 상호성을 탐구할 있는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아네커 스멜릭은 여성영화의 정의에서 여성 주체성이 핵심인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여성 주체성은 성차가 인종, 계급, 성적 선호, 연령같은 요소들과 함께권력관계망 주요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이다. 초점화를 통해 서사영화는 여성의 관점을 각인시키며 여성주의 의제 여성의 경험과 연계된다. 그러나 저자는 퀴어 이론 영화, 3세계 영화, 후기 식민주의 영화 등이 여성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이제부터 여성영화는 소수자 영화가 것일까?

 

소수자 영화로서의 여성영화

메건 모리스는 소수집단의 문학은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소수자가 주류의 언어를 가지고 구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존스턴의 작업에 힘을 더한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소수집단 문학의 가지 형태인 전치, 탈취, 탈영토화는 존스턴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왜냐하면 영토화가 없는 이상 탈영토화도 없기 때문이다. 탈영토화된 그룹에서 발생한 소수적인 예술은 공동체가 부재하더라도 집단성을 불러낸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영화에서 여성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이해를 필요가 없다. 거기에 속한 이들은 탈영토화와 함께 자연스레 묶여있다. 이는 여성이 언어와 문화에서 완벽히 소외되어 있다는 믿음에 반대하며 오히려 언어 문화와 여성을 경합하는 관계로 가정한다. 이것은 주류에 침투하라고 소수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념은 대중적인 경험과 급진적인 미학을 연결시키고, 여성영화가 어떤 관습적인 것과 대비되는 것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를 통해 여성영화는 기존의 관습과 섞이고, 경합하며, 그것을 재작업하는 감염된 양식이 된다.

 

PS - 그러나 여전히 로라 멀비의 이론에 속해있는 감독들을 좋아한다. 또한 아방가르드 예술이 주류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수집단 예술에 포함될 없다는 생각도 께름직하다. 그리고 정말 들뢰즈가 카프카를 소수문학이라고 말한 이유가 단순히 독일어를 쓰는 이방인이어서였나소수적이기 위해선, 주류 언어, 문화와 계속 경합하라는 요구는 폭력적이지 않은가?  생각에 소수적인 예술을 하는 방법은, 주류를 탈영토화시키는 말고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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