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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양철학사] 제14장 - 공리주의와 자유주의2021-03-17 1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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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철학사] 14장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2021. 03. 17 걷는이

 

 

    제러미 벤담

영국 사회의 근본적 법률개혁을 주창했던 철학적 급진주의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벤담은 권위와 정치적 변화를 정당화해주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욕구, 즉 공리와 쾌락뿐이라고 보았다.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원칙을 일관되게 법률개혁의 지침으로 사용했으며, 무엇이 쾌락을 제공하는지를 계산하는 체계를 개발했다. 이 계산법은 쾌락이나 고통의 강도, 발생의 확실성 등을 포함한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 쾌락은 개인적이다, 그래서 최대행복최대다수의 개개인들의 최대행복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공리 개념은 쾌락 개념과 같은 개인주의적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쾌락 개념이 개인의 경험과 관련되는 반면, 공리 개념은 바람직한 결과와 관련된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결과주의 윤리학이다. 벤담은 의미를 갖는 것은 개별 사물을 지칭하는 낱말들뿐이며, 권리, 소유 등과 같은 낱말들은 허구적이고 실재를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개개인들의 쾌락과 고통뿐이다. 그러나 개념어의 거부는 익명적 권력 구조와 같은 특유한 사회적 측면들을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벤담은 쾌락과 공리라는 원칙에 따라 범죄자에게 어떤 형벌이 마땅한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치가 범죄를 감소시키고 인간성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묻는다. 벤담에게 인간은 탈역사적이다. 인간은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목적(쾌락)을 추구하고 똑같은 힘(쾌락 추구)에 의해 추동된다. 유명론자 벤담이 사회제도를 간과하고 오직 개인들만을 보았던 것처럼 자유주의자 벤담은 역사를 간과하고 인간을 시간을 초월한 추상체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였다.

 

 

    존 스튜어트 밀

영국에서 자유방임적 자유주의가 정점에 도달하면서 산업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조건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과의 투쟁과 산업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투쟁이라는 이중의 투쟁에 직면했다. 노동자들의 목표는 기본 소득과 적정한 노동시간, 지속적인 고용계약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수단은 연대였다.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은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는 사회자유주의로 변화되었다. 따라서 자유주의 이론은 수정되어야 했다. 자유주의의 기본 특징인 개인주의가 사회개념과 사회과학적 사유의 도입을 통해 점차 수정되었다. 밀은 자유 방임을 거부하고 적극적 입법을 강조하는 사회자유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밀은 공리 개념을 질적으로 상이한 쾌락과 고통의 형태들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했으며, 개인적 자유, 자기 존중, 진실성, 사회복지를 가장 중요한 가치들에 포함시켰다. 또한 발언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옹호했는데 밀에게 여론은 양면성을 가진 것이었다. , 여론은 소수집단의 견해에 대해서 강압적이고 억압적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론은 이성적인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회철학자이자 정치 개혁자로서 밀은 억압받는 집단들을 도왔던 활동으로 유명하다. 개인의 불가침의 권리로부터 출발한 밀은 규범적 사유에 있어서는 개인에 기초한 보편적 원칙들을 강조했지만 사회 환경이 개인의 형성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불관용과 공격성 같은 사회적 태도가 어떻게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을 억누를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밀은 국가와 법률을 넘어서는 강제성과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는 시장과 자율 경쟁의 자연법칙이라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을 옹호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

케인즈는 자유방임주의를 거부하고, 국가가 경제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케인즈는 국가자본주의를 옹호한 최초의 인물들 중 하나였다. 케인즈의 이론의 새로운 특징 중 하나는 완전고용 문제를 강조한 점이다. 케인즈에 따르면 완전고용은 용의주도한 경제정책에 의해서만 근사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재정정책과 공공투자를 통해 소비에 일정한 정도의 영향을 미쳐야 하지만 국가의 개입이 사적 소유권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포괄적이어서는 안된다. 케인즈는 사적 소유권(자본주의)은 권력의 탈집중화와 개인의 자기 이익에 기초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이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케인즈는 사적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적 자유주의로부터 국가적으로 조직된 자본주의로의 이론적 이행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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