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겉핥기 중국철학사] 후기: 중국사를 구분하는 여러 방법에 대하여2019-12-29 17: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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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후기: 중국사를 구분하는 여러 방법에 대하여


에레혼



이 강좌를 듣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기픈옹달님과 중국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송대 철학에 대한 이야기까지 대화 주제가 확장되었다. 와중에 내가 "북송시기 철학자 주희"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희는 북송이 아니고 그 이후인 남송시기 사람이고, 고등학교 윤리 과목에서부터 이가 갈리도록 외워온 사람이었다. 나름 주희에 관련해서 레포트도 한두편 써봤는데. 그렇다고 무슨 자괴감까지 느꼈던 건 아니었다. 마침 그 즈음에 기픈옹달님이 플라톤 세미나 하는 시간에 3강으로 마치는 중국철학사 강좌를 열 계획이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아니, 강의 계획을 들은 게 먼저고 주희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나중이던가. 아무튼 한줄로 요약 하자면, 최근 중국사 전반에 대한 기억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강좌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국사와 악연이 깊은데, 중국사는 나에게 늘 혼돈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중국사와의 첫 만남부터 악연이 시작되었다. 아마 중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울 때 본격적으로 중국사를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를 멘붕하게 만든 것은 중국 왕조의 순서였다. 특히 나는 위진남북조 시기 이후, 그러니까 (나라) (나라) (나라) (나라)’의 왕조 순서를 으로 바꾸어서 틀리게 암기하곤 했다. 중문과로 대학을 진학하리라고 한순간도 생각한 적이 없었던 때의 일이었다.

 

 

학부에서 중국문학사를 배우며 당나라, 송나라의 시대 순서와 관계된 개념들예를 들면 고문운동古文運動이니,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이니 하는 것들을 학습하게 되었고 왕조 순서의 혼동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복잡한 중국사가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안그래도 복잡한 중국사를 분석하는 틀 역시 천차만별이라는 것. 마르크스주의 사관으로 중국 역사를 크게 다섯 개로 나눈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학 3기설이니 유학 4기설이니 유가 철학의 흥망성쇠를 주축으로 중국 역사를 재해석한 학자들도 있다. 그나마 익숙한 관점은 지괴/지인 전기 화본 장회하는 식의 전통 소설 장르 이름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중국 역사 전반을 틀어쥐고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3주 만에 중국사 전체를, 그것도 문외한에 가까운 철학 분야를 훑어볼 기회가 있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강좌를 들으면서 좋았던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겉핥기 중국철학사는 철학에 대해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상머리에 앉아 글자만 파는 사람들만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어 2강에서 등장했던 진시황, 3강에서 등장했던 루쉰과 마오쩌둥은 일반적인 철학사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인물들이다. 특정 인물들의 행보가 중국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들이 (철학)책을 저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볍게 다뤄지는 시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겉핥기 중국철학사는 이런 맹점을 잘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강좌였다.

 

 

두 번째로는 겉핥기 중국철학사는 단순히 연대기순 역사로만 강좌가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일부 철학사는 순서대로 인물을 나열하면서 이들의 개별적인 업적을 나열한다. 아까 말한 하는 식으로 역사를 암기하려면 시간 순서로 서술된 역사책(혹은 역사 강좌)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선형적인 역사관은 계보, 스승과 제자 관계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철학사를 이렇게 서술하게 되면 자연스레 "유가 중심의 학맥"을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강좌를 들으면서 당연시되었던 중국 철학의 계보에 대한 의구심 또는 흔히 라이벌 관계에 대한 진위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다음의 질문들은 겉핥기 중국철학사를 통해 재고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공자와 맹자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학문적 연관성이 긴밀하기에 유가의 일족이라고 당연시되는가? 공자의 주장과 노자의 주장은 정말로 대척점에 놓여 있는가? 왕양명의 사상은 주희에 대한 철저한 비판에 불과한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였다. 그 주제는 바로 "중국의 자기 존재 증명"이다. 이 논제는 물론 중국철학사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강좌가 서두에는 '중국사 가운데 철학이라 부를만한 것을 골라내는 펑유란의 구상'(1)을 소개하며, 막바지에 "중국이 중국의 눈으로 과거를 기술하는 날"(3)이 도래할 것을 예견(또는 경계)하는 구성을 취하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타자화된 시선으로 자국의 문화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중국은 스스로의 사상/학문/철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유가를 국학의 지위에 올렸던 한나라 왕조처럼, 앞으로의 중국에는 어용 지식만이 남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이 분야에도 중국의 규모라는 변수가 개입하여 학문적 스펙트럼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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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마치기에 앞서, 3주간의 시간동안, 매주 열장이 넘는 원고를 준비하신 기픈옹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원고에 나와 있는 내용만 다뤄도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시간이었음에도, 이후에 던진 엉뚱한 질문들에 대해 역시 긴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대답해주신 것에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강좌를 마치고 나서 후기를 정리하는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빈틈을 채우겠다는 동기만으로 중국사에 접근하게 되면 또다시 다른 공백만이 발견될 것이고 이내 공허해진다는 것을. ‘겉핥기 중국철학사는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중국 역사를 어떤 기준을 통해 볼 수 있을지 자신만의 시각을 기르는 데에 있어 밑거름이 되는 강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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