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 성의역사4 두 번째 부분 발제(절제가 규율이 되는 과정)2020-01-04 13: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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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4 0109 발제 : 아라차 _ 2.세례의 힘든 과정 3. 두 번째 속죄

 

절제가 규율이 되는 과정


푸코는 2세기 교부들이 흡수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자기 지배 원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스토아학파의 문화가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진 상황에서 포교를 위한 교부 철학자들의 문화 포교 방법의 일환인 듯 하다. 푸코는 그리스 철학이 일방적으로 기독교 문화에 흡수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수용의 양상은 자연-로고스-구원이라는 상승의 구조로 결국 야훼를 숭상하기 위한 논리로 짜맞춰진다. 성관계의 관리술이 결정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도정에서이다. 


1장에서 창조, 생식의 과정을 모두 야훼의 축복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해석했듯, 세례는 새로운 탄생과 영생을 의미한다. 세례의 효과는 용서의 메커니즘이고 동시에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세례의 정결의식은 더러운 흔적을 지워버리고 사라지게 한다. 세례에서 죄를 속죄하는 일과 진실에의 접근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은 사도의 교부들과 호교론자들의 시대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여기서 푸코는 묻는다. 잘못을 속죄하는 것과 진실에 대한 이해는 어떤 식으로건 결국 주체에 의한 죄의 인식과 관련되는 의미일까? 


라틴어 저자들이 ‘속죄’로 번역하고 세례를 뜻하는 말로 사용한 ‘회개’라는 용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대답이 다를 수 있다. 회개는 처음부터 잘 만들어지고 잘 정리된 속죄의 관습이 아니다. 속죄의 고행은 계산된 방식의 규율 훈련으로 이해될 수 없다. 이것은 자기의 객관화와 관련되지 않고, 자기 표명과 관련된다. 과거와는 달리 재생된 삶을 의식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포기와 약속이다. 회개는 진실에 이르는 영혼의 변화이자 그 변화에 표명된 진실이라는 복합적 행위가 된다. 자만심과 교만함으로 야훼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태도는 비난받는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세례를 받기 위한 힘든 과정과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겪는 필연적 ‘두려움’을 매우 중시한다. 구약에서처럼 야훼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통해 야훼에 대한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우리가 죄를 멀리 할 수 있는 것은 뉘우침에서가 아니라 자기와 자기 사이의 영속적으로 확립된 두려움의 관계에 의해서이다. 세례 기간 동안의 규율이 가혹하고 엄격한 것은 기독교인의 삶을 열망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예비 신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평가절차들은 변화와 정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자기 증명의 일환이다. 


반드시 필요한 일로 거론된 적인 없었던 ‘고해’의 문제가 테르툴리아누스 이후에 정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고해는 교육의 책임자가 예비신자 지원자의 과거 행적과 생활에 관한 정보를 물어보는 정도가 아니라, 지원자가 수행해야 할 신앙심과 고행의 훈련 중 하나로써 자기 자신을 대상화한 행위이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수난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원칙, 고행의 운명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생활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으로만 끝날 수 있는 고행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야 한다. 


중요한 문제는 세례에 따른 회개의 제도화와 첫 번째 세례에서 이루어졌던 정결의식의 절차를 반복할 수 있는 제도화 방식에 관한 것이다. 푸코가 검토한 것은 3세기부터 만들어진 ‘교회법’에 의거한 속죄, 즉 중죄를 범한 후에 회개나 기도만으로 용서를 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의 권한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속죄에 관해서이다. 첫 번째 세례에서 강조된 것이 해방이었다면, 두 번째 속죄에 필요한 회개에서는 자기 자신과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영혼의 고행 활동이 강조된다. 교회법에 의거한 속죄의 고행 과정은 첫 번째 세례 절차들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진실 확인 절차에서 속죄자인 죄인은 자기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인정해야 했다. 


우선 속죄 요청의 이유를 설명하는 절차가 있었다. 주교나 사제에게 속죄가 되려는 자신의 의지와 이유를 털어놓아야 했다. 조사 작업은 종종 소송 문제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구두 절차는 죄의 중대성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재판상의 자백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이 때의 구두 고백은 속죄의 간단한 전제조건일 뿐이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훗날의 고해와 다른 점이다. 고해나 고백이란 용어가 속죄의 최종 단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용어는 속죄의 절차가 진행되는 전체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이 때문에 속죄자가 지켜야 할 ‘규율’, 생활방식과 삶의 태도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진다. 속죄자는 자신의 속죄를 ‘직무’로 삼고,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고통의 징벌로 속죄의 진실을 표명해야 한다. 


초기의 교회에서 주관하는 속죄의 고해에서 진실에 관한 절차들은 두 개의 극점을 중심으로 재편성된다. ‘잘못을 말하기’와 죄에 대해 ‘육체’로 표현하기. 과장, 손짓, 몸짓, 표현력 등은 속죄의 본질적 요소이다. 왜 남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죄를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 왜 저지른 행위 뿐 아니라 자신의 진실된 모습까지 꼭 보여줘야 하는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기독교가 강력한 공동체 구조와 서열화된 조직을 갖춘 교회 체제로 편성될 때부터, 그 어떤 중대한 범법행위도 많은 검증 절차와 보증 없이는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의 기독교는 몇 가지 모델을 고안했다. 1. 의학적 모델. 2. 법적인 모델. 이 두 가지 모델은 역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중에 속죄의 고백을 조직화하고 형식을 부여하는 데 중요하지만 부차적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3. 순교자 모델이 훨씬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 박해 이후 나타난 이 모델은 그 후에도 계속 논의되었다. 속죄는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의 신앙을 증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 세대에게 순교를 대신할 수 있는 기회로 나타난다. 순교자는 말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생명을 파괴하여 죽음을 초월하여 살 수 있다는 진실을 드러내게 된다. 


속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진실처럼 보이게 하기’는 주체의 책임을 결정하기 위한 것도 아니요, 자기의 과거에 대한 인식 방법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단절의 표명이다. 시간의 단절이자 속세의 포기이고, 삶과 죽음의 전도이다. 고해의 의식은 속죄자의 정체성 단절을 공고히 한다. 


푸코는 절제가 규율이 되고, 규율이 삶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기독교의 세례 의식과 속죄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억압이 내면화되는 과정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포기의 과정을 통해서라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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