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눈앞의 문제는 언제 해결할 수 있나요2020-01-16 0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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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20200116.pdf (95.3KB)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20200116.hwp (33KB)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세미나 20200116


눈앞의 문제는 언제 해결할 수 있나요


에레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세미나를 시작할 때 국민국가민족(주의) 파트를 맡겠다고 한 것은 다른 장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부분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풍월로 들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발제를 맡았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이니 민족과 국민 너머이니 하는 말을 보고 있으면 너무 수준 높은 반으로 월반한 느낌마저 받는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2년 전 <상상된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다시 번역되었을 때, “두 번역서 중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같은 질문이나 하던 나였으니 알만한 결과이다. 더듬거리면서 책을 읽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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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에서 저자는 비판을 비판하는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가 비판 대상으로 삼은 연구자들은 민족적 국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사람들이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에서 이 연구자들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까닭은 이들의 비판적 성찰이, 결국에는 국민 자체, 국민국가라는 범주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기각과 부정을 낳기 때문(179)”이라고 설명한다. 독특한 것은 저자가 이러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적인 국민국가론(182)”을 논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서술 방식이 의아하다고 느꼈다. 그리고는 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공세에 밀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에서 오로지 일종의 이데올로기 비판(182)”이라는 입장을 취한 이유를 이해하려 노력해보았다. 아마도 저자는 국민국가에 대한 비판 작업들을 살펴보며, 각 논지들이 극단적인 방식으로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막연한 전망에 머물고 있는(212)” 공통적 현상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저자는 국민국가에 대한 비판이 또 다른 극단으로 향하지 않기 위한 사고의 전환을 제안한다. 먼저, 국민국가를 비판하는 작업에 앞서 대중의 존재론적 우월성을 인지하여 국민국가=전체주의라는 함정을 벗어나야 한다. 다음으로 권력을 긍정적생산적인 것으로 바라봄으로써 예속적 주체 역시 저항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국민국가를 비판한 연구자들이 우려한 바와 달리) 개인은 오히려 국가를 통해 제작(혹은 형성)된다.

  이어서 5장으로 넘어오면, 저자의 홈 그라운드나 마찬가지인 번역 문제에 대한 글을 살펴볼 수 있다. 해당 파트에서 저자는 네이션(nation)을 민족, 국민 가운데 무엇으로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언급한다. 또한 저자는 5장에서 번역어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네이션들의 체계가 수행하는 탈구축의 운동에 대응하는 2차적 탈구축(228)”을 구상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네이션을 번역는 일에 혼돈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1872년에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가 네이션을 민족으로, 그리고 1875년에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국민으로 번역한 것이 네이션이라는 글자가 한자어에 대응된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에서는 네이션의 한자 문화권 유입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한 채, 민족/국민이 가지고 있는 어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56쪽에서 언급하지만, 이와 같은 작업은 두 개념어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개념을 구분함으로써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네이션을 민족으로 번역하는 관성을 지적하고, (한국어에서 통용되는) 민족에 대응될 수 용어로 에스니(ethnie)를 소개한다. 앤서니 스미스의 최신 이론에서 가져온 에스니 개념은 고토와 연결되어 있고 선조와 관련된 공통의 신화, 공유된 기억,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공유된 문화 및 연대의 수단을 소유한 이름을 지닌 인간 공동체(237)”를 의미한다.

  네이션의 번역어로 국민이라는 용어는, 한마디로 힙하지 않기에연구자들에게 새삼스럽게 들여다 볼 이유가 없는 용어처럼 취급된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자명한 외관이 가지고 있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242) 저자는 발리바르의 관점을 동원하여 국민국가의 소속원에 대한 두 가지 차원의 문제피식민지인과 식민지 본국인이 동일한 시민일 수 없는 현상(외연적 보편주의)과 시민권에서 배재되지 않으려면 시민이라는 자격을 갖춰야만 하는 모순(내포적 보편주의)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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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4장과 5장을 살펴보면 저자가 지난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천적/실용적해법에 고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저자의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논문을 위한 수사적 문구에 불과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를 읽고 난 독자가, 국민국가민족주의의 문제점을 경계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질문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면, 이는 곧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려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해진다는 방증이다. 대표적으로 운명공동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가 기본적으로 학술 논문 모음집이라는 사실을 재차 깨닫게 해준다.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로 모든 사람들이 오늘날 지구의 한쪽에서 동일한 운명을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258)” 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저자가 문제 삼은) 시빅 내셔널리즘의 형태로 외부인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수많은 문제에 어떤 울림을 가져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민족주의와 배타의 문제를 운운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사례를 가져올 필요도 없고, 사회 각 분야의 문제를 언급해야할 이유도 없게 된 요즘이다. 한국 대학 사회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다수 대학에서 학생회장 선거 포스터를 한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로 표기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PC 열풍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대학 내 구성원 가운데 유학생이 다수 증가한 것에 따른 변화이다. 저자가 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는 대학만 하더라도, 유학생 수가 가장 많은 4년제 대학 3위에 랭크되었으며(2019. 9. 25. 언론보도),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유학생 숫자가 40% 증가한 곳(2019. 10. 10. 언론보도)으로 알려져 있다.

  ‘그 대학에서 일어난 근래의 사건들국제학생축제에서 티베트를 개별 국가로 분류했다가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던 일, 홍콩 시위 대자보를 두고 중국 유학생과 한국 학생이 충돌 한 일 등은 상호 의존 관계를 폐지할 수 없는 학내 집단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이다. 4장과 5장이 세상에 나온 시기는 각각 2009년과 2011년인데, 민족에 관한 문제는 해당 시기에 예측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방식에 리부트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적어도 저자의 제안처럼 막연한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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