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SF특집] 테드 창 발제_당신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2020-02-02 17: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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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특집] 테드 창_옴팔로스/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발제_아라차



당신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신이 나를 창조했고, 나의 삶을 전부 관장하시며 나는 알 수 없는 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 이를 의심없이 전제하고 있기에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고 이 삶이 대단히 의미있는 것이다라는 믿음. 다 틀렸다! 창조는 우연이었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부수물일 뿐이다. <옴팔로스>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만약 신이 우리에 대해 아무런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다면요?”(382p)


옴팔로스,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뜻이다. 제우스는 델포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옴팔로스라는 돌을 세웠다고 한다. 옴팔로스라는 인간 종은 그래서 세상의 중심이고 신의 뜻을 실현하는 대변자이다. 고고학자인 주인공은 유물과 유적에 남겨진 증거들로 우리 옴팔로스를 창조하신 신의 의도와 목적을 탐구하고 있다. 나이테가 없는 나무와 미라로 남겨져 있는 배꼽 없는 인간들의 존재가 신의 창조를 입증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천문학자에 의해 밝혀진 에리다누스자리 58이라는 항성의 존재로 인해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그저 우연 내지는 부작용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난다. 


과학은 진리의 탐구만이 아닙니다. 과학은 의도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384p)


그동안 신학자이든 과학자이든 자신들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상상력을 펼쳐왔다. 의도를 입증하기 위한 맞춤형 신학과 과학. 객관적인 현실이라는 것을 존재 불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탐구는 신을 증명하기는커녕 인간을 영생하게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가는 우연이나 기적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다시 한번 의미를 부여한다. 


우주 창조와 마찬가지로 인과의 사슬로 고정되지 않은 또 다른 범주의 사건들,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는 일종의 기적이다. 자유의지에 의한 모든 행동은 우주 창조와 마찬가지로, 제1원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391p)

당신이 저라는 존재에 대해 사실한 아무런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제가 느낀 성취감은 순전히 저의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 사실은 제게 인간이 자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392p)


주인공은 자신의 삶의 키를 붙잡고 있다고 여기던 신과 상관없이 스스로 의도하고 선택해서 살아가는 우연을 선택한다. 신이 우리를 창조하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바로 내가 뭔가를 스스로 해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신이 나를 창조하고 선택해서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 특별함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특별함인 것. 이런, 신의 보증이 없다고 사라질 나르시시즘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제1원인으로 하는 새로운 나르시시즘으로의 전환. 뭐, 대단한 결론도 아니다.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평행우주와 평행자아를 열망하고 의도하는 사람들에게서 엿보이는 것은 역시 나르시시즘이었다. 평행자아가 만약 여기 있는 나보다 잘 살고 있으면 질투하고 낙담까지 한다. 평행자아는 나를 연민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평행자아의 인생보다는 자기 인생 쪽이 낫다고 평가하면서, 결국 자기들의 선택이 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439p) 확증 편향이 더해진 엄청난 나르시시즘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또 한가지는 윤리의 문제이다. 평행자아와의 연결을 돕는 프리즘. 개인이 프리즘을 가지고 있는 수만큼, 아니 그 이상의 평행우주들이 존재했다. 프리즘을 통해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모로와 냇. 모로는 총에 맞아 살해당하고 남겨진 냇은 질문한다. “내가 옳은 행동과 옳지 않은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할 때, 다른 평행세계들에서 언제나 두 가지 행동을 모두 선택하는 건가요? 그게 사실이라면 왜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해야 하죠? 어차피 딴 곳에서는 못되게 굴고 있기도 할 텐데?”(474p)


상담사 데이나는 답한다. “선택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당신 성격의 일부가 되고, 당신이라는 사람을 형성하니까요. 이 세계에서 당신이 선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미래에 분기될 세계들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당신이 선한 선택을 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미래에 이기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477p) 내가 지금 행한 선한 선택은 미래에 분기될 더 많은 평행우주의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민하지 않고 쉽게 선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쉽게 그럴 수 있는 것은 선하게 행동하려는 작은 선택을 예전에도 여러 번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상담사 데이나의 평행자아들을 통해 보여준다. 데이나는 고교시절 친구인 비네사에게 행한 잘못으로 계속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비네사에게 보상을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모든 평행우주에서 비네사들은 마지막에는 자멸적인 행동 패턴에 빠졌고, 모든 데이나들은 무슨 행동을 했던 결국 자신을 탓했다. “만약 당신이 이곳과는 다르게 행동한 평행세계들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은 당신이 아니에요.”(491p) 이 데이터들을 거금을 주고 데이나에게 보낸 사람은 냇인 듯 하다. 냇은 아주 작은 선한 선택을 계속하기로 맘 먹은 모양이다. 


“당구공의 처음 위치 측정이 1나노미터만 빗나가도 당신의 예상은 단 몇 초만에 소용이 없어진다. 공기 분자끼리의 충돌도 이와 비슷해서, 1미터 떨어진 단 하나의 원자가 미치는 중력 효과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416p) 아주 작은 차이가 나중엔 어마어마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냇이 행한 아주 작은 선행이 냇을, 그리고 주변을, 그리고 냇의 평행우주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이기적인 선택이 아닌, 타인을 위한 선택을 선한 선택으로 배치한 작가의 의도는 뭘까. 얼핏 선한 선택조차 인류의 불치병인 나르시시즘의 또 다른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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