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중국] 만력 15년 0624 발제 : 법을 지켜서 지켜지는 무엇인가2020-06-24 01: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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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 15년] 괴팍한 모범 관료 - 해서

 

법을 지켜서 지켜지는 것은 무엇인가


해서의 사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한다. 지금 시대에 이런 인물이 있다면 과연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나 될까 싶다. 아마도 괴팍하고 꼿꼿한 선비 정신으로 인해 본인의 인생 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말아먹었다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을 것이다. 해서처럼 원리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사람은 과연 세상에 이로운 사람일까 해로운 사람일까. 문제는 그 원리 원칙이 시대와 권력이 만들어낸 특정 계급의 철학이기 때문은 아닐까. 


홍무제가 추진한 농촌 정책과 일련의 조치들은 명조의 이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장 현저한 결과는, 광대한 전국의 농촌에서 법제의 발전이 중단되고 추상적인 도덕이 법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관료에서 촌민에 이르기까지 시비를 판단하는 기준은 ‘합법’, ‘불법’이 아니라 ‘선’과 ‘악’이었다.(249p) 


해서는 법을 매우 중시하여 권력에 아첨하지 않고 법을 집행했지만, 동시에 성현의 가르침을 받아 성장한 문관으로서 윤리 도덕의 지도적 역할을 시종 중시하였다. 그의 판단 기준은 “형을 굴복시키기보다는 동생을 굴복시키고, 숙백보다는 질을, 빈민보다는 부자를, 우직한 자보다는 교활한 자를 굴복시켜야 한다. 일을 모양새를 다툴 때에는 관리들을 굴복시키기보다 백성들 굴복시켜서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같은 ‘사서’의 가르침이었다. 해서의 일생은 이러한 제도의 산물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개인적인 도덕성도 조직과 기술상의 약점을 보완할 수 없었던 것이다.(231p) 


저자 레이 황은 해서와 같이 지나친 도덕성을 갖춘 관료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명나라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백년 이상 고착되어 온 재정 문제나 사법 문제는 기술적으로 개선을 하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것은 문관 집단을 근본에서부터 재편성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개인의 도덕성은 희화화되고 결국은 우울한 결말을 맞는다. 해서 시대의 문관들은 “도덕 윤리는 도덕 윤리일 뿐 일을 행할 때에는 별도의 교묘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왕 조차도 어쩌지 못한 뿌리깊은 문관 중심 시스템으로 인해 해서같은 이들은 장례비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고, 고리업자들과 한통속이 된 문관들의 토지는 늘어만 갔다. 


해서의 이야기를 읽으며 떠오르는 사례 하나. 파리의 택시 운전기사들은 규정 또는 요금과 관련해 시 당국을 압박하고자 할 때, 이따금 준법 투쟁 노동 쟁의를 하곤 한다. 이는 도로 규정의 세세한 규칙을 모두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이로 인해 파리 중심부 곳곳은 아주 극심한 교통 정체가 초래된다. 운전자들은 공식적인 규칙을 종종 위반하면서 발전시켜온 일련의 관행들이 있어야 교통 순환이 원활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전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이 과연 이로운 것일까. 법을 지키는 것보다 법을 이용하여 부를 늘려가는 사람들(편법 아님 주의)이 많은 이 때에, 준법정신이 지켜주는 것은 무엇인가. 명나라같은 국가인가, 해서같은 관료인가, 세금의 최종 낙찰자인 국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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