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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선악의 저편>, 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후기(19.1.25)2019-01-26 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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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인간의 긍정(A noble man’s affirmation)


고귀한 인간의 징표는, 즉 어떠한 인간이 고귀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말해주는 바는, 그의 행위도, 그의 작품도, 그리고 그가 지닌 고귀함에 대한 깊은 열망도 아니다. 고귀한 영혼을 지닌 인간의 시금석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The belief in oneself)'이다. (선악의 저편; 287)


이러한 그가 가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그가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The way assessment of value)에서 나타난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가치를 결정(determines value)하는 자로서 경험하며, 자신의 판단과 의견을 신뢰하고 존중한다. 이에 대하여 그는 타인의 인정(other people's of approval)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는 "나에게 해로운 것은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이다"(선악의 저편; 43)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나의 판단은 나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다른 사람도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선악의 저편; 43)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가치들의 위계질서(rank of ordering of values)'이며, 그에게 '모든 사람을 위한 진리'라는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오직 스스로 가치를 평가하는 자로서 '가치의 창조자(creator of value)'이다. 이러한 고귀한 영혼의 상태는 그가 고양되고 자부심이 있으며, "충만한 감정과 넘쳐 흐르고자 하는 힘의 느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귀한 인간은 평등에 대한 본능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평등에 대한 이념'이 생명력의 쇠퇴로서, 즉 데카당스 도덕으로서 '차이'에 대한 부정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유사하게 됨으로써 하나의 '무리동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영혼의 내부에는 "점점 더 새로운 거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유형의 다양성,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의지, 탁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의지"(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안에서만 '발전'하고 강해지며, 따라서 '건강'할 수 있음을 알고있다. 이렇게 그는 '거리의 파토스(Pathos of distance)'가 무엇인지 알고있다. 그는 '거리'와 '차이'를 원하지, '평등'과 '유사함' ㅡ '비속함(ignoble)’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고귀한 인간은 그의 삶에서 겹겹의 가면을 필요로 하는데(“그러나 나에게 주려무나, 부디ㅡ, 그것은 또 하나의 가면! 두 번재 가면이다!”, 선악의저편; 278), 그것은 그가 표면적인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고귀하고 깊이가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닌 가면의 깊이는, 그가 겪은 고통으로부터 비롯된다. 깊은 고통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바, 그는 이러한 자신의 가공할 체험에 대하여 구토감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가치평가뿐만 아니라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도 높은 경외감을 갖고있다. 이러한 그의 정신적은 자부심은 그를 타인과 ‘구분’하고자 하게 하며(선악의저편; 270), 자신과 고통을 같이 하지 않는 자들의,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의, 자신에 대한 천박한 해석들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가면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선악의 저편; 40, 270) 그는 가면을 통해 자신이 명랑해 '보이길' 원하며, 어리석어 '보이길' 원한다. "깊이 있는 모든 것은 가면을 사랑한다."(선악의 저편; 40)


이것이 고귀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신의 체험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고귀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자기 자신에 대한 경외감은 그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그는 항상 자기 자신을 원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원한다. 그는 "가장 대담하고 생명력 넘치는 세계를 긍정하는"(선악의 저편; 56)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체험과 그리고 가면 없이는 결코 상연될 수 없는 삶이라고 하는 저 연극 전체에 대해서 '다시 한번(da capo)'라고 말할 수 있는 자이다. 그는 "과거에도 그렇게 존재했고, 현재도 그렇게 존재하는 방식대로" 존재하고자 한다. 그는 이렇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체험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해서도 높은 경외감을 갖고 있다. 그는 '나의 삶은 나의 삶이다. 다른 사람이 이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며,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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