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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리딩 R&D]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제4장 2021-08-18 19: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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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시간과 공간 : 인간이 지닌 세계관의 기본 개념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과 철학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왜곡된 시각과 오류로 철학과 점점 더 분리되었다. 과학을 확립된 진리로 여기고 문제해결의 교본처럼 떠받드는 한편 정신적 가치를 부인하며 사회를 위협하는 원천으로 여기는 시각들이 서로간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이는 미국 학교에서 문화상대주의라는 명목하에 진화론 교육이 법적으로 금지되는 지경까지 나아갔다. 물론 과거의 역사 속에서 과학이 저질렀던 잘못들이 이런 왜곡과 연관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과학은 오래전부터 한계를 드러냈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일부일 뿐이다. 특히 19세기 실증주의가 주장했던 과학의 승리라는 환상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그렇다면 왜곡된 이미지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과학은 어떤 것일까? 로벨리는 과학적 사고의 힘은 실험, 수학, 방법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과학적 힘은 과학적 개념에 대해 불신할 때 생긴다. 이를 통해 생기는 변화가 과학의 핵심이다. ‘과학 전체는 지도 제작사에 비유될 수 있다.’ 이 지도가 토지를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도는 지도일 뿐이다. 또 다른 지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공간개념과 시간 개념의 변화 역시 과학을 구성하는 지속적인 변화의 사례 중 하나이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지구가 1초에 30km를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공간이 전자기장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다윈은 인간과 무당벌레가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데 인류의 세계관의 변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고대 문명에서는 공간은 아래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땅 아래에 또 다른 땅, 거북, 기둥이 지구를 받치고 있다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위와 아래로 나눠진 두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단 하나의 공간만이 존재하고 지구 역시 그 공간 안에 떠 있는 것이며, 지구상의 모든 사물들이 지구를 향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관찰을 기반으로 삼고, 관찰 결과를 설명하게 위해 기존과는 전혀 다른 개념적 도식, 공간의 구조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특히 그의 아페이론(apeiron : 구별이나 규정되지 않는 것, 무한한 것)기본벽돌로 여겨진 최초의 이론적 객체로 원자, 소립자, , 구부러진 시공간, 쿼크, , 루프 등 모든 개념들의 조상이 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그의 몽상의 힘은 이후 아인슈타인에게로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는 공간을 하나의 개체가 아닌 사물간의 관계로 보았다. 이는 라이프니츠, 버클리, 에른스트 마흐 등의 사상가들에게로 이어졌으며 아인슈타인에게까지 전해졌다. 아인슈타인은 이 공간의 개념을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뉴턴은 공간이란 사물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존재하며 고유의 구조를 가진 하나의 개체로 보았다. 뉴턴의 이론은 건축, 교각, 건설, 비행기 이륙 등 많은 기술 분야에 응용되고 있을 정도로 잘 작동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로벨리는 양자중력에 대한 완벽한 이론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뉴턴의 관점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양자중력에서는 루프가 중력장의 양자 역할을 하며 이 루프간의 관계가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생각을 지속하는 동시에 그 생각을 재구성하게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로벨리는 그것을 배에 타 항해를 지속하면서 선체를 수리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닌 무지의 범위는 너무 넓고 이론물리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과학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과학이 확실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여러 답 중 가장 나은 것을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적 사고란 우리의 무지를 의식하는 것이다.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것은 확신이 아니라 의심이다. 또한 모든 과학적 발견들은 직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과학은 꿈에서 출발하고, 그 꿈이 지배적인 기존의 꿈들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 비로소 전 인류 공통의 꿈이 되는 것이다.

 

   의심하고 꿈꾸는 과정은 철학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이 장의 서두에 로벨 리가 과학과 철학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로벨리는 어린 시절, 구름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아버지가 하늘에 떠다니는 배라고 말해주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얼마 전 나는 차를 타고 가다가 하늘에 뭉게뭉게 퍼져 있는 구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바다 위에 배들이 진군하고 있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합리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이라고 해서 그 날의 공기와 습도, 기분 등이 부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로벨리는 구름에 대한 기상학적 관점이 결코 시적인 관점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배들이 진군하는 구름은 양털처럼 흩어지기도 하고 노을 속에서는 붉게 변하기도 할 것이다. 끊임없는 변화를 끝까지 지켜보는 태도로 시공간의 과학과 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마도 로벨리는 우리와 함께 그런 꿈을 꾸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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