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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리딩R&D] 부재 위에 세워진 세상2021-10-27 13: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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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R&D [퀀텀스토리] 4부 양자장 1027 아라차 발제



부재 위에 세워진 세상



보는 것이 곧 왜곡이요, 이해가 곧 오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양자역학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양자역학이 이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도구라면 우리는 왜곡과 오해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지평선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저 멀리 어렴풋이 진실을 떨어뜨려 놓고 한계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한계 거리 안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뭔가를 발견하고픈 호기심어린 지적 파티는 계속될 것이다.


전쟁으로 잠시 논쟁에서 벗어나 있던 물리학자들이 다시 학회를 열었다. 물리학의 주도권은 이제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왔다. 양자역학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놓여 있었다. EPR역설에서 본 것처럼 슈뢰딩거의 방정식대로라면 정보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위배된다. 양자역학에는 상대성 이론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방정식이 필요했다. 디랙의 방정식은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담고 있지만 계산대로라면 음의 에너지 상태의 반물질이 존재한다는 결과가 나와 버린다. 맥스웰의 전자기장을 양자화시킨 양자장이론과 이를 전자에 적용한 양자전기역학(QED)이 이 난제들을 해결할 대안으로 떠올랐다. 


양자전기역학의 총아는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린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파인만의 방정식은 식이 아닌 다이어그램으로 유명하다. 수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줄리언 슈윙거와는 다르게 파인만은 ‘물리학적으로’ 접근했다. 공간과 시간을 나타내는 좌표 위에 두 전자가 상호충돌하면서 가상 광자를 교환하는 다양한 경로를 형상화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미래가 아닌 ‘과거로 가는 입자’를 도입해야 했다. 기존의 학자들에게는 너무 낯설고 공상과학같은 얘기였다. 과묵하기로 유명한 디랙이 파인만의 방식을 두고 “입자가 과거로 간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따져 물을 정도였다. 놀라운 건 수학으로 푼 슈윙거와 다이어그램으로 푼 파인만의 결과가 정확히 일치했다는 점이다. 


수학자였던 프리먼 다이슨은 파인먼의 접근법을 쉽게 설명하고 싶었다. 다이슨은 줄리언 슈윙거의 이론까지 결합하여 파인먼의 이론을 ‘산란행렬(S-행렬)’ 과정으로 풀었다. 자유입자들이 서로 접근하고 상호작용하고, 새로운 입자를 생성하고 나서 다시 멀어지는 과정을 서술하는 행렬로, 개개의 행렬 요소들은 하나의 파인먼 다이어그램에 대응된다. 파인먼 다이어그램에서 수시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가상 광자는 전자의 질량 일부를 변하게 하지만, 전자의 자기모멘트에 직접 관여하는 전기전하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잠시 대칭성을 짚고 넘어가자. 헤르만 바일이 대칭성 이론의 선구자다. 물리계는 어떤 변환에 대하여 대칭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계에는 보존되는 양이 존재한다(뇌터의 정리). 모든 보존법칙은 자연의 깊은 단계에서 대칭성의 산물인 것이다. 보존되는 물리량 중 대표적인 것이 전기전하이다. 전하는 물리적 또는 화학적 과정에서 새로 생성되지 않으며, 소멸되지도 않는다. 바일은 양자역학이 등장하기 전부터 ‘게이지대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바일은 입자와 장이 매우 밀접한 관계라는 점을 간파하고, 파동함수의 국소적 위상 대칭과 전하 보존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양전닝과 로버트 밀스는 대칭성과 군론(Group Theory)을 이용하여 앙자장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장 입자의 질량 문제는 실마리가 잘 풀리지 않았다. 


장 이론과 양자전기역학은 새로운 입자들의 발견을 촉진했고 실험물리학자들도 입자가속기의 고안으로 새로운 입자 발견에 참여했다. 세상은 온갖 입자들로 정신없이 들끓는 ‘입자동물원’이나 다름없었다. 양성자, 중성자 같은 무거운 강입자(Hardron, 하드론), 전자와 같은 경입자(Lepton, 랩톤)등 수백 개가 발견되는 상황, 미국의 물리학자 램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새로운 소립자의 발견자는 한때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지만, 이제 그런 발견에는 벌금 10,000달러를 물려야 한다.”


입자는 전하, 스핀, 아이소스핀, 기묘도 등 양자수에 따라 분류되며, 가장 크게는 ‘물질 입자’와 ‘매개 입자’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물질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이고, 매개 입자는 장의 양자로서 물질 입자들 사이를 오가며 힘을 전달하는 입자이다. 물질 입자는 반정수(분수)의 스핀을 갖고 있으며, 페르미온(fermion)이라 불린다. 힘을 전달하는 매개입자는 보손(boson)이라 하며, 정수의 스핀을 갖고 있다. 광자는 보손에 속한다. 


머리 겔만과 유발 네만은 이런 소립자들을 이루고 있는 좀 더 근원적인 뭔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겔만은 강입자보다 더 작은 기본입자 3개와 이들의 반입자 3개로 6개의 쿼크 입자를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강입자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는 8정도를 만들어낸다. 쿼크를 이용한 분류법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웠지만 일종의 퍼즐게임과 같았다. 겔만과 네만의 8정도에는 각각 스핀이 1/2인 입자들이 거울 대칭 관계에 있었다. 대칭 관계에서 누락되어 오메가라 이름 붙였던 입자는 나중에 실험물리학자인 니콜라스 사미오스에 의해 발견된다. 이후 팔정도 이론이 사실로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조롱을 대상이었다. 전하가 분수인 입자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게 중론이었다. 


광자와 같이 질량이 없는 입자는 전자기력처럼 먼 거리까지 작용하는 힘과 관련이 있다. 작용 거리가 짧은 핵력은 질량이 있는 입자에 의해 매개된다. 새로운 이론으로 질량없는 입자가 도입되었다면 이 입자는 광자처럼 우주 어디에나 존재해야 한다. 신의 입자라 불렸던 힉스 보손이 등장할 차례다. 잘 유지되던 대칭성이 붕괴될 때 매개입자들은 질량없는 입자로 남지만 어떤 입자들은 진공장(힉스장)에서 질량을 획득하게 된다. 힉스매커니즘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간파한 사람은 스티븐 와이버그였다. 당시 입자의 질량과 관련된 문제는 이처럼 가상의 장(힉스장)을 도입하고 또 다른 보손을 가정하는 등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설명되고 있었다. 와인버그는 당시 물리학자들의 상황을 플라톤의 동굴 비유와 비슷하다고 회상했다. 


힉스 입자는 2013년 제시된 지 49년이 지나서야 그 존재를 인정받게 된다. 힉스입자의 발견으로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매커니즘은 알게 되었지만 질량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무에서 유가 되는 매커니즘만 있고, 무와 유의 본질은 여전히 암흑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부재 위에 세워진 세상, 신기루같은 이 세계에서 빛은 여전히 공평하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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