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중국문학] 홍루몽 2권 21-30 :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아.2019-10-26 14: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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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새로운 여아만 나타나면 입술연지를 탐내는데 그 횟수가 늘어나니 어린아이의 철없음으로만 보기엔 쫌 거북함을 주는 보옥,

조실부모한 열등감과 병약한 몸 때문에 예민한 거겠지의 정도를 지나서 비장하게 꽃무덤을 만드는 대옥,

열다섯의 나이에 이르러 여인의 향기를 풍기며 현명하게 행동하지만 슬슬 싸한 기운이 느껴지는 보차까지,

주인공들은 제 마음이 제 맘 같지 않거나 제 맘이 왜 이러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듯 보이며, 좋은 경치를 한곳에 자연스럽게모아놓은 대관원에서 쑥쑥 자라나는 시기이다.

 

21

대옥과 습인에게 차례로 타박을 들은 보옥은 결심 비슷한 걸 해본다.

어찌 되었든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들이 죽은 셈 치자. 좌우지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일단 그녀들이 죽었다고 치면 아무것에도 걸릴 게 없어 절로 즐거워질 것이다.’(32p)

비록 하룻밤 지나면 운명을 다 할 이 결심 덕분에 보옥은 열공모드로 책을 펴는데, 그 대목이 현재를 비추어 되묻게 하는 힘이 있어 적어본다. <장자-외편.거협편> 중에서.

 

-그러므로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로움을 버려야 큰 도적이 멈추게 되고 옥을 버리고 진주를 깨뜨려야 작은 도둑도 생기지 않는다. 부절을 태우고 관인을 부수면 백성이 순박해지고, 쌀되를 박살내고 저울을 분질러버리면 백성이 다투지 않게 된다. 천하의 성스러운 법령을 모두 파기하면 백성은 비로소 더불어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며...-(33p)

 

한편, 희봉의 남편 가련은 방중술에 능한 여인에게 홀딱 넘어가 일은 치른 후, 희봉의 시녀인 평아에게 들키지만 성스러움이 주인들의 영역이 아닌 걸 이미 깨달은 평아는 본 걸 못 본 것으로 처리한다.

 

22-23

보차의 열다섯 생일을 기념하여 잔치가 열리는데, 무릇 잔치가 열리면 흥겨워지는 만큼 한쪽에선 흥떨어지는 일이 꼭 생기기 마련이라, 말 내기 좋아하는 희봉의 농에 눈치 없는 상운이 대옥을 언급하니 보옥은 애가 달아 눈짓을 하지만 눈짓 한 번이 또 대옥의 심기를 건드리고 티격태격 끝에 보옥은 깨달음을 얻는다. 물론 이 깨달음도 반나절이면 깨질 운명이다. 어찌보면 보옥은 깨지면서 커지는 인물일까? 어떤 신념도 보옥이 품으면 깨지고 말 운명이라면 진정 보옥이야말로 무념무상을 알만하다.^^ 티격태격의 글 속에 대옥이 덧붙인 두 구절이 마음에 들어서 옮겨본다.

 

발 디딜 마지막 경지도 없어져야,

비로소 진정으로 깨끗해지리라. (61p)

 

음력 정월 보름을 며칠 앞두고 귀비가 지은 수수께끼로 놀이를 하는 날, 가정은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꽃길만 걸을 것 같은 자녀들의 모습 속에 어둠이 잠재해 있음을 비춘다.

나중에 올 어둠 때문일까? 지금의 빛은 더욱 찬란해진다. 아래의 씬은 만약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든다면 나와 비슷한 관객으로부터 탄성을 자아낼 듯하여 각색해 보았다.

 

S#1. 삼월 중순 한 낮. 심방갑 다리 옆 복사꽃 나무 아래. 등장인물- 보옥, 대옥. (84-85p)

 

보옥은 <서상기> 한 질을 가지고 심방갑 다리 옆 복사꽃 나무 아래 놓인 돌 위에 앉아 책을 읽는다.

  

보옥 (심취한 듯 중얼거리며)

붉은 꽃잎 떨어져 수북이 쌓여 있네.

 

이때 한 줄기 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나뭇가지를 흔든다. 복사꽃잎이 눈처럼 내린다.

꽃잎은 보옥의 몸과 책과 그리고 바닥 위에 어디라 할 것 없이 가득 쌓인다.

보옥 (순간 꽃잎을 털어 내려고 하다가)

잘못하면 꽃잎을 다 밟겠네. 안되겠다.

 

가만히 손으로 꽃잎을 받아 물가에 이르러 뿌린다.

보옥의 손을 떠난 꽃잎은 물 위에 하나씩 둘씩 둥둥 떠서 심방갑으로 흘러간다.

보옥이 둘러보니 바닥에는 아직도 꽃잎이 한 가득이다.

 

보옥 (애가 달아서) 이 꽃잎을 어찌하면 좋지?

 

이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대옥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돌아보니 대옥이 어깨에 꽃잎 주머니가 달린 길다란 꽃삽을 메고 손에는 꽃비를 들고 온다.

이때 멀리 있는 담장 모퉁이에서 피리 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주 선 보옥과 대옥 사이로 아름다운 곡조를 타고 노래가 흐른다.

 

노래 아 어이하랴! 그대의 꽃다운 그 모습과,

아 어이하랴! 물처럼 흐르는 이 세월을...

 

복사꽃잎들은 노랫가락 사이로 춤을 추듯 날리고

보옥은 대옥에게로, 대옥은 보옥에게로, 이끌리듯 다가선다.

 

24-25-26

가운의 등장으로 이야기의 재미가 더해진다. ‘요람 속의 할아버지와 지팡이 짚은 손자를 운운하며 보옥의 양아들이 되겠다는 가운은 형편이 좋지 못한 친척이다. 일자리를 얻어 출세를 해보려는 가운의 노력이 그려지는데, 희봉에게 매번 무시를 당하지만 굽히고 굽혀 일자리를 얻는다. 그러는 와중에 가운은 보옥의 시녀 소홍과 애정이 싹트고 손수건을 두고 오고가며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자못 애틋하다.

한편 첩의 자식 가환은 평소 보옥을 미워했는데, 우연한 자리에서 일부러 보옥의 얼굴에 촛농을 떨어뜨린다. 가환의 어머니 조이랑은 이 일로 가모에게 혼이 나고 앙심을 품는다. 여도사 마도파에게 재물을 약속하고, 보옥과 희봉을 저주하는 주술인형을 얻는다. (영화로 보자면 한 영화 안에서 갑자기 장르가 바뀌는 경우인데, 로맨틱코메디로 알고 온 관객이 호러물을 보게되어 놀란다. 신기한 건 이 개연성 없는 전개가 아무런 무리가 없다!)

주술이 작동하여, 보옥과 희봉은 순간 원인 모를 광기에 휩싸인 채 칼을 들고 설치다가 정신을 잃게 되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며 이야기 자체가 한치 앞길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으로 흐른다. (내가 만약 이 부분이 전체 이야기에서 3분의 일 밖에 안 된 지점이라는 걸 몰랐다면 어땠을까...상상하게 된다.)

두 사람이 살 가망이 보이지 않을 무렵, 어디선가 홀연히 스님과 도사가 나타나 통령보옥을 청해 들고 게송을 한번 읊은 후 사라진다. 그날 밤부터 보옥과 희봉은 소생하기 시작하여 정신이 돌아온다. 대옥이 기뻐 저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 하자, 보차가 이걸 듣고 웃음을 터뜨린다. (아까의 그 영화 관객이라면 이때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로맨틱 코메디물이 맞구나...생각할 것이다.^^)

 

내가 웃은 건 말이야, 아미타불, 여래부처님께서 우리 사람보다 더 바쁘시게 되었기 때문이지. 불경 강의하셔야 하지 않나, 중생을 널리 구제해야 하지 않나 말이야, 이번에 보옥이하고 희봉 언니가 병이 나서 향 피우고 소원 빌었으니 복을 내리고 재난을 없애야 했잖아. 이제 겨우 나아가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또 우리 임대옥 아가씨의 인연까지 맡아서 해결해야 하니. 생각해 봐, 얼마나 바쁘시겠어. 정말 웃기지 않아?” (140p)

 

27-28

망종절 즈음하여 봄이 깊어지니 곧 여름이 올 것을 알겠다. 소홍의 비밀연애 얘기를 엿들은 보차는 매미 허물 벗는 계책으로 위기를 벗어나는데, 하필 대옥이 비밀을 들은 것처럼 꾸미니 보차의 영리함이 한편으로는 써늘하다. 희봉은 소홍의 똑 부러지는 일 처리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시녀로 스카웃한다. 대옥은 보옥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굳이 믿으려고 하고 보옥은 언제나처럼 대옥을 찾아 길을 헤맨다.

 

꽃잎 묻는 나를 보고 남들은 비웃지만,

훗날 내가 죽고 나면 묻어줄 이 누구인가.

하루아침 봄은 지고 홍안청춘 늙어가면,

꽃잎지고 사람 가니 둘 다 서로 알길 없네. (185-186p)

 

이 같은 대옥의 노래를 듣고 보옥은 이번에도 깨달음을 얻는다.

 

생각해보니 꽃잎 같고 달님 같은 대옥의 얼굴과 용모가 장차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때가 되면 그 어찌 가슴이 찢어지고 애가 끊어질 듯 괴롭지 않겠는가. 대옥의 몸을 찾을 길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은 또 어떠하랴. 보차도 향릉도 습인도 다들 사라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보차 등을 찾을 길이 없어지는 때면 나 자신은 또한 어디쯤에 가 있겠는가. 나 자신도 어디로 가서 헤매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 그리하면 바로 이곳, 이 정원, 이 꽃들과 버드나무는 또 누구의 것이 되어 있을지!

그렇게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점점 생각을 넓혀가다 보니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도대체 무슨 바보 같은 것이 되겠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며 그저 점점 아득해지기만 하였다. 차라리 이 우주를 벗어나고 인간 세상을 떠나 이러한 비통한 세상으로부터 참으로 순수하게 해방되고만 싶었다. (186p)

 

새로운 인물 장옥함의 등장으로 보옥은 본의 아니게 매파 노릇을 한다. 장옥함의 부드러운 성격에 반하여 만남의 징표로 선물을 나누는데 보옥이 장옥함에게 준 것은 습인이 만들어준 노란 수건이다. 장옥함에게서 붉은색 수건을 건네받아 나중에 습인에게 건네주는 과정을 보면서 나도 예쁜 손수건 하나 흘리고 다녀야겠다...뭐 이런 생각을 잠깐 해본다.^^

 

29-30

보옥은 눈길 가고 보이는 모든 것들에 정을 느끼고 대옥은 그런 보옥을 보면서 눈물조절장애가 생긴다.

장도사의 등장으로 보옥의 중매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온다. 대옥의 화는 더 뜨거워지고 보옥은 기어코 통령보옥을 내던지며 싸움이 난다. 희봉의 말대로 사흘 좋아졌다 이틀 틀어졌다 하는 말다툼이지만. ‘누런 매가 새매 다리 잡아챈 양둘이 서로 고리로 단단히 엮은 것처럼 붙어 있으니 누가 끼어들 틈도 없다.

보차는 보차 나름대로 인연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니 앞으로 펼쳐질 삼각관계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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