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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리딩R&D] 네 번째 강의: 다시 아름다운 불확실성의 세계로2021-01-29 18: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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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네 번째 강의 발제.docx (21.9KB)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네 번째 강의: 우리가 보는 세계 너머

이 책에서 설명된 양자중력의 세계는 지금껏 우리가 감각하고 살아왔던 세계와는 달랐다. 그곳은 시공간도 없는 양자거품의 세계였다. 양자중력을 통해 세계는 완전히 다르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떤 과학도 실제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과학은 기술이기 이전에 세계에 대한 시각이며, 세계에 대한 이해이다. 실재와 무관한 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과학의 시각은 가차없이 명징하다.

물론 검증된 사실과 경험적 데이터만이 과학을 추동하는 힘은 아니다. 과학은 미지에 대한 탐구, 기발한 상상, 더 멀리 보려는 노력을 통해 발전한다. 이 책의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에서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단서와 증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과학을 추동하는 여러 힘들을 통해 얻는 단서들은 확증의 과정을 거쳐 사실을 증명할 증거가 된다. 양자중력을 증명하는 이론에 우호적인 단서들이 우주의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검증될 때, 우리는 양자중력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믿게 된다.

최근 물리학에서는 끈이론에서 가정한 초대형 입자가 발견되지 않아 루프양자중력에 훨씬 호의적인 상황이 조성되었다. 초대형 입자를 발견하려던 제네바 세른 연구소에서 발견된 힉스 보손과 2013년 공개된 플랑크 인공위성의 관측자료, 2016년 발표된 중력파 검출도 마찬가지로 루프양자중력에 호의적인 단서들이다. 힉스 보손의 발견은 양자역학에 기초한 기본입자 표준모형의 확증이고, 플랑크 인공위성의 측정결과는 일반상대성이론에 기초한 표준우주모형에 대한 확증이며, 중력파의 검출은 일반상대성이론의 확증이다.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 그리고 표준모형. 지금까지 발견되고 정리된 사실만 놓고 보면, 우주는 끈이론보다 루프양자중력에 손을 들어준 것처럼 보인다. 다른 차원이나 대칭, 끈 등을 가정하는 이론들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들을 확정적이라고 보아선 안 된다고 카를로 로벨리는 덧붙인다. 더 많은 단서를 가진 쪽이 유리할 뿐이지, 과학에서는 어떤 것도 섣불리 확정할 수 없다. 확정된 것도 얼마든지 새로운 발견에 의해서 깨어질 수 있다.

양자중력으로 이해하는 우주는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불확실하다. 확실성이나 대칭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불확실성과 비대칭의 세계가 남는다. 세계의 불확실성과 비대칭을 마주할 용기가 우리를 매혹적인 블랙홀의 세계로 안내한다. 한때는 모든 것을 삼켜 소멸시키는 듯 여겨졌던 블랙홀에 양자역학과 루프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전혀 다른 방식으로 블랙홀을 이해하게 된다.

블랙홀은 공간이 아주 강력하게 굽어 꺼져 들어가고 시간이 멈출 때까지 느려지는 지역이다. 불랙홀이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은 매우 강하여 빛도 빠져나올 수 없다. 블랙홀의 지평선에서는 시간이 아예 멈춰버린다. 그렇다면 블랙홀 안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을까? 이 오래된 물음의 답도 양자중력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다.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열을 방출하면서 증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증발을 통해 작아진 블랙홀은 삼킨 사물을 내어놓게 된다. 물론 블랙홀 안에서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므로, 블랙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시간상 아주 먼 미래가 되어있을 것이다. 블랙홀 안에 들어간 이에게는 시간여행인 셈이지만, 블랙홀 밖에서 이를 지켜본 이들에게는 영원한 사라짐 혹은 갑작스러운 등장처럼 보일 수 있겠다.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열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열도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이 열은 양자들의 요동과 연관된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진동하고 있고, 어떤 것도 멈춰 있지 않는다. 어떤 것도 한 장소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오스트리아 과학자 볼츠만은 열이 분자들의 무작위적 미세한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이 열은 양자역학에서 사라졌던 시간의 문제와 다시 연결된다.

시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 양자중력에서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열과 관련되어 열 시간이라는 아이디어로 설명된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하는 시간의 흐름들은 모두 온도와 관련된다. 열의 생성이나 방출은 되돌릴 수 없는 사건으로, 사건 이전과 이후인 과거와 미래를 구분 짓는다. 시간이 열 소산을 낳는다는 이해 대신에 열 소산이 시간을 낳는다는 관점으로 바꾸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리계의 변수들은 그 자체로 시간을 나타내지 않지만, 우리가 이 변수들의 평균량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작동된다.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세계의 평균과 관계하고 있는 한은 열이 시간을 생성한다.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한 존재인 우리는 이 시간이 효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시간은 우리가 물리적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실재의 세계는 변화무쌍한 흐름의 세계이다. 우리는 그 가변성에 임의로 경계를 지음으로써 실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경계는 자의적이고 관습적이며 편의적인 방식으로 결정되며, 물리학에서 말하는 물리학 체계도 그런 방식의 하나일 따름이다. 그런 체계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 정보를 적절하게 관리하고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이 정보와 관계되며, 지식은 본질적으로 사물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진리보다 무지를 과학적 사고의 핵심으로 강조한다. 지식은 무지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나는 확신하지 않는다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말이 다른 지식을 가능하게 한다. 한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든 아테네 사람 중 가장 똑똑하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자신의 무지, 자기 지식의 한계를 이해한다는 점에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에서 소크라테스가 취한 교훈은 자신의 무지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 인식이 소크라테스에게 확신하지 않고도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양자중력은 세계에서 무한을 지웠고, 실재가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했던 방식과 전혀 다르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겪은 과학의 세계는 예상보다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이 시대 최고의 과학자들은 그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부수기 위해 노력한다. 확정적이지 않지만 최선인 과학. 우리는 다른 무엇을 믿을 때처럼 그 과학을 신뢰해야 한다. 무지와 신비 속에서 진리와 확실성을 주장하는 이들을 숭배하지 않고, 앞으로 발견될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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