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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푸코] <성의 역사3> 5,6장 발제: 결혼과 사랑의 문제2019-12-19 12: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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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성의 역사 3권 5, 6장 발제.hwp (30.5KB)

 

《성의 역사 3》 제5장 아내, 제6장 소년들, 결론

 

고대 그리스의 결혼에 대한 성찰들은, 도시국가에서 시민적·가족적 유용성과 떼어놓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의 결혼은 생식적 기능을 넘어선 어떤 관계양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결혼에서 남편에게 특정한 행동양식을 요구하는 양상은 자기지배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부부 사이의 인격적 관계와 유대에 점점 가치가 부여되기 시작하고, 남자의 절제가 타인에 대한 가치부여와 병행하는 자기배려의 강화로 이어진다.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에 결혼은 전통적 계율로부터 해방되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부부 간의 성 관계에 대한 문제도 결혼 안에서 제도화된다. 푸코는 부부유대의 기술, 성적독점의 주장, 공유된 쾌락의 미학 속에서 결혼의 변화에 대한 근거를 찾아낸다.

 

기원 후 2세기 동안 스토아학파의 텍스트들은 부부의 공존양식과 관계양상을 규정하려고 애쓴다. 스토아학파의 주장에 의하면 부부는 자연에 부합하는 “쌍수적 관계”였다. 부부는 생식보다는 ‘공동체적’ 목적에서 강조되었다. 스토아학파는 부부를 “보편적 관계”로 이해하고 결혼을 하나의 의무로 설정했다. 몇몇 특수한 상황이 아닐 경우 철학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이성적 삶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이 함께 사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독특한 관계”로 이해되기도 했다. 훌륭한 결혼은 두 파트너를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살아가게 하면서 진정한 윤리적 단일체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기의 부부 관계는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와 타인과 맺는 관계의 양립가능성을 증명하는 자기연마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성적 관계에서는 부부 간에도 아직 신중함이 남아있었으나, 이는 기독교의 신중함과는 다르다. 고대의 성과 결혼이 통합된 계기는 생식을 목적으로 하면서이지만, 부부 간 정절이 장려된 계기는 정절을 부부 간 유대의 본질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부부관계는 성적 활동을 합법적으로 행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만, 기독교에서처럼 성 관계 자체에 죄의 성격이 부여되지는 않았다. 합법적 성행위는 인간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면서, 인간의 삶은 이 공동체의 계열 안에서 합리적 형태를 발견한다. 정절에 대한 요구도 점차 부부 간에 대등한 양상을 띠게 된다. 정절의 대칭성을 통해 남자의 도덕적 우월성을 드러내려고 했으며, 이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자에게 금한 것을 남자가 행하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만약 남자가 혼외의 쾌락을 추구한다면 자신의 우월성을 인정받는 문제에서 아내의 명예와 관용, 애정을 증명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부부관계는 쾌락을 무시하거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부부관계에만 합법적으로 존재하며, 부부 간의 쾌락은 외설과도 달라야 한다. 이런 주제들은 기독교 전통에서도 재발견되지만,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쾌락 추구를 금지하는 것처럼 규제나 허용의 방식으로 타나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독교 전통의 입장과는 다르다. 오히려 쾌락에 엄격한 태도는 부부의 결합에서 쾌락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해준다. 쾌락이 부부 간의 애정에 이롭다면, 그것은 적극 이용되어야 한다. 부부 간 쾌락의 긍정은 소년애에서 쾌락이 부정적 요소로 나타나는 것과 대비된다. 이에 따라 소년애에 부여된 특권들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점점 강해졌다.

 

기원후에도 소년애가 사라졌거나 급속히 평가절하 되지는 않았다. 변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스스로 질문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로마의 소년애는 그리스 시절보다 탈문제화된 경향이 컸다. 귀족 아이들이 가족과 법에 의해 잘 보호받게 되면서 자유민이 아닌 노예 소년들이 소년애의 대상이 되었고, 청소년과 교육적 관계를 맺는 일도 점점 어려워졌다. 푸코는 세 텍스트에 주목하면서 로마의 소년애와 관련된 논쟁들을 분석한다. 세 텍스트는 사랑에 관한 플루타르코스의 대화, 루키아노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보다 후기의 대화, 소크라테스적 사랑에 관한 티르의 막심이 쓴 네 논문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텍스트에는 각각 소년애와 여성에 관한 사랑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하여 논쟁을 벌인다. 소년애의 우월성에 대한 주장과 이성애 결혼의 자연스러운 특성에 대한 주장들이 등장하지만, 논쟁에서 묘사되는 두 유형의 사랑은 닮은 모양이다. 두 논쟁에서 사실상 사랑은 대상만 다를 뿐 비슷하게 이해되며, 소년애의 우월성에 대한 주장에서 쾌락이 소거되는 장면은 비웃음을 산다. 소년애에서도 중요한 점은 쾌락이었고, 그렇다면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관능과 쾌락을 배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소년애에서 최상의 사랑의 모델을 찾는 일은 실패하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수사는 소년애의 전통적 연애술을 여성들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시키며, 사랑을 단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루키아노스 추정본에서는 논쟁의 주제가 명백하게 쾌락으로 옮겨간다. 소년과의 쾌락이냐, 여성과의 쾌락이냐가 문제시되는 것이다. 소년애를 주장하는 이는 철학과 소년애를 연결시키며, 소년애는 생명의 전달이 아닌 ‘기술’과 ‘지식’의 전달임을 강조한다. 둘은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부터 견해를 달리한다. 둘 사이의 대립은 자신의 쾌락을 양면화하는 두 방식 사이의 대립이자, 철학적 담론들의 대립이다. 그러나 소년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는 쾌락의 문제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어쩔 수 없이 소년애가 쾌락을 배제한 평생의 동반자 관계로 묘사될 때, 이 관계는 다시 부부의 형상을 닮거나 별도로 결혼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밖에 없다. 결국 이 텍스트는 사랑의 문제에서 아프로디지아를 빼고 말하는 논증의 취약성을 드러내준다.

 

로마 시대 소년애는 여전히 존재했고 이야기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이야기의 주된 대상은 아니었다.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녀와 소년으로 변했으며, 이들이 결혼과 쾌락을 방해받는 기나긴 이야기가 유행했다. 여기서 동정은 주인공의 중요한 덕목이었으며, 성 관계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결합을 위한 예비적 시련의 역할을 했다. 스토아학파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어느 정도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성적 엄격성의 원칙들은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 이전에도 오랫동안 존재했다. 푸코는 그 안에서 기독교적 자기포기의 방식보다 자기를 지배하는 삶의 기술이 발전하고 변형되어온 양상을 추적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을 따라온 우리는 푸코가 말한 대로 기독교적 금욕의 도덕과, 자기를 스스로 성 관계의 윤리적 주체로 세우려는 방식을 이해하고 구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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