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문학-SF특집] 테드 창: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 <우리가 해야 할 일> 발제2020-01-07 12: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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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테드 창-숨 발제.hwp (31KB)



‘병 속의 수기’는 왜 계속되는가?

 

테드 창: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 <우리가 해야 할 일>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병 속의 수기>이다. 병 속의 수기를 적은 이는 죽은 이들이 움직이는 배에 올라탄 이야기를 적어 바다로 흘려보냈다. 이 세계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이야기가 소설가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닿는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병 속의 낯설고 신기한 이야기. 우리는 이런 형태의 소설들을 자주 접한다. 이번에 읽은 테드 창의 소설들도 그렇다. 이 이야기들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 혹은 우리가 그 존재를 몰랐던 세계의 이야기이다.

 

카이로에 있다는 ‘세월의 문’이나 기계와 유사한 몸을 가진 이들이 사는 세계, 혹은 모든 이들의 행동이 예측되는 세계가 테드 창의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20년 후, 혹은 20년 전의 자신을 만나 삶을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숨>의 화자는 우주가 절대적 평형상태로 빠져들어 자신들의 움직임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의 화자는 모든 것이 예측되고 결정된 삶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재미있게도 이 낯설고 신비한 이야기 속에 담긴 교훈이나 질문들은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다.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평범한 질문을 위해 테드 창은 낯선 세계의 신비한 존재들을 상상해내어야만 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하산이라는 인물은 미래의 자신이 해 주는 충고대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미래의 자신이 경고하지 않았던 일이라 찾아와 물었다.

“왜 소매치기를 당할 거라는 경고를 해주지 않았습니까?”

“즐겁지 않던가?” 나이 든 하산이 물었습니다.

하산은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습니다. “사실 즐거웠습니다.” 잡게 될지 놓치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마구 달리는 동안, 하산은 오랜만에 피가 끓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년의 눈물을 보고는 자비에 관한 선지자 무하마드의 가르침을 떠올렸고, 그 소년을 놓아줌으로써 고결해진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겪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하나?”

젊은 시절에는 무의미하게만 여겼던 관습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그 효용을 이해하게 되듯이, 어떤 정보를 감추는 것은 그것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쓸모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하산은 깨달았습니다. “아뇨, 오히려 경고해주지 않아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24쪽)

 

그러나 미래를 알려주는 일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은 그 기회를 잘 활용했고, 필요 이상으로 활용하지도 않았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화자인 압바스의 고백으로 끝난다.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58쪽)

 

<숨>에서는 견고한 신체를 가진 이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이 언젠가는 움직임이 멈추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음’의 순간은 우주의 절대적 평형을 맞추기 위해 기압의 차이가 사라지는 순간이며, 공기의 흐름처럼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서서히 다가온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주에 잃어버린 활기를 되찾아줄 수 있는 무한 동력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낙관론을 공유할 수 없다. 균등화 과정은 결코 막을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 그것은 압력의 종말, 동력의 종말, 사고의 종말이 될 것이다. 우주는 완벽한 평형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 나는 우리가 과거에 관해 중요한 뭔가를 알아낸 것이라고 믿는다. 우주는 엄청난 양의 공기가 비축된 데서 시작됐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그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욕구와 고찰은 우리의 우주가 점진적으로 내쉬는 숨에 의해 생성된 소용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내쉼이 끝날 때까지, 나의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81 ~ 82쪽)

 

이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수기를 읽을 누군가를 향하는 말이다.

탐험자여,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무렵 나는 죽은 지 오래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고별의 말을 남긴다.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경이로움에 관해 묵상하고, 당신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라.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할 권리가 내게는 있다고 느낀다. 지금 이 글을 각인하면서, 내가 바로 그렇게 묵상하고, 기뻐하고 있기 때문이다. (87쪽)

 

<우리가 해야 할 일>의 화자는 자유의지의 환상이 사라지고 모든 일이 예측가능해진, 일 년 뒤의 미래에서 경고를 보낸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에 달려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왔는지도 모른다. (95쪽)

 

세 화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알고 누군가에 전하고자 하지만, 자신들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썼던 <병 속의 수기>의 화자와 같은 상황이다. 그들은 그런 경험이나 상황을 상상도 해 보지 못한 다른 인류 혹은 생명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에서 말하려 했던 것처럼. ‘이 우주에서 인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도 살아라. 살아있음을 기뻐하라. 그리고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라.’ 소설을 읽는 우리를 칼리프나 탐험가로 추켜세우며 메시지는 이어진다. 메시지들은 발신지를 알 수 없는 병 속에 담겨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송된다.

 

메시지를 보낸 이들은 우리가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바틀비는 단지 행동을 중지한 것이 아니다. 행동의 중지를 선택했다고 믿었다. 자유의지가 주는 착각, 선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함정은 우리의 행동이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게 만든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안다면, 행동의 중지를 선택하는 일도 자유의지를 믿는 일만큼이나 어리석다. 행동을 중지하는 일도, 과거의 누군가에게 경고를 보내는 일도 우리는 선택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래도 병 속의 수기는 계속해서 전달된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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