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리딩R&D]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판도라의 희망' 6장 발제)2022-07-13 1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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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기술을 제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완전한 착각이며 오히려 기술은 존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다. 주체와 객체, 그들의 목표도 모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명제가 접언될 때, 그것은 새로운 명제에 참여하며 그들은 다른 어떤 이, 어떤 것이 된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은 행위자에게 행위를 귀속하거나 재분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일 수도, 혹 비인간일 수도 있다. 행위자-행위소의 대칭성은 주체-객체의 이분법과 집합체에 대한 이해를 막는 구분을 없애준다. 행위에 대한 책임은 행위소 사이에서 함께 공유되어야 한다.

 

행위의 동인은 새롭고 분산되며 겹쳐진 일련의 실행이다. 우리는 그 연쇄에 동원된 모든 행위소가 수행하는 매개의 역할을 존중할 때에만 그 총합을 계산할 수 있다. 어떤 행위자가 목표로 접근한다. 하지만 직선이나 지름길로는 갈 수 없다. 언제나 저 행위소들이 산재한 우회로 위에 설 수밖에 없다. 하위 프로그램의 미로에서 본래의 목표를 상실하는 것은 부지기수이다. 행위는 단지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라 행위소 연합의 특성이며 행위소들은 서로에게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목표,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며 능력을 교환하는 과정을 갖는다.

 

일상화된 행위는 연속적 사건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하나의 객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의 객체 주위에 모여 있는 한 집단의 행위자들을 보게 된다. 행위소와 중재자 사이에 전환이 일어난다. 그것들은 하나의 객체일 수도, 하나의 집단일 수도 있으며, 각각의 행위는 행위소의 분산, 또는 곧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전체로 통합될 수도 있다. 비인간은 주체에 의해 인식된 객체가 아니며, 지배자에 의해 조종되는 객체도 아니고, 스스로의 지배자도 아니다.

 

테크닉은 우리 표현의 형식일 뿐 아니라 그 표현의 질료도 변형시킨다. 그리고 기호와 사물 사이의 상식적인 경계를 가로지르는 특별한 종류의 접언을 통해 의미를 생산한다. 게다가 비인간 역시 행위하며 목표를 대체하고 형상 없는 질료에 자신의 의지를 부여하는 전지전능한 인간 행위자를 암시하기도 한다. 우리는 의미에 머물지만 더 이상 담론에 머물지 않으며, 단순한 대상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 사물은 한 행위자를 대신한다. 그리고 위임을 통해 나는 여기 있으면서 또 다른 곳에 있고 나 자신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인 것이 아니라, 멀리 사라진 한 행위자의 긴 과거, 하나의 행위가 여기에서, 오늘, 나에게, 아직도 활력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위임받은 대리인의 가운데 살며, 비인간에게로 포개진다.

 

우리는 이제 어떤 주어진 집합체가 다른 존재자에게로 확장하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기술적 위임을 통해 비인간과 특성을 교환할 때 전통적 집합체뿐 아니라 근대적집합체와도 연관되는 복잡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근대적 집합체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매우 친밀하고, 거래가 매우 많으며, 매개는 매우 뒤얽혀 있기 때문에, 결코 인공물, 통합체, 주체는 구분되지 않는다. 사회는 구성되지만, 사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사물창조신화에서 우리는 결코 원시인인 적이 없었다. 모든 정치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들은 온 요소를 혼합하는데 이는 재배열이 아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광대한 비인간의 결합체를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사회 기술과의 결합으로 새로운 잡종을 만들어낸다. 이는 여전히 비인간이지만, 그것은 물질적, 객체적 특성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시민권을 획득해 왔다. 우리는 이제 사물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챈들러와 휴즈는 인간과 비인간의 교차점을 글로벌 협력또는 힘의 네트워크라 칭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기술적 얽힘이 일어난 정말 아름답게 묘사된 기술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의 이음매 없는 연결망을 말한다. 비인간을 사회화하기 위해 사회적 세계로부터 빌려오는 특성과 사회적 영역을 자연화하고 확장하기 위해 비인간으로부터 빌려오는 특성을 확인하기도 하고 각각의 층위에서 한쪽의 특성이 다른 쪽으로 역수입되면서 새로운 효과를 낳기도 한다. 힘의 네트워크는 이렇게 완전한 잡종이다.

 

과학과 기술이 확장되는 단계에서 우리는 쇠퇴와 타락의 단계를 밟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배적이고 필수적인 되풀이를 반복하며 지배적인 내러티브에 대한 금지를 또다시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객체와 주체, 혹은 상징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테크닉 사이의 이분법을 포기하고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교환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인간들로부터 배운 것과 역수입된 것과 사회적 영역에서 연습되어 온 것들을 다시 비인간에게로 수출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매우 상이한 의미 사이의 다양한 수평적 구별을 상상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은 인간이 더 많은 비인간과 혼합되어 이들을 위한 정치, , 도덕, 운명을 포괄할 수 있는 제도를 발명해 나가는 꿈을 꾼다.

 

꿈이 꿈으로 끝날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닌 것은 이미 꿈과 얽혀버린 우리가 그 꿈의 힘을 느껴 버렸으며, 그것들은 이미 포개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것으로 변화되어 근대의 신화 속에서 탈피된 세상으로 가고 싶은 그 우회로에 우리가 행위소로, 매개로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 생애가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걷고 또 걷고 있음을 이제는 어렴풋이 안다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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