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리딩R&D] 아인슈타인의 베일 2장_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2022-11-30 18: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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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아인슈타인은 그 유명한 어록인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을 비판했다. 아인슈타인이 도깨비 같은 원거리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부르며 부정했던 개념이 있는데 바로 양자얽힘(entanglement)이다. 이는 특정한 얽힘 상태의 한쪽에 가한 측정이 즉각적으로 (빛보다 빠른 무한대의 속도로) 반대쪽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벨(John Stewart Bell)이 나타나며 이 문제는 전환점을 맞는다.

 

 

벨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local hidden variable)이란 이름으로 이를 체계화했다. 국소적이라는 뜻은 두 입자가 서로 독립적, 개별적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이며, 숨은 변수는 측정의 이면에 어떤 숨은 변수가 있어서 이미 측정의 결과가 정해져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박의 결정타를 날리게 된다.

 

 

완벽한 상관이란 한 입자의 측정 결과를 토대로 만일 같은 방향으로 측정이 이루어질 경우 다른 입자에서 나올 결과를 정확히 아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에는 두 입자를 동일한 방향으로 측정할 때 숨은 변수 이론도 옳은 결과를 산출한다. 벨은 두 측정 방향이 평행하지 않을 경우, 예측하는 얽힘이 실제 양자물리학의 얽힘과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 작은 각에 대해서 상관은 거의 줄어들지 않고, 두 방향 사이의 각이 커지면 비로소 상관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자물리학의 예측과 숨은 변수들을 이용하는 모형의 예측 사이에서 명백한 모순에 도달한다. 숨은 변수 모형에서 두 측정 결과 사이의 상관이 특정한 값보다 클 수 없다는 결론, 바로 벨의 부등식이다.

 

 

숨은 변수 모형의 문제점은 통계적인 상관에서 드러나는데, 한 입자에 대한 측정을 근거로 다른 입자의 결과를 확실히 예측할 수 없고, 오직 특정한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두 입자가 항상 반대 결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가끔 같은 결과도 나온다. 이는 국소적으로 실재론적 모형이 예측하는 확률이 양자물리학이 예측하는 확률에 모순됨을 보여준다.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아인슈타인의 세계와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양자물리학의 세계가 서로 다른 예측을 내놓고 있다.

 

 

우리는 국소적 실재론 모형과 양자물리학 사이의 통계적인 모순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예측들 사이의 모순에도 직면했다. 우리가 관찰한 대상이 관찰 이전에 이미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을 일으킨다. 한 입자의 측정이 다른 입자가 얼마나 멀리 있든 상관없이 그것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1935ERP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보어는 얽힌 두 입자는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하나이며 하나의 계라고 주장했다. 한 입자에 대한 측정이 다른 입자의 상태를 바꾼다. 두 입자는 서로 독립적인 실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에 의해 얽힘이 파괴되는가이다. 측정이 이루어지자마자 각각의 입자는 잘 정의된 상태를 가지고 측정된 방향에 따라 스핀을 가진다. 이 시점부터 두 입자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동하며 최초 측정 이후에는 흥미로운 상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첫 번째 측정 이후 얽힘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국소적 실재론이 타당한지 양자역학이 타당한지를 가늠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들이 실시되었고 결국 양자물리학이 옳음을 보여주었다. 광원은 어떤 방향으로 실제 측정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따 광원은 잘못된 편광을 가진 입자쌍들도 방출할 수밖에 없다. 편광의 방향을 우연으로 변경했을 때에도 양자물리학의 예측이 옳음이 입증되었다.

 

 

우리는 국소적 실재론 세계관이 자연관찰과 일치할 수 없고 따라서 세계와 불일치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중-이중 슬릿 실험에서도 얽힘을 다루었다. 충분히 큰 광원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광자들을 방출한다. 그러나 개별 입자가 어떤 경로를 취할지는 전혀 확정되어 있지 않다. 봄의 입자 스핀 역시 측정 이전에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두 입자 중 하나가 측정되어 어느 경로를 거치는지 정해지면, 동시에 자동적으로 다른 입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가 정해진다. 두 입자 중 하나의 길이 확정된 순간부터 간섭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경로가 측정되지 않으면 두 가능성들을 중첩해서 생각해야 한다. 오른쪽 입자가 위쪽 길을 가고 왼쪽 입자가 아래쪽 길을 갈 가능성과 오른쪽 입자가 아래쪽 길을 가고 왼쪽 입자가 위쪽 길을 갈 가능성의 중첩을 생각해야 한다. 이 가능성들의 중첩(얽힘)이 두 입자가 각각의 이중 슬릿 너머에서 측정되었을 때 간섭무늬를 만든다.

 

 

1924년 드 브로이는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가질 뿐 아니라 질량이 있는 모든 입자들이 파동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주장에 그는 거대한 베일의 한 자락을 들췄다.’고 말했다. 드 브로이의 가설이 옳다면 질량 있는 입자들도 간섭현상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여러 실험에서 성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간섭현상이 거대한 계인 우리의 일상에서도 관찰될 수 있을까? 이중 슬릿 간섭현상에 대한 한계와 관련된 많은 질문에 슈뢰딩거가 명확하게 답을 제시했다. 고양이 실험은 다들 웬만큼 알고 계실거라 믿으며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고양이는 상자를 열기 전, ‘죽음의 중첩 상태에 있다. 어느 누군가가 상자를 열어보고 났을 때야 비로소 결합된 파동함수가 두 가능성 중 하나로 붕괴하게 될 것이다. 커다란 거시적인 계가 양자 중쳡 상태에 있는 것이 관찰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고 기술적인 진보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현재 양자 축구공 분자는 양자 간섭이 발견되는 가장 큰 크기이다.

 

 

양자물리학을 통해 비로소 화학이 가능하고 화학을 통해 우리 몸 속에 일어나는 모든 화학적 과정들과 함께 우리 자신이 가능하다. 원자로 이루어진 다른 물질들 역시 양자물리학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자물리학이 우리에게 실재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믿는 것들, 혹은 세계가 따라야 할 합리적인 행동 방식이라 믿는 것들 중 많은 부분들이 양자물리학으로 인해 부정되었고 우리에게 친숙했던 질서와 인과관계, 세계관과 가치관들이 변화되고 있다. 그 과정 안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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