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귀칼을 보아따 (... 그리고 수호전 열린강좌를 들어 보아따)2021-03-10 15: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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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칼을 보아따

덕야자득야 - 덕후의 득템 라이프


https://brunch.co.kr/@zziraci/486



만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과거 수유+너머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만화가 좋아서였다. 당시 원남동 연구실 2층 카페는 벽 한쪽이 통째로 만화 책장이었다. 그것도 만화방에서 볼 수 있는 여닫이 책장으로 된. 만화책을 보며 뒹굴거리다 고전을 배우는 곳에 끌려갔다. 인생이란 우연이 낳는 사건의 연속인 셈이다.


닥치는 대로 만화를 섭렵했다. 나름 이름난 만화는 대충 다 들여다보았다. 이른바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이후로도 인기작은 들춰보는 편이다. 원나블 이후 가장 인상 깊게 본 만화는 <강철의 연금술사>와 <도도헤도로>를 꼽겠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잘 짜인 이야기라는 매력에서, <도도헤도로>는 그로테스크한 스타일을 잘 살렸다는 점에서 높이 사는 편이다.


그 밖의 작품들엔 좀 시큰둥했다. 무엇 때문일까. 만화가 선사하는 짜릿함이 별로 없었다. 이른바 떡밥 회수, 그러니까 작품 속에 숨겨둔 서사의 비밀을 따라가기엔 일상이 너무 바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픽노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늘어지는 게 없으니. 그러나 여전히 '박력'이라는 것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귀멸의 칼날>. 세간에 워낙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한번쯤 보아야겠다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이 인기라지만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아직도 흑백 만화가 주는 상상력에 푹 빠지는 것이 좋다. 그러나 또 스무 권이 넘는 만화책을 들일 데는 없으니 이북으로 보도록 하자. 


<귀멸의 칼날> 1권


서사는 간단하다. 산골 마을에 사는 주인공이 도깨비(혹은 오니)에게 가족을 잃은 뒤, 살아남은 누이와 함께 도깨비를 없애는 귀살대鬼殺隊로 활약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목표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도깨비에게 당해 도깨비가 된 누이를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다른 하나는 최초의 도깨비를 죽여 복수하는 것.


제목 '귀멸의 칼날'은 '귀멸鬼滅', 도깨비(鬼)를 죽이는(滅)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배경이 20세기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일본도를 가지고 싸운다. 작품 속에서 총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총은 별 활약을 하지 못한다. 칼날로 직접 도깨비를 베어버린다. 그래서 늘 칼날이 번뜩인다. 


참斬, 도깨비를 베어 버리는 것이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큰 이유였을 테다. 적과의 거리를 좁히고 도깨비와 귀살대가 뒤엉켜 싸우게 만든다. 소년만화답게 여러 기술이 등장하지만, 매우 단순한 편이다. 기술 간의 상성, 기술 사이의 우열 따위는 별 의미가 없다. 지금 눈앞에 등장한 적을 해치울 수 있는 기술이 중요하다. 궁극의 기술, 최종 무기 따위는 별로 의미가 없다.


스무 권 조금 넘는 분량의 줄거리에서 도깨비보다 귀살대 구성원이 더 많이 죽어나간다. 다른 만화 같으면 준보스 격으로 세계 최강자 반열에 있을 만한 인물이 너무도 쉽게 목숨을 잃는다. 다른 만화처럼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발판일까? 작품은 주요 인물의 죽음을 희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작품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흐름 가운데 하나다. 결국 최후의 도깨비를 처단한 이후에 살아남는 것은 소수일 뿐이다. 


그마저도 주인공조차 죽음의 위기에 처하며, 만신창이가 된다. 여느 만화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더 강해지는 식의 전개가 아니다. 산 사람은 망가진 육체를 가지고 싸워야 한다. 죽은 자를 되살릴 수도, 잃어버린 신체를 이어 붙일 수도 없다. 언제 누가 죽을지도 모르고, 누구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야기의 박진감을 더한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무호흡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더라. 그러니까 그만큼 숨이 막히는 전개에 감탄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나 역시 오랜만에 박력, 어떤 짜릿함을 느꼈다. 매우 단순하고 빠른 이야기가 갖는 매력이라고 할까. 이렇게 몰아치는 이야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만화책은 역대 최단시간 누계 판매 1억 부를 넘었고, 작가는 성공한 만화가 반열에 올라갔다. 2016년 연재를 시작해서 2020년에 완결 냈으니 약 5년간 연재한 셈이다. 이처럼 짧은 연재 기간에 이런 성공을 이룬 만화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러나 이 속도감이 약이 되었다. 만약 더 늘어졌다면 서사의 완성도는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귀멸의 칼날>에서 칼에 죽고 칼에 사는 사무라이 문화를 읽어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읽은 책이 한정적이라 사마천의 <사기>를 떠올렸다. 칼을 든 사람의 이야기, <자객열전>이 생각나더라. <자객열전>은 칼과 생을 맞바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모두 복수를 위해 칼을 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복수는 실패한다. 복수의 실패는 곧 처참한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선비질의 관점에서 보면 <자객열전>은 불온하며 선정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사람의 목숨을 너무 가벼이 여긴다며 혀를 끌끌 찰 것이며, 실패한 이야기에 별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테다. 무엇보다 복수, 순수하고 즉흥적인 복수에 질려하는 사람도 있겠다. 


교훈에서 생각하면 <자객열전>은 아무 교훈이 없는 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찾자면 칼을 들지 말라는 정도? 이야기의 완성도에서 생각하면 <자객열전>은 부족한 부분이 많다. 어느 순간 급발진한 이야기는 기대하던 것과는 영 다른 결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명문으로 꼽히는 것은, 이 짧은 이야기가 선사하는 박력, 짜릿함, 순간의 번뜩임이 있기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은 <수호전>으로


<수호전>을 읽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수호전> 세미나에 앞서 열린강좌를 통해, <수호전>에 얽힌 이야기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시대의 이단아, 이탁오와 김성탄이 수호전에 주목했다는 점이었다. 한편 그 역시 시대의 이단아라 불러야 하는 인물, 마오쩌둥 역시 수호전을 칭송하기도 했다. 이들이 <수호전>을 칭송한 데는 이 작품이 기존의 통념과 영 다른 무엇을 보여주기 때문일 테다.


<수호전>은 수많은 무뢰한이 펼치는 어수선한 이야기이다. 존경할 만한 인물도 없고, 이야기는 거칠다. 유려한 문체나, 섬세한 묘사는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도리어 다른 것을 기대해볼 요량이다. 무뢰배들의 이야기가 선물하는 호탕한 맛이 있지 않겠는가. 김성탄은 <수호전水滸傳>의 '수호水滸'를 들어 '멀다(遠)'고 풀었다. 좋게 말하면 기존의 통념을 벗어난 이야기라는 뜻이고, 나쁘게 말하면 저세상 이야기라는 뜻이다. 제멋대로 흘러가는 걷잡을 수 없는 이야기.


어떤 이야기가 매력적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꼼꼼한 서사에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차곡차곡 쌓아둔 설정과 반전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파괴의 매력도 있는 법이다. 거침없이 몰아치며 아득한 시공간으로 몰아넣는 작품도 있다. 이야기의 매력이 여러 가지인 것처럼, 읽는 방법도 여러 가지여야 한다. 


<수호전> 세미나를 앞두고 멋대로 읽어볼 생각이라 말했다. 이는 익숙한 이야기로 읽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이야기의 의외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가져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몰아치는 이야기가 주는 박력에 푹 빠져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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